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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성추행 사건 은폐는 퇴영적, 뺐어야




기린예고 학생들의 성장을 그리는 드라마 '드림하이'는 과장된 에피소드도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무난하게 전개되어 왔다. 지난 주엔 현시혁이 소속사 사장 폭행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현시혁이 소속사 사장을 폭행한 이유는 소속사 사장을 만나러 갔던 현시혁이 소속사 사장에게 성추행 당하는 윤백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힌트를 주었다.

드라마가 성추행 사건을 과연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윤백희가 소속사 사장에게 성추행 당한 사건을 다룬 드라마의 전개는 최악이었다. 기린예고 교사인 강오혁과 시경진은 현시혁의 소속사 사장 폭행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지만 윤백희가 성추행 당한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성추행 사건을 아직도 대중들의 말초적인 호기심 충족을 위한 가십거리 정도로만 다룰 정도의 구시대적이고 퇴영적인 사고를 한다면 차라리 성추행 에피소드는 다루지 않느니만 못했다.

드라마는 성추행을 마치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지도 모를 시련 중에 하나이고 그것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서 시청하기가 불유쾌하다. 요즘은 특히 신체적 정신적 성장이 끝나지도 않은 아직 어리고 여린 이들이 연예계로 진출하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는데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송이 못된 시스템에 문제제기도 않는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방송에도 못된 시스템의 일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못된 자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인가?

윤백희는 표절한 곡으로 무대에 섰다가 잘못을 깨닫고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는 반칙 안 쓰고 열심히 하겠다며 소속사 사장에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소속사 사장을 찾아간다. 그런데 소속사 사장은 기회를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부탁하러 찾아온 윤백희를 성추행한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아직 고등학교 1학년생의 어린 아이를 성추행하는 추잡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때맞추어 그 자리에 나타난 현시혁은 소속사 사장을 폭행하고 윤백희를 구해낸다. 이것은 드라마이니까 가능한 우연이지 현실에서 우연이란 그리 많지 않다. 이 때에도 소속사 사장은 현시혁에게 '너 이런 식으로 나오면 백희나 너나 이 바닥에서 발 못 붙이게 하는 수가 있다'고 협박하는 찌질한 인간이다. 현시혁은 소속사 사장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되지만 윤백희의 꿈과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으로부터 윤백희를 지키기 위해 사건의 내막에 대해서 일절 함구한다.

그러나 강오혁은 현시혁 폭행사건 CCTV를 다시 보니 현장에 윤백희가 있었다는 내용의 전화를 경찰로부터 받고 시경진과 함께 윤백희를 찾아 가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다. 강오혁은 당장 사건의 내막을 밝히고 기획사 사장을 처벌하겠다고 하지만 시경진은 그렇게 되면 윤백희가 세상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것인데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 현시혁이 폭행사건에 연루된 것은 상처일 뿐이고 극복할 수 있겠지만 윤백희에게는 평생 흉터가 될 거라는 것이다.

현시혁은 아버지 현무진과 소속사 사장을 찾아가 무릎 꿇고 사과를 하고 사건을 무마하려고 한다. 그러나 현무진이 소속사 사장의 불쾌한 언행에 격분한 나머지 현시혁은 양자가 아니라 친자식이라는 사실만 언론에 공개되어 버린다.

이러한 뉴스를 보고 고민하던 윤백희는 사실대로 얘기하기 위해 스스로 경찰서로 향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고혜미는 윤백희에게 전화를 걸어 다 끝난 얘기 왜 다시 하냐며 막아보려고 하지만 윤백희는 반칙 쓰는 거 그만두고 싶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윤백희는 고혜미에게 기린예고 입시 오디션 때 같이 불렀던 '거위의 꿈'을 불러달라고 요구한다. 한길에 서 있던 고혜미는 사람들이 미쳤는줄 알겠다면서도 그 자리에 서서 윤백희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언론에는 윤백희가 소속사 사장에게 강제 추행당했다는 기사로 도배되고 기린예고 교장은 교사들을 모아놓고 현시혁과 윤백희는 새로운 기획사로부터 지명되지 않았다고 통보한다. 그리고 시경진에게 두 학생을 따로 만나 데뷔를 다시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헛꿈 꾸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다른 길을 찾도록 도와주라고 한다. 그러나 시경진은 못된 어른이 밀어서 넘어진거니까 다시 일어나게 도와주는게 교사의 도리라 말하고 이제 다른 교사들도 돕겠다며 나선다.

학교로 돌아온 윤백희에게 현시혁은 뭘 봐도 뭘 들어도 가만 있으랬는데 왜 그랬냐고 말한다. 윤백희는 생각보다 괜찮고 버틸만 하다고 대답하지만 부끄럽고 괴로워서 수업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연습실에 혼자서 연습한다. 이 때 시경진이 찾아와 앞으로 매일 밤마다 연습실에서 수업하겠다고 하고 윤백희는 시경진을 안으며 감사를 표시한다. 시경진은 뒤돌아 서 윤백희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한다. "백희야 다 지나갈거야. 걱정 마. 걱정하지 마."

성추행 사건을 대하는 시경진의 언행은 아직 고등학생인 고혜미와 비슷한 수준이다. 고혜미는 우연히 윤백희가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는 것을 발견하고 제지하는데 윤백희는 현시혁이 소속사 사장을 폭행한 것은 자기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고혜미에게 털어놓는다. '가서 말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다시 일어설수도 없는 끝일 것 같아 무서워서 말할 수 없다'며 현시혁 어떡해야 하느냐고 울먹인다.

맞은 편 건물에 서 있는 현시혁을 발견한 고혜미는 윤백희를 안아주며 '현시혁이 너를 지키려고 얘기를 못했던 거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마 현시혁도 말하지 않기를 바라고 그런 윤백희를 이해할거라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질거야. 하루가 지나면 어제 일이 되는거고 이틀이 지나면 그저께 일이 되는거고 일년이 지나면 무슨 일이었는지도 기억도 안날거야."



여성 연예인의 성추행 사건을 접하면 대중들은 그 사건의 실체보다는 단순히 성이라는 말초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고 손가락질부터 하고 본다. 이건 비단 연예인들의 성추행 사건만의 문제가 아니고 일반인들의 경우에도 같고 그 사건의 피해자에게는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닌다. 이러한 현상은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었던 과거보다는 신기하게도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에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정보들 중에서 대중들은 자신들의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해줄 수 있는 정보들만 골라서 볼 뿐이지 어떤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는 외면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드라마 '드림하이'에 나오는 시경진이 윤백희의 성추행 사건의 내막을 알면서도 은폐하려는 장면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윤백희가 성추행 당한 사건으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성추행 당한 사실 자체를 은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특히 제자가 성추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교사가 다른 해결방법을 찾으려하지 않고 제자에게 사실 자체를 은폐하고 넘기자는 패배주의적인 사고를 주입시키는 것은 보기에 불편하다.

윤백희가 성추행 당한 사건은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한 것이었지 교사들은 별로 한 게 없다. 현시혁과 윤백희는 현시혁의 폭행사건으로 성추행 사건을 묻으려 했고 이를 안 고혜미 역시도 그랬다. 이 어린 아이들로서는 이러한 해결책밖에는 생각해낼 수 없을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기획사 사장이 현시혁에게 '너 이런 식으로 나오면 백희나 너나 이 바닥에서 발 못 붙이게 하는 수가 있다'고 협박할 수 있는 것이고 병원에 입원해서 쇼를 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인 강오혁과 시경진 역시도 사실을 은폐함으로서 사건을 해결하려 하고 다 지나갈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어린 학생과 같은 수준의 말을 하는 것은 실망스러운 전개였다. 두 교사는 추악한 시스템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맞설 힘이 없는 아직 어리고 여린 아이들에게 저급한 시스템을 그냥 받아들이고 스스로 극복하라고 한 것이다.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좌절하게 된 윤백희와 현시혁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교사로서의 당연한 도리이자 의무이지 해결책은 아니다.

교사와 학교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학생들을 못된 시스템으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하면서 마치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지도 모를 시련 중에 하나이고 그것도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서 참고 넘기다보면 다 지나간다는 식의 패배주의적인 사고를 주입시키려 하는 것은 학교와 교사의 존재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퇴영적인 태도로 얘기를 전개할 거였다면 이 드라마는 윤백희 성추행 사건을 다루지 말았어야 했다.

신체 구조상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여성들과 성범죄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인식도 오늘날에는 상당히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젠 언론이나 방송도 대중들의 말초적인 호기심 충족을 위한 가십거리로 문제를 다루는 것을 지양하고 은폐가 최선이 아니라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늘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