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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여우누이뎐' 만신 천우 초옥의 죽음

   
   
   
지난 글에서 만신에 대한 몇 가지를 언급했으나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기에 이어서 써보려고 한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만신은 드라마 '여우누이뎐'에서 마치 옥에 티처럼 느껴진다. 만신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견인하는데 일정부분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고 제작진들은 그런 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으나 작품성 면에서는 결말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자칫하면 먹튀가 되버릴수도 있을 것이다. 만신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면 훨씬 더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만신은 도대체 모르는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걸 꿰뚫어보고 있다. 14회 방송에서는 만신이 조현감에게 백지의 서한을 건네면서 그 문서로 조현감의 뜻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 때 윤두수가 초옥으로 인해 정규의 혼사가 깨진 것을 사과하고자 찾아오는데 만신이 살아있음과 만신에게 써주었던 연이를 직접 살해했다고 서명한 비방거래문서가 현감에게 있음을 보고 놀란다. 윤두수는 집에 돌아와 오서방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게 되는데 윤두수를 죽이려고 식칼을 들고 숨어 있던 구미호가 이 대화를 듣는다. 구미호는 조현감을 찾아가 조현감에겐 거래문서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거래문서는 자기가 갖고 있다며 거래를 제의한다. 만신을 이런 것까지 미리 다 꿰고 있는 신의 경지로까지 격상시켜가며 그 정체를 꼭꼭 숨기고 있다는 것은 제작진들의 착각이 심각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절대적으로 보이던 만신도 자신의 죽음만은 예측하지 못했는지 구미호에게 어설픈 충고를 하다가 구미호의 일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절명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죽어 있는 퇴마사의 장기를 꺼내 먹고 있다. 이전 글에서 만신은 구미호에게 죽임을 당한게 아니라 구미호가 만신의 간을 찌르고 움켜쥐자 만신이 구미호의 손을 잡고 자신의 심장쪽으로 방향을 틀어 찔러넣음으로써 자결을 했다고 했었다. 드라마를 보면 만신이 이렇게 함으로써 득을 보는 것은 윤두수의 추격을 잠시 피할 수 있다는 것 밖에는 없었다.



드라마 '여우누이뎐'에는 만신 외에도 의문 투성이인 천우라는 인물이 있다. 천우와 만신이 어떤 관계인지는 불분명하나 만신은 천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드라마에 등장한 천우에 대한 단서는 천우가 '기생 매향의 아들'이라는 것과 천우의 '세치 혀로 인해서 어미인 매향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신은 매향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매향의 아들인 천우와는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았으나 천우가 연이를 찾아 동굴로 왔을 때는 단박에 천우를 알아보고 매향을 쏙 빼닮았다고 말했었다.

한 때 만신은 윤두수의 연적(戀敵)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둘은 매향을 사이에 놓고 서로 애증이 얽히게 되었으나 매향이 죽는 결과가 생기고 말았는데 만신이 그동안 윤두수에게 별러왔던 복수의 칼을 뽑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만신이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때의 얘기다. 만약에 제작진들이 만신은 사람이라는 역스포일러를 흘린 것이었다면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만신은 구미호라고 가정하게 된다면 얘기가 좀 복잡해진다. 구미호인 만신은 사람이 되려고 했으나 그 정체가 탄로나서 죽임을 당했는데 윤두수네 선대로부터 윤두수네 집안의 일을 봐주던 사람인 원래 만신의 몸에 빙의하여 존재를 유지하게 된다. 아마도 구미호 만신에게 새끼가 있었고 그 새끼마저 윤두수의 형님이나 윤두수 또는 사람 만신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에 구미호 만신은 윤두수네 가문을 멸문지화시킬 기회를 찾으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구미호 만신과 그 새끼에게 윤두수가 연이를 살해하고 간을 꺼내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있었기에 구미호 만신은 윤두수에게도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윤두수를 곤란으로 몰아넣는 것일수도 있다.

구미호가 만신의 간을 찔렀을 때 만신이 구미호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심장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가정한 것은 초옥의 심장을 찔러야 초옥의 혼이 돌아온다는 것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것이다. 구미호 만신은 그동안 몸을 빌렸던 사람 만신을 그렇게 죽이고 잠시 몸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사람 만신의 시체를 이끌고 다니는 것일수도 있다. 만약 구미호 만신이 윤두수에게 발각되면 목이 잘릴텐데 그리 되면 만신의 시체를 끌고 다니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만신의 능력을 보면 떨어져 나간 목도 다시 붙일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매향은 아마 윤두수와 조현감 사이에 애증이 얽힌게 아닌가 생각한다. 매향은 원래 조현감의 기생이었으나 윤두수가 매향에게 정신을 빼앗겨 강제로 취한 것일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일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어떤 연유로 매향이 죽게 되었을수도 있다. 이와 관련한 단서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조현감의 집요함과 비열함 정도가 어떤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정도다. 매향이 죽는 과정에서 천우는 어떤 관여를 했는지도 현재로서는 짚어낼만한게 전혀 없다. 하여튼 천우는 뭔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했음에도 그로 인해 뜻하지않게 자신의 어미가 죽임을 당하자 그 후로는 말문을 닫고 살아왔다.

매향이 구미호 만신과 얽혔다고 볼 수도 있다. 천우가 구미호나 연이를 대하는 것을 보면 처음이 아니라는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연이를 잃은 구미호가 다시 돌아왔을 때나 연이가 초옥에 빙의하여 돌아왔을 때도 천우는 마치 새로울게 없다는듯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경우라면 누군가가 구미호 만신의 새끼를 죽이려고 했었는데 천우는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었고 구미호 새끼를 죽인 사람을 발설하는 바람에 매향이 죽게 되었을거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하여튼 이런 부분들도 드라마의 전개를 위해서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드라마에는 단서로 삼을만한 것이 전혀 없기에 어떤 것이든 추정해본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갖가지의 의문점들을 남은 2회 동안에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이 좌르륵 풀어헤쳐버리며 기대에 못미치는 결말을 내버린다면 이 드라마의 가치는 와르르 무너지고 실망감은 배가(倍加)될 것이다.

한편 구미호는 빙의한 연이가 양부인의 칼에 심장을 찔리자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음을 무릅쓰고 여우구슬을 사용해 살려내는데는 성공한다. 그런데 무당과 만신의 예언대로 빙의한 연이가 심장을 찔렸기 때문에 초옥의 혼이 초옥의 몸에 다시 돌아와버린다. 깨어난 초옥은 자기를 살려낸 구미호에게 천한 손을 대지 말라하고 침을 뱉으며 실성을 한 것이라 모욕한다. 그리고 방울노리개를 떨어뜨리고 가버린다. 이어 윤두수와 만나게 된 초옥은 구미호가 자기를 칼로 죽이려던 것이 분명하다며 구미호에게 벌을 내리라고 한다. 양부인도 옆에서 초옥을 거들고 나서지만 초옥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할 뿐이기에 윤두수는 구미호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다.



구미호는 여우구슬로 살려낸 것이 빙의한 연이가 아니라 초옥임을 알고 '우리 연이가 가버렸네. 우리 연이가 가버렸어. 연아 어째서 또 어미를 혼자 두고서 간 것이냐. 다시는 떨어지지 않기로 약속해놓고선 이렇게 혼자서 가버리면 이 에미는 어찌하느냐'고 울부짖지만 소용이 없다. 집으로 돌아 와 초옥을 만나 연이의 방울노리개를 안겨보지만 초옥은 천한 것이라 뿌리치며 한번만 더 천한 주둥아리를 놀리며 하대를 했다간 다시는 말을 못하게 입을 꿰맬 것이라고 한다. 연이의 간을 먹고 살아났던 초옥은 '니 딸 연이가 그리 죽어 내 너를 봐줄것이라 생각했느냐'며 예의 잔인한 초옥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구미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양부인은 구미호를 광에다 가두고 여우피를 구해 와 구미호에게 먹이고 온갖 모욕을 하며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두 눈 뜨고 지켜봐주겠다며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보름달이 뜨고 여우구슬을 회복한 구미호가 양부인의 목을 조르는데 밖에 초옥이 나타난다. 초옥의 소릴 들은 구미호는 또 다시 망설이게 되는데 안으로 들어온 초옥이 구미호를 밀치며 이젠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날 것 같다고 하자 양부인이 위험하다며 초옥의 손을 잡아끌고 나간다.

구미호는 여전히 연이가 초옥의 몸에 빙의하여 돌아올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차마 초옥을 살려놓을수도 없고 죽여버릴 수도 없는 그러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 어떤 식이든 화해 시나리오는 어쭙잖은 것 같고 결국 구미호는 초옥을 죽일 것이다. 구미호가 받은대로 복수하는 길은 초옥의 간을 꺼내 윤두수 앞에 내놓는 것이나 초옥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초옥에게서 연이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옥에게서 더 이상 연이를 찾을 수 없고 초옥의 몸에 연이가 빙의하여 돌아올 방법은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면 구미호는 초옥을 죽일 것이다.

구미호는 초옥에게서 더 이상 연이가 보이지 않고 초옥에게 연이만 없으면 초옥을 죽일 것이지만 연이가 빙의할 초옥마저도 더 이상 없기에 구미호는 피눈물을 닦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미호는 연이의 '어디까지 왔나' 노래를 쫓아 거기에서나마 연이와 함께 있음을 느끼며 인간세상을 떠날 것이다. 어쩌면 구미호는 천우와 혼인해서 살게 되는데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으로 연이가 환생해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드라마 '여우누이뎐'이 끝난다면 연이가, 연이를 연기했던 김유정이 당분간 그리워질 것 같기에 그러한 아쉬움으로 인해 가져보는 희망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