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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 아침 식단이 불만인 배해원, 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도 오늘이면 마지막회가 방송된다. 내용 전개나 연출 등에서 참으로 어설프고 엉성한 면을 많이 노출했던 어찌 보면 수준 미달의 드라마였지만 그래도 보던 드라마가 끝난다는 건 늘 아쉬움이 남게 한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19강에서 가장 의미가 컸다고 보는 장면은 하인수의 찌질한 꼬봉으로 보였던 설고봉이 제 목소리를 내며 의미있는 반란을 했던 것이었다.

김윤희가 종묘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걸오와 구용하 그리고 이선준은 종묘로 달려간다. 걸오가 홍벽서 복색을 하고 관군들을 유인하는 동안 이선준은 김윤희를 피신시킨다. 걸오는 관군에게 칼을 맞고 간신히 도망을 치지만 부상이 심한 상태로 몸을 숨기는데 그 앞에 구용하가 나타난다. 구용하는 바로 종묘로 가지 않고 사병을 데리고 왔었고 사람을 시켜 부상당한 걸오를 업고 성균관으로 피신시킨다.

그런데 장의 하인수가 장의의 직권을 남용해 병조의 관군들을 이끌고 성균관으로 쳐들어와 한편으로는 금등지사를 찾고 한편으로는 부상당한 홍벽서를 잡기 위해 성균관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자고 있던 성균관 유생들은 놀라서 잠을 깨고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존경각과 명륜당 등 성균관은 장의 하인수가 이끌고 온 병조에 소속된 관군들의 군홧발에 유린당한다.

하인수는 관군들을 이끌고 부상당한 걸오를 찾기 위해 청재를 뒤지며 잘금 4인방을 압박해온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선준은 구용하의 임기응변으로는 위기를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홍벽서라는 누명을 쓰고 대신 희생하기로 결심한다. 이선준이 그런 결심을 한 것은 적어도 이 나라 조선에서 이 정도 원칙이 지켜지길 바라는 건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을 나누고 신의를 지키고 싶은 부상 당한 걸오를 금부로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용하는 이선준이 좌상의 외아들이므로 아무리 병판이라지만 함부로 하지는 못할 거라는 믿음으로 이선준의 계획에 동의한다. 또한 병조의 관군들이 성균관으로 밀고 들어온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로서 바로 잡으려는 계획을 꾸민다. 구용하의 계획은 병조 관군들이 성균관에 난입해 무고한 성균관 유생을 끌고 간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상소를 올리고 무고한 이선준을 석방할 것과 병조 관군들의 사죄를 요구하는 권당을 도모하기 위해 성균관 유생들의 뜻을 모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구용하의 이런 계획은 이미 호구조사를 통해 구용하가 양반이 아닌 중인이라는 약점을 잡고 있는 장의 하인수의 협박을 받으면서 난관에 봉착한다. 홍벽서를 자처한 이선준의 올곧은 신념과 부상 당한 몸을 이끌고 아비인 대사헌에게 이선준을 구명하러 찾아 간 걸오를 떠올리며 고민하던 구용하는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명륜당으로 향한다. 구용하는 하인수에게 성균관 유생의 긍지를 저버렸으므로 장의직에서 물러나달라고 말한다.

하인수는 구용하가 중인이므로 성균관에서 재임을 할 자격이 없다며 구용하의 약점을 공개하고 모인 유생들이 동요한다. 구용하는 대대로 시전상인으로 지내 온 중인 집안으로서 아버지가 아들자식에겐 번듯한 집안을 물려보겠다고 형조참의를 지낸 조부의 족보를 사들였고 아니 정확히 양반의 허세를 사들였다고 유생들 앞에서 고백한다. 구용하의 약점을 잡고 흔들면 더는 권당을 주도하지는 못할거라고 생각했던 하인수는 당황한다.

구용하는 유생들 앞에서 무례한 병조와 이선준의 무죄를 알리기 위한 권당을 결정짓는 자리였었는데 오늘 하려 했던 모든 소임을 김윤식에게 맡길 생각이라고 밝힌다. 또한 '내가 자격이 없는 건 중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론 그렇게 안 살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하인수를 돌아보며 여기는 성균관이고 나는 구용하니까 이제 더 이상은 협박 따윈 안통한다는 걸 말하고 있는거라고 말한다. 구용하의 뒷모습은 왠지 측은해 보이지만 오히려 홀가분해 보인다.

구용하는 김윤희에게 유생들 중에서 이선준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간절한 사람이므로 자격이 있다며 지금으로선 이선준을 구명할 유일안 길이 권당을 이끌어 내는 일인데 이제 김윤희의 몫이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김윤희는 유생들을 찾아다니며 권당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지만 중인의 신분임을 속여왔던 구용하의 말은 못 믿겠다며 다들 회피한다. 상소는 임금에게 가는 건데 잘못 썼다가 패가망신하고 출사길이라도 막히면 낭패라며 외면하기도 한다.



하인수가 나타나 권당에 참여한다는 것은 장의 하인수에게 맞서겠다는 뜻인데 누구든지 구용하 꼴이 나고 싶다면 나에게 맞서도 좋다고 협박하고 이에 주눅 든 유생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의기양양해진 하인수는 김윤희에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는 자가 길을 내는거라고 한다. 그러나 김윤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렇다면 그 힘을 가져야겠다며 내일 아침 권당에 나서기 전 이 성균관을 관군에 함부로 내준 장의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맞선다.

그러나 성균관 유생들의 동참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고 결국 권당은 어려운듯 보였으나 김윤희와 구용하 앞에 성균관 대사성이 나타나 이선준이 홍벽서가 아니라는 증거와 왕이 이선준을 방면할 수밖에 없는 명분을 찾으면 된다고 말하며 다시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김윤희와 구용하는 아비 대사헌에 의해 고방에 감금된 걸오를 구해내 홍벽서를 뿌린다. 홍벽서가 감옥 안에 갇혀 있어도 세상에는 여전히 홍벽서가 존재하니까 이선준은 홍벽서가 아니라는 명확한 명분과 증거가 된다는게 바로 성균관 대사성이 낸 계책이었다.

마침내 권당을 하기로 한 날 아침 간밤에 홍벽서가 도성에 또 나타났다는 조보를 본 유생들이 하나 둘 김윤희에게 모여들기 시작한다. 성균관 내 소론의 우두머리 소론과 남인들의 청재인 동재 색장이고 재회 재임이기도 한 남명식은 김윤희에게 말한다. "나 안다. 난 때때로 비겁하고 겁도 많아. 그래서 난 이 성균관이 다른 어디보다 더 굳건하게 지켜지길 바란다. 성균관에 관군들이 함부로 들어온 것도 이선준을 강제로 압송한 것도 잘못이다." 그리고 전날에는 의심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허구헌 날 머리는 산발하고 허름한 옷을 걸치고 다니던 걸오도 의관정제한 말끔한 차림으로 나타나고 유생들은 궁으로 향한다. 하인수가 막아서서 협박을 해보지만 이미 유생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고 유생들은 김윤희의 뒤를 따른다. 분노에 찬 하인수의 곁을 지나며 구용하가 하인수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한다. "경고했었지? 유생들이 모두 다 지켜보고 있다고. 우리가 널 먼저 버린게 아니다. 자네가 이 셩균관을 버린게 먼저였다. 잊지 마라."

바로 이 때 거짓말같은 일이 일어난다. 장의 하인수의 가랑이 사이를 기며 꼬봉 노릇을 하던, 둔하고 눈치가 없어 임병춘에게조차도 갖은 구박을 받던 찌질한 설고봉이 하인수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설고봉은 병조 관군들에 의해 존경각이 유린되고 서책들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 분노하지만 하인수에게 내놓고 표현하지는 못했다. 또한 '간밤에 다친 유생들도 있고 명륜당에 관군들이 들어선건 보기 안좋았으니 다음부턴 관군들이 필요한 일엔 우리를 쓰라'고 하인수에게 권고하는 강무에 힘입어 설고봉은 자기도 그랬다며 귀한 서책들이 망가진 건 보기 안 좋았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표명해 보지만 '의견 갖지 말라 했다'는 하인수에 의해 무시당하고 만다.



그랬던 설고봉이 마침내 장의 하인수에게 반기를 들고 나도 유생들을 따라가겠다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임병춘이 미쳤냐고 입막음을 하면서 사태를 무마하려고 하지만 설고봉은 임병춘의 손을 뿌리치고 장의를 똑바로 쳐다보며 처음으로 반말을 한다. "나도 말 좀 하자. 장의 정말 모르겠어? 나같은 멍청한 놈도 지금 장의가 잘못한 걸 알고 있는데 정말 모르는거야? 니 옆에 있다간 더 멍청해질 것 같애. 나도 내 의견 좀 내고 살자."

화가 난 하인수는 설고봉을 향해 주먹을 날리지만 강무가 하인수의 주먹을 막고 나서며 '더 망가지는 꼴 못 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 둘은 유소와 권당을 결의하고 궁으로 향한 유생들을 따라가 이선준을 구명하고 병조의 사과를 요구하는 대열에 합류한다.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선을 권장하고 악을 경계하는 뜻이 없으면 그 또한 시가 아니다.

이는 정약용의 시문집에 나오는 내용이라 드라마에 등장했던 것이다. 꼭 이렇게 거창한 내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떤 불의를 보고 분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설고봉처럼 찌질한 멍청이도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고 기꺼이 분개할 줄도 안다. 잘못임을 알고도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나 그렇다고 나쁘다고 몰아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인지조차도 모르거나 잘못임을 알면서도 그에 대해 분노하기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것의 편에 서서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욕하는 자들이야말로 정말로 멍청하고 나쁜 놈들이다. 세상에 부조리가 생겨나고 그를 바로잡기 어려운 데는 이러한 멍청한 자들의 역할이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인터넷에서조차도 이런 멍청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설고봉의 반란이 가장 의미가 컸던 장면이라고 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늘 아침 식단이 맘에 안들어서 원." 드라마에 나온 유생 배해원의 이 말은 드라마에 숨어 있는 디테일의 묘미를 찾을 수 있는 장면으로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소품이나 대사를 통한 디테일이 얼마나 탄탄한가의 여부가 드라마의 격을 향상시킬 수도 격하시킬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상기한 말은 유생 배해원이 권당에 참여하면서 했던 말이고 그 전에 구용하가 권당은 아침 단식부터 시작된다고 김윤희에게 말하기도 했다. 상기한 말은 요즘 대학 구내식당의 식단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듯이 당시에도 성균관 진사식당의 식단이 맘에 안 들었다는 투정을 하는게 아니다.

상기한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고 그래서 저 한마디에 담긴 의미가 큰 것이라고 하겠다. 조선초기에 권당은 유생들이 집단적으로 일제히 성균관을 비운다는 공관(空館)과 혼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중기로 넘어오면서 권당은 유생들이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행동이었고 문묘에 사직하고 성균관을 비우는 행위를 공관이라고 했다. 유생들이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한다'는 행위의 의미는 곧 '원점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된다. 원점(圓點)이란 성균관에서 행한 출석 점수라 할 수 있는데 성균관 유생들은 아침과 저녁 두 번 식당에 들어가서 서명해야 원점 1점을 얻고 원점 300점을 취득하면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원점 300점의 의미는 곧 성균관에서 300일간 거관수학했다는 것을 뜻한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엉성한 플롯과 어설프고 무성의한 연출로 실망하게 했지만 19강에 나온 이 한마디가 상당 부분을 감쇄했기에 높이 평가하고 싶다.



금등지사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반촌으로 나 있는 성균관 문에 묻혀 있었다. 나는 이전 글에서 바꿔치기 된 사직상소문을 비교해가며 정조가 이미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보았었는데 역시 잘금 4인방에게 공개된 사직상소문을 보았을 때 가졌던 불쾌함대로 사직상소문은 어설프고 무성의한 소품의 문제가 맞았던 모양이다. 판이하게 다른 두 사직상소문만 놓고 보면 제작진들의 무성의함에 불쾌함까지 갖게 될 정도다. 또한 學文之意向 始組之國社가 성균관 입구의 문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學文之意向은 그렇게 봐줄수도 있다고 치더라도 始組之國社는 아무리 봐도 성균관과 종묘의 신위를 뒤지던 잘금 4인방의 판단이 옳은 것 같기에 말이다. 하여튼 이 사직상소문의 경우는 참으로 황당하다.

그리고 몇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이 중차대한 사직상소문을 벌건 대낮에 그것도 김윤희 혼자서 삽질해서 땅을 파고 꺼내 그 자리에 앉아 내용을 모조리 읽기까지 하는 것은 좀 심한 것 같다. 매 회마다 이렇게 납득하기 어려운 몇몇 장면이 등장해 왔었기에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장면들이 드라마의 격을 형편없이 낮추게 된다는 것을 제작진들이 알게 되었으면 한다.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달달한 연애 이야기와는 별도로 상기한 배해원 유생이 언급한 식단의 경우처럼 탄탄한 플롯과 디테일에서 시청자들은 훨씬 더 큰 만족과 희열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