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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프' 김태희, 키스 아닌 연기력을 보여줘




MBC 수목드라마 '마이 프린세스'가 종영했는데 김태희의 평소 이미지와 다른 망가지는 모습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스킨십과 키스 장면밖에는 떠오르는게 없다. 술에 취한 이설과 박해영이 계단에서 키스를 하던 장면에서 이미 조짐이 보이기는 했으나 마지막 2회 분량은 이 둘의 스킨십과 키스 장면만으로 채워졌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드라마는 분량을 대폭 줄였어도 충분했을 것 같을 정도로 별 내용도 없었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 최강 비주얼이라 불리는 김태희와 송승헌이 서로 안고 부비고 키스하는 장면들만으로 분량을 늘려도 괜찮다는듯한 제작진들의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건지 궁금하다. 드라마를 전개하는데 있어 별로 필요해 보이지 않는데도 과도하게 스킨십과 키스 장면을 등장시키는 것은 안구를 정화해준다기보다는 일종의 공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나친 거나 모자라는 거나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라는 말이다.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가 김태희에게서 연기력 논란이라는 꼬리표를 떼준 작품이라는 말이 간혹 보이기는 하는데 김태희가 이설 공주 역을 잘 소화해낸 것 같지는 않다. 김태희가 맡은 이설은 천방지축 여대생이었으나 어느 날 대한민국 황실의 공주로 밝혀져 궁으로 들어간다. 이설은 단순히 천방지축이기만 한 인물이 아니고 다양한 감정선을 살려야 하는 복잡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로서 이 둘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김태희가 연기한 이설은 평면적이었고 입체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꽤나 한심하게 보이기도 했다. 일전에 '영웅호걸'이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일부 멤버들이 반 화장한 얼굴을 공개했던 것처럼 각각 나눠서 보면 이상하지 않지만 연결해서 보면 조화가 잘 되지 않아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무엇보다 대본의 문제가 크다고 보지만 김태희도 스스로 캐릭터를 창조해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는 초반에 이영찬 대통령을 등장시켜 황실을 재건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황당한 상상으로 거창하게 시작했다. 이영찬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한으로 황실 재건 안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선포하면서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황실은 지역, 계급, 세대를 아우르는 우리의 민족적 구심점이 되어줄 것입니다. 외세에 의해 얼룩지고 상처받은 우리의 역사관을 바로 세워 국가의 자존을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

뒤이어 박동재 대한그룹 회장은 한술 더 떠 "한민족의 얼을 되살리고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조선황실의 재건을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한다. 아울러 국민투표 결과 황실재건 안이 가결되는 그 날 모든 사유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한다고 발표한다.

황실재건이라는 소재만으로도 황당한데 황실재건을 하겠다는 대한민국 대통령과 그를 지지한다는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총수가 한 말은 어처구니가 없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꽤나 뜬금 없어 보이는 작가의 상상에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난 지금 거창하게 등장했던 황실재건은 모두 어디로 가버리고 이설과 박해영의 애정 행각만 남았다. 말하자면 '네 시작은 창대했으나 네 나중은 심히 미약하리라'가 되었다고나 할까.

마지막 회에 등장하는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 또 다시 헌혈을 하면서 '국민들 관심이 온통 황실에 쏠려 분위기 좋을 때 복지 예산도 삭감하고 파병동의안도 빨리 처리해 버리자'고 '우리가 뭐 한두 번 같이 누워보느냐'는 장면처럼 현실 정치꾼을 풍자하는 것 정도는 시청하기에 불편하고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나마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지역과 특정인을 비하한다고 일부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 뉴욕에서 돌아온 박해영에게 이설이 '뉴욕까지 갔다 온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것도 안 배웠느냐'고 말하며 애정행각을 원하고 이에 박해영이 '미국 애들은 이렇게 하던데'라며 애정행각에 응해주고, 이설의 생일을 맞아 각국에서 축하 엽서가 도착하는데 '이왕 받을 거면 강대국 순으로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등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장면들이 그나마 찾아보던 의미마저 퇴색시켜버렸다.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는 무엇보다 스토리 얼개가 너무 엉성하다. 그러다보니 드라마는 특별한 내용도 없이 시종일관 갈팡질팡하며 개연성 없이 전개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의 비주얼을 잘 살려낸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다지 볼만한 드라마는 아니다.

마지막회에서 이설은 2년 동안이나 운전면허를 취득하지 못해 자전거를 타고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뒤로 일단의 황실 경호원들이 뛰어서 공주를 쫓아온다. 어렵게 재건된 황실 공주는 국민들로부터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을텐데 경호원도 없이 자전거로 통학을 한다. 경호원들이 헐떡이며 공주를 따라잡자 이설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한다. "도착하셨네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궁을 일반인들한테 개방한다든가 국민들의 인기를 끌 짓만 골라서 한다는 설정이라면 공주가 수업이 있을 때마다 헐떡거리며 뛰어다녀야 하는 경호원들의 편익은 무시해도 그만인 모양이다. 이러한 개연성 떨어지는 상징적인 장면은 지나간 방송 중에 나왔던 이설이 찻집에 앉아 큰소리로 전화할 때는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더니 엎드려 자고 있는 뒷모습만으로 공주임을 알아보는 장면이다. 이러한 장면들이 이 드라마의 수준을 가장 잘 상징한다고 하겠다.



드라마의 질은 좀 떨어지지만 김태희로서는 얻는 게 많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김태희가 망가지는 연기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연기력 논란을 상당부분 잠재우고 그로 인해 연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졌을 거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드라마를 통해 의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로부터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일종의 비호감을 없앨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반응은 향후의 작품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

그러나 김태희의 연기력을 평가하기에는 드라마의 스토리 얼개가 너무 허술했기 때문에 여전히 김태희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초반의 망가지는 연기를 빼고는 그다지 평가할만한 장면이 없다고 보는데 초반에 망가진 김태희에 대한 반응은 연기력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평소 이미지와는 다른 의외의 모습에 대한 관심 정도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아마 향후 작품에서 복합적인 감정선을 살려내는 입체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연기력 논란은 훨씬 더 거세질 수도 있다고 본다.

이설이 아버지 이한에 대한 기억을 찾으러 갔다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박해영과 계단에서 키스하는 '계단 키스'를 필두로 시작된 김태희와 송승헌의 키스 장면은 '펜션 키스', '운전 연습 중의 키스', 마지막 회에서는 '비행기 안에서의 키스'까지 참 많이도 나온다. 드라마 후반부에는 허술한 스토리 얼개의 한계에 기인한 것인지 두 배우가 보여줄 연기 자산이 그것밖에 없었는지 모르나 김태희와 송승헌의 스킨십과 키스 장면은 시도 때도 없이 과도하게 등장한다. 김태희가 차기작에서는 단순히 망가지거나 스킨십과 키스를 보여주기보다는 탄탄하고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