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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정글피쉬 2' 숨이 턱턱 막히는 드라마

   
   
   
드라마 '정글피쉬 2', 청소년 드라마라는데 2회 분량을 시청하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숨이 턱턱 막힌다'이다. 몇몇 자극적인 에피소드 때문이 아니라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가 시청하는 사람의 숨통마저도 조여 온다. 청소년용 드라마를 빙자한 서스펜스 호러물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드라마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는 암울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이 드라마의 내용이 현재의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처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 맞는지 의문마저도 생긴다. 명문고 전교 1등 모범생인 백효안은 의문의 자살을 선택하고, 백효안의 남자친구였던 민호수는 명문고에서 막장고로 전학을 가고, 자퇴아에서 문제아까지 극단적이라고 생각되는 경우만 모두 뽑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현실에서는 있을 법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극단적인 경우만을 뽑아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리얼리티라기보다는 소수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침소봉대할 여지가 크다는 문제가 있다. 명문고에서 전체 1등은 물론 전국 석차까지 신경써야 하는 학생들과 자퇴하거나 문제아 또는 학업 대신 다른 꿈을 쫓는 학생들에게도 고민이 있겠지만 그 외의 다수 학생들에게도 할 말은 많을 것인데 그들의 고민을 대변할 수 있는 플롯은 보이지 않는다.

민호수는 명문고에서 막장고로 전학을 가게 되는데 내신등급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니던 명문고가 답답하기 때문인데 이는 패배주의적인 현실도피적 성향이 강한 선택이다. 명문고에서 막장고로 전학을 간다고 해서 대학 입시라는 현실은 피할 수 없다. 만약에 민호수가 내신등급을 올리기 위해서 명문고를 떠난 거라면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신제도가 처음 생긴 때가 81년인가 82년인가였었는데 내신제도가 발표되던 당시에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중학생들은 내신 등급을 잘 받기 위해서 명문고를 피해서 진학하기도 했고 명문고에 진학했다가 수준이 낮은 고등학교로 전학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지방으로 전학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만약 서울에서 3등급이던 학생이 지방으로 전학을 가면 그 이상을 받을 것 같지만 지방으로 가도 3등급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게 말하자면 흔히 알려지고 있는 맹모삼천지교와 같은 거다.

백효안이 자살을 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자 교장은 서율을 불러 교내 1등은 했어도 전국 석차를 백효안 만큼 끌어올리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늘 백효안보다 성적이 낮아 이겨보기 위해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파란약을 먹어왔던 서율은 약을 더 먹으며 구토를 할 정도로 스스로 몸을 망가뜨리고 성적 향상을 위해 스스로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계속해서 백효안과 비교되며 백효안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상황에 서율의 스트레스는 높아만 간다.

막장고로 전학 간 민호수의 경우도 답답하기만 하다. 등교하는 첫날부터 찍혔던 교사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벌점을 매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고는 벌점에서 구제해주기 위한 특별 교육이라며 몽둥이 찜질을 한다. 체벌 전면 금지 조치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지만 '정글피쉬 2'에 나오는 이 막장고 교사의 감정적인 체벌은 절대적으로 금지되어야 하고 이런 교사는 아예 파면은 물론이고 어디서든 교육 관련 일을 두 번 다시는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명문고에서는 성적으로 애들을 잡고 막장고에서는 몽둥이로 애들을 잡는 이런 설정들이 현실을 가감없이 반영한 거라면 정말 보는 내가 다 숨이 막힌다. 도저히 피난처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살아남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드라마 홈페이지에 보면 백효안은 윤동주의 병원을 인용해두었다. 암울하기만 했던 시대에 썼던 시인의 시를 지금 학생들의 고민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소품으로 삼는 것은 넌센스다. 게다가 윤동주의 병원은 암울한 현실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암울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로 보는 게 맞다. 원래 윤동주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을 '병원'으로 붙일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세상이 온통 환자투성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환자들은 병원을 찾아가야 병을 고치고 병원은 환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있는 곳이어서 병원을 선택하려 했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윤동주의 병원은 절망이 아니라 확실한 도피처이고 건강한 곳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자살을 선택한 백효안에게 윤동주의 글을 인용해 둔 것은 좀 실망스럽다. 드라마라면 이러한 시를 단순히 호랑말코 같은 시험준비를 위해서 머리로만 읽어야 하는 학생들에게 가슴으로 감성적으로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선택한 캐릭터의 내면을 대변하는 듯한 소품으로 활용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윤동주의 글은 대부분 좋아하지만 자주 암송하던 시 중에 '또 다른 고향'이라는 시가 있다.

'정글피쉬 2'가 청소년 드라마라면 극단적인 현실을 뽑아서 청소년이 아닌 시청자마저 암울하게 만들 게 아니라 암울한 현실에 처한 청소년들에게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희망적이고 밝기만 한 그런 의미없는 드라마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민과 그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고 현실에 쌓인 불만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해방구로 여길 수도 있는 교육 현실에서는 어려울 수도 있는 역할을 드라마라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글피쉬 2'를 2회까지 시청하고 보니 청소년 드라마의 경우는 정치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직은 백효안이 자살을 선택한 데 얼마나 잔인한 진실이 숨어 있는지를 알 수는 없다. 백효안은 가화고의 영어 선생과의 불륜을 의심할 수 있는 장면이 나왔으나 실제 불륜이었던 것으로 전개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소문만 무성한 것으로 끝낸다 하더라도 교사와 제자의 불륜 의혹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한 것은 비난 받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백효안의 자살이나 민호수의 패배주의적인 현실도피로는 정글의 법칙을 바꿀 수 없다. 윤동주 시인처럼 관념적인 스스로의 도피처를 만들어서라도 살아 남아 어른들이 만든 정글의 법칙을 바꿔라. 살아남은 자들이 정글의 법칙을 더 잔인하게 바꿔나가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런 개악이 아닌 개선을 하고 싶은 자들이 살아남아 실천에 옮겨야 세상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