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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누이뎐' 초옥의 지랄병 & 치료법

드라마 '여우누이뎐'을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몇 가지 사실이 있는데 이 글은 어제의 글에 이어지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사실(事實)이라고 했더니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자들이 있는데 사실을 토대로 한 작가의 상상을 사실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평균값이 8이라고 했더니 9인 경우도 있고 6인 경우도 있는데 왠 억지냐며 어깃장을 부리는 자들이 있는데 평균값이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으면 공연히 트집잡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 평균값이라고 썼으면 내가 평균값이 무엇인가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글을 써서 읽어달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댓글을 써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고, 그 글을 읽었다고 내가 댓가를 받는 것도 없다. 글 하나를 쓰기 위해서 나는 여러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렇게 나온 글이 읽는 자들에게 불편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달랑 몇 분을 투자해서 읽은 자들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말이나 함부로 써대고 가도 된다는 법은 대체 누가 만들었나? 내가 누군가에게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윤리적 도적적으로 어긋나는 내용을 쓴 것도 아닌데 단지 내가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무례한 언행들을 모두 다 용인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래도 뭔가 대화가 하고 싶다면 먼저 예의를 갖춰라. 왜 자기의 무례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돌아다니는가?

글을 시작하면서 괜히 사설이 길어졌는데 아마도 날씨 탓이려니 생각한다. 내 글을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시는 몇몇 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마음이다. 여전히 내 시간 허비하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건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여우누이뎐'을 관통하고 중요한 사실은 예전의 글에서 언급했던 빙의망상(憑依妄想)과 어제 썼던 '연이의 간' 그리고 오늘 쓰게 될 '초옥이 앓고 있는 병'이다. 이 세가지는 드라마 '여우누이뎐'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고 이 드라마 대본을 쓰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초옥의 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먼저 드라마에 나온 초옥이가 앓고 있는 병과 관련한 단서를 모아 보자. 초옥은 앓고 있는 병으로 인해 타고 난 운명은 길어야 십년인데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초옥이와 똑같은 시에 태어난 아이를 찾아 간을 꺼내 먹으면 초옥은 살 수 있다.

그럼 초옥이 앓고 있는 병은 무엇일까?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러 정황을 보면 초옥이 앓고 있는 병은 간질('지랄병'은 속된 표현)이다. 몽유병 환자처럼 멍하니 돌아다닌다든가, 환청에 시달리고, 환상을 보기도 하고, 설당과자를 즐겨먹기도 하고, 느닷없이 앞이 안보이기도 하고, 이런 등등은 간질의 갖가지 증상들이다. 초옥이 간질이라는 가장 그럴싸한 단서는 바로 어디선가 들리는 방울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초옥은 사지를 부르르 떨면서 바닥에 혼절해 있었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이 장면은 우리가 보통 간질 발작증상이라고 알고 있는 장면이지만 실제로 간질 증상은 다양하다고 한다.



이 때 구미호가 나타나 초옥이의 혈자리를 눌러 주어서 안정시킨다. 구미호는 "쇤네 아이도 가끔 경기를 일으켜 혈자리 몇 군데를 익힌 것 뿐"이라고 윤두수에게 말을 하는데 연이는 소아기때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간질이었을 수도 있고 단순한 경기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초옥의 경우는 상당히 중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초옥의 병세가 중증이었는데 그 치료법은 다름아닌 초옥과 똑같은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같은 시에 태어난 아이의 간을 꺼내 먹는 것이다. 여기서 갑자년월일인데 시는 단지 '똑같은 시'라는게 좀 재미있다. 그리고 드라마는 반드시 연이의 간이어야 초옥을 살릴 수 있다고 얘기를 전개해왔다. 이전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갑자년월일에 초옥과 똑같은 시에 태어난 아이라는 것은 비방의 신비성을 더하려는 것일 뿐이고 반드시 연이의 간이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양부인에게는 좀 의미를 다르게 봐야 한다. 왜냐하면 양부인의 투기심이 발동하면서 양부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연이의 간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미신들이 판을 치던 때였고 무당들은 인간들의 나약함을 볼모로 삼아 비인륜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초옥이가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자 윤두수는 올빼미를 사냥해서 올빼미의 눈을 빼 초옥에게 먹이기도 하는데 이런게 모두 근거 없는 미신들인 셈이다. 초옥이의 병은 어린아이의 간을 꺼내 먹으면 낫는다는 만신의 비방도 역시 이런 근거 없는 미신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여기서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무당이 접신할 때의 행위와 간질 발작의 증세가 유사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본문의 내용과는 별로 상관은 없다.



간질은 마귀에게 홀리거나 저주 받은 사람에게 일어난다는 미신적인 오해와 편견이 있었는데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굿을 한다든지 안수기도를 한다든지 하여 간질을 완치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구미호가 출몰한다는 그 옛날에는 상황이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고 무당의 눈속임에 놀아나 비인륜적인 짓을 저지르는 일은 숱하게 많았을 것이다.

초옥의 병과 관련해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연구에 참여한 간질 환자들은 보름달일 때만 발작했다'는 미국의 임상의학 연구결과다. 150년 전 영국 법에 의하면 미친 사람을 ‘평상시에는 정상이지만, 보름달일 때 잠시 이성을 상실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런데 미국의 한 연구팀은 '보름달이 뜰 무렵 간질 발작이 많아진다는 것은 낭설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 기간중에 非간질성 발작이 늘어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경성기담-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을 보면 경악할만한 사건이 나온다. 1933년 5월 16일 일어난 '단두유아(斷頭乳兒 ; 목 없는 아이)' 사건이 그것인데 석탄상점에서 일하는 가난하지만 선량한 노동자였던 범인이 '간질병을 앓는 아들이 어린이의 뇌를 먹으면 나을 수 있다'는 미신을 믿은 지인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어린아이를 머리를 베고 뇌수를 꺼낸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 댓가로 범인은 당시 돈으로 2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 끔찍한 사건은 옛날 얘기만은 아니라 불과 몇 달 전에도 중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간질을 앓고 있는 범인이 아이의 뇌가 간질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미신을 믿고 아이를 죽여 뇌까지 꺼내먹은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었다는 기사가 나왔었다.

미신이라는게 가만 보면 드라마 '여우누이뎐' 속에서 초옥이 앞을 보지 못하자 올빼미의 눈을 빼서 먹인다는 것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식이다. 초옥에게 올빼미의 눈을 빼서 먹인 것은 아마 야맹증을 동반하는 간질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그리고 초옥이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을 간에 있다고 보고 연이의 간을 꺼내 먹으면 낫는다고 여겼을 것 같다. 하지만 간질의 원인은 간에 있지 않고 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는 아이의 뇌를 꺼내 먹으면 낫는다는 미신으로 발전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결국 아는게 병이지만 막다른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고 거기에 신비주의를 더한다면 누구라도 믿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부적 몇 개 붙여 놓는다고 해서 설마 우환이 사라지고 집 안에 온갖 잡귀가 침범하지 않기야 하겠는가? 그래도 궁지에 몰리면 이런 부적이라도 찾게 되는 것이 나약한 인간일 것이다.

드라마 '여우누이뎐'은 작가의 신선한 상상력으로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가고 있다. 연이가 초옥에게 빙의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연기자들도 그렇지만 시청자들도 상당히 혼란스러울 것 같다. 연이와 초옥 또는 구미호와 윤두수 그 외에도 정규와 천우 등 누구의 감정선을 따라가야 할 지 혼란스러울수도 있지만 그것이 드라마 '여우누이뎐'만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요소 중에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