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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누이뎐' 연이의 간 & 만년사망

드라마 '여우누이뎐'에서 실타래 하나가 풀려버렸습니다. 오늘은 드라마 속에서 풀려버린 실타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연이의 간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초옥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왜 하필이면 반드시 연이의 간이 필요했었는지 그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연이의 간 이야기는 드라마 '여우누이뎐'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소재 중에 하나인데 연이의 간과 관련한 이야기를 이해하면 월요일 방송을 이해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여우누이뎐' 월요일 방송에 대한 소회는 일단 미루고 이 글을 먼저 쓰는 이유입니다. 혹시라도 월요일 방송에 대한 제 글을 기다리셨던 몇몇 분들을 위해서 여유가 생기면 나중에라도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디 한 번 실컷 발버둥쳐 봐라. 니 년이 죽을 때까지 내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초옥이가 연이를 우물에 빠뜨리고 했던 말이기도 하고 초옥의 상상 속에 나타난 연이가 초옥을 물에 빠뜨리고 초옥을 내려다보며 연이가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왜 이러는거냐?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느냐? 대체 왜?"라고 우물에 빠진 초옥이 연이를 올려다보며 묻자 연이는 "니가 내 간을 먹었잖아? 내 간 내놔. 내 간 내놔."라고 소리치며 구미호의 이빨을 드러냅니다.



드라마 '여우누이뎐'은 반드시 연이의 간이어야 초옥을 살릴 수 있다고 얘기를 끌어 왔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연이의 간이어야만 초옥을 살릴 수 있었을까요? 이 의문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만년사망' 이야기인데 그럼 만년사망은 무엇일까요?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만년사망에 대해서 알겠지만 만년사망 이야기는 드라마 속에서 두 번 등장합니다. 이제부터 시점을 과거로 거슬러가면서 반드시 연이의 간이 필요했던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합니다.

연이가 죽어갔던 칠성판 위에 결박되었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양부인은 집으로 돌아와 초옥이를 어디로 빼돌렸냐며 구산댁을 몰아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초옥은 '그저 자다가 일어난 것 뿐'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있었기에 기가 막힌 윤두수는 양부인을 불러 말합니다. "세상에 있지도 않은 만년사망 이야기를 만들어 감쪽같이 나를 기망하고 능멸했소." 여기서 한차례 만년사망 이야기가 나오는데 좀 더 과거로 거슬러가면 만년사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윤두수는 저잣거리에서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용한 의원을 만나게 되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초옥의 병세를 살펴보게 합니다. 그 용한 의원은 "장연세자께서도 소시적에 이런 병을 앓으신 적이 있었지요"라면서 장연세자를 돌보던 어의였는데 낙향해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만년사망이라는 버섯을 구하면 초옥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고 대연사에 가면 구할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 말을 듣고 윤두수는 만년사망 버섯을 구하려고 대연사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윤두수가 저잣거리에서 용한 의원을 만날 때 양부인이 숨어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래의 이미지는 양부인의 행동이 약간 수상하게 느껴져서 캡쳐해 두었던 것입니다. 이 용한 의원은 결국 양부인이 매수했던 가짜 의원이었고 장연세자니 어의니 이런 건 다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양부인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윤두수가 비방일을 하루 앞둔 상태에서 연이와 초옥 둘을 다 살리겠다고 마음을 굳혀가고 있기에 불안했던 것입니다. 윤두수는 '뜻이 좋으면 어떤 일이라도 한다면 사람이 금수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가장 인간적인 고뇌를 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초옥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므로 양부인으로서는 그렇게라도 윤두수를 집에서 멀리 떨어지게 한 다음에 초옥을 살리려면 연이를 죽이는 방법밖에는 없는 극한적인 상황으로 윤두수를 몰아가려는 것입니다.

윤두수는 대연사로 찾아가 고승을 만나지만 고승은 "만년사망이라. 그것은 괴서에 나오는 것 아닙니까? 소승은 실제로 그런 것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을 해줍니다. 만년사망이란 버섯의 존재가 완전히 허구를 지어낸 것은 아니라 괴서에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시까지 집으로 돌아와야 되는 윤두수는 서둘러 선착장으로 오지만 배는 없고 데리고 간 하인이 윤두수가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러서야 윤두수는 양부인이 거짓말을 꾸며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때 오서방이 배를 가지고 나타나고 윤두수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초옥이가 사라집니다. 초옥을 찾으러 나섰던 윤두수는 죽은 형님이 초옥의 손을 잡고 데려가려고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윤두수가 초옥의 손을 놓으려하지 않자 형님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말라며 초옥을 데려가겠다고 완강하게 버팁니다. 윤두수가 자기를 데려가라고 애원하고 양부인도 나서서 자기를 데려가라고 하지만 형님은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초옥의 손을 잡아 끕니다. 다급해진 윤두수가 무엇이면 되겠느냐고 매달리며 초옥이 대신에 연이를 데려가면 되겠느냐고 울부짖습니다. 이 장면은 참 재미있는 장면인데 만신과 양부인이 모의를 해서 연출한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윤두수의 마음이 흔들리지 못하게 못박아 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장면 연출의 비밀은 설당과자와 약과에 있습니다.



저 위에 언급한 만년사망 버섯 얘기를 꺼낸 가짜 의원이 등장하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보면 좀 더 재밌는 장면이 나옵니다. 차마 연이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 윤두수는 만신을 찾아가 "초옥이도 살리고 연이도 살릴 수 있는 방도를 대라"고 다그칩니다. 초옥이가 연이는 알아보고 초옥이와 한날 한시에 태어난 다른 아이들 중에서 알아보지 못한 것은 초옥이의 성정 탓에 실수로 알아보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며 방도를 대라고 합니다. 이 때 만신이 대답합니다. "나으리께서 그리 원하시면 찾아가 보셔야지요. 혹 압니까? 귀인이라도 나타날지." 바로 그 후에 나오는 양부인과 만신이 마주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 무릎이 탁 쳐지게 됩니다. 만신과 양부인이 작당을 해서 가짜 의원을 등장시켰고 그를 통해서 윤두수의 마음이 흔들리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초옥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이의 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들이 등장하는데 이것 또한 꽤 흥미롭습니다. 연이가 실타래를 만지작거리는 장면이 나오고 연이가 집을 떠난 후에 방 안에는 풀려버린 실타래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풀지 못한 실타래가 풀려 있으니 당연한 것 같지만 그 실타래는 연이가 푼 게 아니었습니다. 연이가 그 실타래를 만지작거리기는 했지만 그 때는 구산댁이 연이에게 방울 노리개를 달아주고 있었고 뒤이어 윤두수가 찾는다는 오서방의 말을 듣고 바로 나갔습니다. 그 풀려버린 실타래는 연이가 풀었던 것은 아니고 윤두수를 옭아매기 위한 미끼로 쓰기 위해 누군가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을 가져다 놓았던 것입니다. 연이가 그 실타래를 풀 시간도 없었고 어린아이가 실타래를 풀고 저리 가지런하게 정리해놓는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경을 헤매던 초옥은 연이의 방울소리를 듣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데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깔아놓은 가장 큰 함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구미호가 새끼 연이를 찾기 위해 달아 준 방울 노리개 소리를 초옥이가 들었다는 것은 곧 초옥이가 구미호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이 함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함정에 빠졌던 것은 저밖에는 없었던 것 같고 역시 모르는게 약이었던 셈이 되었습니다. 초옥이가 방울 소리를 들었던 것은 연이의 방울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초옥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방울을 흔들었고 초옥은 그 방울 소리를 들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 초옥은 어떻게 연이를 알아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간단해 보이는데 초옥은 누군가의 방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가 혼절하고 구산댁이 혈자리를 눌러준 덕택에 안정한 후 눈을 뜨게 됩니다. 그 때 눈에 보이는 것은 윤두수와 양부인이 먼저였지만 그 다음에는 구산댁과 연이였습니다. 초옥은 "눈을 떠 보니 어떤 여자아이가 있었다"고 윤두수에게 말을 하는데 초옥은 낯선 구산댁과 연이가 각인되어 있었기에 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

연이가 윤두수네 집으로 오게 되는 과정도 재미있는데 연이를 윤두수네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은 다름아닌 계향이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관암주를 팔려다가 곤경에 처한 연이는 충일 형제 그리고 계향과 얽히면서 윤두수네 집으로 끌려오게 됩니다. 계향은 연이에게 '에미년 낯짝을 봐야겠으니 사는 곳이 어딘지 말을 하라'고 다그치는데 그냥 관아에 넘기면 될 일을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계향은 양부인의 지시를 받고 그대로 실행했을거라고 봅니다. 연이를 잃은 구산댁이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계향에게 초옥을 음해하는 비방을 구산댁의 방안에 붙이라고 지시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대충 언급이 되었으니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연이를 살해하고 간을 적출한 것은 윤두수였지만 이 모든 것을 작당한 사람은 만신과 양부인이었습니다. 만신과 양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통하고 있었는데 만신이 연이의 존재를 알게 된 상황을 추정할만한 단서는 없지만 아마도 죽은 연이의 아버지 나뭇꾼과 연관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양부인은 초옥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연이의 간이 필요하다는 만신의 얘기를 듣고 연이를 집으로 끌어들이고 윤두수가 연이의 간을 꺼내게 하기 위해서 만신과 작당을 합니다.

그런데 양부인의 의도와는 달리 윤두수는 구산댁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연이마저 딸처럼 대하려고 마음을 굳히며 연이를 살해하기를 꺼려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짜 의원을 등장시키고 형님이 등장하는 상황까지 조작해가며 윤두수를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상황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양부인의 경우 처음에는 초옥을 살리기 위해서 연이를 집으로 데려왔지만 사실은 그도 사람인데 모정만으로는 그런 끔찍한 짓을 실행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윤두수가 구산댁을 후실로 들이려하자 이번엔 투기심에 눈이 뒤집혀 초옥도 살리고 구산댁도 집에서 몰아내기 위해 인면수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신은 윤두수에게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초옥과 똑같은 시에 태어난 아이를 찾으라는 비방을 내놓는데 이것은 비방의 신비함을 더해 그런 아이를 윤두수 앞에 데려다 놓음으로써 윤두수의 선택을 강요하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연이의 간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인데 양부인의 투기심이 발동하는 순간부터는 반드시 연이의 간이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드라마 '여우누이뎐'을 관통하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는데 하나의 글에 모두 언급하기에는 힘들기에 본문 외의 것은 다음 글에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준비하는 글을 읽으면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지도 모르겠는데 최대한 빨리 정리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