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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전우' 반공 아닌 반전, 드라마의 추억

   
   
   

어제 드라마 '전우'가 최종회를 방송하며 끝이 났다. 이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2010년대에 무슨 반공을 소재로 한 전쟁드라마인가 그런 생각이었으므로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시청한 것은 아니었고 그 후로도 매회마다 꼬박꼬박 시청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에 대해서 언급을 해본다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를 시청하던 중에 드라마 '전우'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만한 상당한 의미를 갖는 장면이 있기에 그것을 언급하고 아울러 예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전우'에 대한 추억을 써보려고 한다.

드라마 '전우'가 방영되는 시간대에 여유가 된다면 드라마 '전우'를 시청하곤 했던 이유는 드라마적 재미만을 위해 역사적 사실은 도외시하는 타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거의 새로 쓰다시피하는 것은 결코 문화적 콘텐츠가 될 수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드라마 '전우'를 몇 번 보다보니 2010년판 드라마 '전우'는 단순히 반공드라마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드라마는 반공보다는 반전에 대한 메시지였고 전쟁이라는 비극과 전쟁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근본적인 고민을 잘 표현해낸 드라마였다고 평가해보고 싶다.

드라마를 시청하던 중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분대원들이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장면이 나왔다. 포로수용소에는 마치 악마와도 같은 인민군 보위부 여성군관인 윤정임이라는 여성이 포로들을 총괄관리한다. 윤정임은 인민군 탈영병들과 국군 또는 유엔군 포로들 중에서 대표를 뽑아 싸움을 붙이고 지는 쪽은 굶기는데 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면 결국 전향의 종을 울리고 인민군이 되어 또다시 전장으로 내몰린다. 또한 국군 포로들 중에서 몇 명을 착출한 후 국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겨 국군들끼리 서로 적이 되어 으르렁거리며 싸우게 만들고 서로를 믿지 못하도록 이간을 붙인다.



박중사 일행이 포로수용소에 들어온 후 자치대장이 국군 포로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자 윤정임은 박중사를 새로운 자치대장으로 만들기 위해 함정을 판다. 이 함정에 걸려버린 박중사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윤정임의 시나리오대로 자치대장이 되어 국군 장교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게 된다. 이렇게 되자 동료 분대원들마저 박중사를 배신자라 부르고 침을 뱉으며 경멸하고 증오하게 된다. 국군 포로이면서 다른 국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자치대들은 인민군들보다 더 악랄하고 지독하게 국군 포로들을 괴롭히는데 그들 또한 윤정임의 덫에 걸린 자들로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박중사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국군 포로들은 어떻게 오자마자 저럴 수 있느냐며 모욕하고 동료 분대원들조차도 박중사에게 뭔가 사정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해보지만 의심까지 버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결국은 동료 분대원들마저도 박중사를 배신자로 낙인 찍고 침을 뱉으며 경멸하게 된다. 지극히 간단한 함정 하나만으로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나들며 쌓아왔던 전우들끼리의 신뢰를 한순간에 깨버리고 서로 원수처럼 갈라져서 경멸하고 증오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포로수용소에서의 장면들은 드라마 '전우'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싸움이라는게 처음부터 싸우려는 의지를 갖고 싸우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싸울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도 마주 세워놓고 한 대씩 때리라고 강제한다면 처음에는 서로가 살살 때리지만 조금씩 그 강도가 세지면서 나중에는 그 둘은 마치 원수라도 되는듯 서로가 피튀기는 싸움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의도되지 않은 가장 작은 싸움의 규모를 키워서 생각하면 그게 바로 전쟁이다. 일선에서 서로 마주보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병사들은 죽이고 싶지도 않고 죽고 싶지도 않지만 자기가 보는 눈앞에서 상대에 의해 부모형제가 죽어 나가고 옆에 있던 전우가 죽어 나간다면 결국 그들은 서로 원수처럼 싸움을 시작하게 되고 뼛속까지 증오하게 된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권력욕에 눈 먼 권력자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원수처럼 증오하고 싸움을 하는 것은 싸움을 일으켰던 권력자들이 아니라 애초에 싸울 생각조차도 없었던 일선 병사들이다. 마치 권력자들이 일선 병사들끼리 강제로 싸움을 붙이고 그들이 서로 원수처럼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 되는 셈이다. 권력자들이야 어차피 권력욕만 채우면 될 것이니 일선에서 싸우다 죽어나가는 병사들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권력자들은 후방에서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에 대한 의지나 당위성도 없이 전쟁에 참여하고 죽어나간 댓가로 주어지는 일계급 특진이나 훈장들이 영문도 모르게 죽어나간 보상이 될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윤정임은 또한 사상교육을 하겠다며 국군 포로들에게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서 써내라고 하는데 가장 모범답안을 써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부상은 담배 한갑이다. 이 담배 한갑을 얻기 위해 국군 포로들은 의지나 신념과는 상관없는 이른바 소설을 써내려간다. 이러한 과정을 여러번 반복하다보면 자기가 써내려갔던 그 소설의 글들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 상태가 바로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위의 관념에 의해서 세뇌당해버리는 상태라고 할 것이다.

염하사는 글을 몰라 인민군이 대필을 해주게 되는데 마음에도 없는 글을 써내려간 다른 사람들의 글보다 당연히 우수한 내용이었을테니 염하사가 담배를 받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국민들 태반이 까막눈이었을텐데 그런 그들이 자본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 알고 전쟁에 참여했을리가 없다. 아마도 대부분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장터로 내몰렸고 그 전장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고향에 있는 부모형제를 살리기 위해서 싸워야 했을 것이고 싸우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고 증오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 총을 들고 전장터로 나간 사람들 중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알아 자본주의를 수호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갖거나 권력자들에 대한 충성심으로 무장한 채 전쟁에 참여했었던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



엄친딸이라 불리는 이인혜가 드라마 '전우'에서 맡은 배역은 정화인데 나약한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장터를 누볐던 이유는 남편이 인민군에게 총살당했기 때문이었다. 정화는 국군이나 인민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시아버지이자 마을 장로인 태식과 함께 게릴라 전투를 벌이는데 필요에 의해 국군을 돕기도 하지만 끝내 인민군에 의해 고단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아마도 당시 전쟁에 참여해야 했던 사람들의 사연은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숫자 만큼이나 많을 것이나 그들은 전쟁을 하면서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죽여야되는 원수로 여기며 증오하게 되었을 것이다.

드라마 '전우'를 떠올리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한가지 정도의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흑백 텔레비젼으로 방송을 보던 시절에 지금의 '전우'와 동일한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적이 있었다. 2010년판 드라마 '전우'는 선임하사인 이현중 중사가 주인공이나 예전의 드라마 '전우'는 소대장이 주인공이었고 당시의 드라마는 말 그대로 반공드라마였다. 그 때 당시에는 유선방송이 없었고 옥외 안테나에 의지해서 방송을 보던 시절이었기에 '전우'가 방영되는 시간 즈음이면 조금이라도 더 방송수신을 원활하게 해보려고 옥외에 나가 수없이 안테나를 돌려보며 씨름했을 정도로 즐겨보았던 드라마였다.

이렇게 '전우'를 보면서 자라는 아이들이 주로 하는 놀이가 바로 전쟁놀이였다. 요즘이야 진짜 총보다 더 진짜같은 장난감 총이 널렸지만 그 당시엔 총이라봐야 총 모양같이 생긴 나뭇가지를 꺾어 다듬은 것이고, 나뭇잎을 엮어서 머리에 쓰면 근사한 철모가 되었고, 서로가 편을 갈라 곳곳에 은신처를 만들어서 아지트라 부르며 죽었다 살아났다를 반복하는 전쟁놀이를 하면서 자랐다. 물론 그 어린아이들이 전쟁이 무엇인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전쟁놀이를 했을리는 없을 것이고 단지 드라마를 보고 그 흉내를 냈을 뿐이다. 이 당시에 드라마 '전우'의 OST였던 "구름이 간다. 하늘도 흐른다. 피끓는 용사들도 전선을 간다. 빗발치는 포탄도 연기처럼 헤치며 강건너 들을 질러 앞으로 간다."란 노래를 모르면 그야말로 간첩이라 오인받기에 딱 좋았을 정도였다.

끝없이 북한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고 강요해서 어린 세대들이 북한군을 늑대로 그려내고 북한을 원수로 전제한 전쟁놀이를 하면서 자라게 한다고 한국전쟁과 같은 민족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전쟁과 전쟁의 비극적인 참상을 사실대로 가감없이 기록하고 제대로 알리는게 더 나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이라는 비극과 전쟁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근본적인 고민을 표현해내며 단순히 반공보다는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드라마 '전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