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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성균관 스캔들' 졸작으로 만든 금등지사

   
   
   
간혹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관련 기사를 읽어 볼 때가 있는데 탄탄한 대본과 웰메이드 명품 드라마라는 수식어를 사용해가며 호평을 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드라마의 경우는 대본이 탄탄하지도 않고 잘 만들어진 드라마도 아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사건의 전개나 등장 인물들의 언행에 어떠한 당위성이나 개연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간단한 소품조차도 터무니없는 것들이었기에 후반부로 오면서는 아예 이런 부분들은 포기하고 시청했을 정도였다. 어떤 창작물을 보고 그에 대해 후하게 평가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드라마를 아예 보지도 않고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면 이런 엉성하고 어설픈 드라마에 저런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거의 '외설' 시트콤 정도로 전락해 버렸는데 드라마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은 졸속적으로 끼워 넣은 금등지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금등지사라는 소재는 워낙 무겁고 간단하게 다룰 만한 것이 아닌데도 별다른 고민 없이 원작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정조 시대라는 이유만으로 그저 적당히 금등지사 얘기를 졸속적으로 끼워 넣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졌던 생각이기도 한데 드라마를 다 보고 난 지금에는 더 확고해졌다.



드라마는 마지막회에서 금등지사를 찾았으나 불 태워 버리는 것으로 끝이 났는데 이것은 이 드라마 작가가 금등지사를 얼마나 가볍게 보고 졸속적으로 드라마에 끼워 넣었는지에 대한 반증으로서 손색이 없다. 금등지사는 이전 글들에서 간간히 소개를 했었는데 금등지사라는 실체가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다만 채제공이 영의정으로 제수되자 사직상소문을 통해 금등지사의 일부를 공개했고 대신들은 눈물을 흘렸다는 정조실록의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금등지사를 드라마의 소재로 삼을 생각이라면 최소한 정조 시대에 필연적으로 붕당으로 나뉘어야 했던 사대부들의 명분과 의리에 대한 이해도는 있어야 하고 작가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경우처럼 엉성하고 어설픈 플롯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금등지사에 대한 작가의 이해도와 관점이 결여되어 있기에 성균관 유생들의 소소한 일상과 금등지사 얘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고 금등지사를 찾았으나 불 태운다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결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애초에 자신이 없었으면 금등지사를 끼워 넣지 말았어야 했고 그랬다면 드라마의 내용이 시종일관 갈팡질팡하며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우스갯거리로 만들며 끝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작가가 향후 어떤 드라마의 대본을 쓰게 될 지는 모르겠는데 사극을 쓸 계획이라면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단순히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개요만으로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면 필패할 거라는 것만은 확실히 예상할 수 있다. 기록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작가의 시대정신으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신문기사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사실을 단순히 흥미거리로 또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역사적인 의미를 완전히 왜곡해 버리는 그런 드라마가 사극의 옷을 입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작가가 새로운 사극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은 시청자로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가능성만 보여줬을 뿐 사극이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 미달이었다는 점은 아쉽다. 역사적 사건에 작가의 관점을 불어넣지 못한다면 금등지사와 성균관 유생들의 일상은 어떻게 버무려 내더라도 어설프고 엉성하게 보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황당한 장면 Best 3



잘금 4인방은 정조로부터 암호화된 김승헌의 사직상소문을 받고 그를 토대로 금등지사를 찾으라는 밀명을 받는다. 그런데 정조가 잘금 4인방에게 준 사직상소문의 내용은 최초에 정조가 정약용에게 주었던 사직상소문의 내용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잘금 4인방이 받은 사직상소문의 내용을 보았을 때는 수시로 등장했던 무성의한 소품의 문제로 보았으나 잘금 4인방이 사직상소문의 암호를 풀며 금등지사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는 어느 정도 신뢰할 부분이 있다고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드라마가 끝이 난 지금은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김윤희는 반촌으로 나 있는 성균관 문에서 금등지사를 찾아내는데 사직상소문에 있는 始組之國社가 도대체 왜 그 쪽을 말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始組之國社는 아무리 봐도 성균관과 종묘의 신위를 뒤지던 잘금 4인방의 판단이 옳다. 금등지사가 신위 아래 요 자리에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을 배제하더라도 始組之國社가 그와 관련 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김윤희는 장의 하인수가 유소와 권당을 거부하자 장의가 되어 성균관 유생들을 이끌고 유소를 올리기 위해 궁으로 향한다. 그런데 장의인 김윤희가 홀로 성균관으로 돌아와 방 안에서 퍼즐을 맞추며 아비와의 추억을 생각하다가 금등지사의 위치를 추정해낸다. 그리고 반촌으로 나 있는 문으로 달려가 벌건 대낮에 혼자 삽질을 하고 금등지사를 꺼내더니 그 자리에 앉아서 펴보기까지 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 장면은 한가로워도 너무 한가로워 보인다. 모든 유생들이 성균관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뒤로 유생 하나가 스쳐가는 장면도 보였다. 무엇보다 유소를 이끄는 장의가 그렇게 장시간 자리를 비우고 삽질을 했다면 웃기는 일이다.

종묘에서 걸오가 칼을 맞자 칼을 맞은 게 걸오가 맞냐 아니냐를 놓고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이 집중되었다. 제일 황당했던 건 칼을 맞은 건 초선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을 때였다. 그래서 칼을 맞은 것은 걸오의 무술장면을 연기하는 대역이라고 캡쳐한 이미지를 비교해 올리고 다른 경우의 수는 의미가 없다는 설명을 첨가하면서도 초선에 대한 설명은 생략했다. 그렇게까지 해 놨는데도 그 글을 읽은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믿지 못 하는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 장면은 그 날의 드라마 방송분이 끝이 나자마자 어마어마한 논란이 있었던 모양으로 이웃블로그의 글에서 드라마의 공식 홈페이지에 다음 회 예고를 미리 올리기까지 했었다는 글을 읽었다. 아마도 공식 홈페이지의 그러한 조치가 없었다면 초선이었다는 것과 같은 황당한 의견이 일주일 동안 어마어마한 지지를 받았을 것이고 대역이었다는 내 글엔 욕설만이 엄청나게 달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꾼들이 어떻게 유권자들을 선동할 수 있고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게 가능한가를 잘 설명해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 세 가지는 그냥 임의로 생각나는 것을 추려보았을 뿐이고 이 드라마의 경우는 매회 이런 어이 없는 장면들이 있었기에 별로 놀라운 것은 아니다. 굳이 이러한 장면을 되짚어 보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대본이 탄탄하고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가에 동의할 수 없는 여러가지 이유 중에 눈으로 보이는 것 만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