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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몰(沒)이성적인 시청자들을 건드리다




드라마 '드림하이'가 14회 방송분에서는 현시혁이 기획사 사장을 폭행한 사건과 폭행의 원인은 윤백희가 기획사 사장으로부터 성추행 당하는 것을 목격한 현시혁이 윤백희를 구해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화요일 방송된 15회에서는 방송에 출연한 김필숙의 과거 뚱뚱했던 사진을 방송 제작진이 김필숙은 물론 방송 출연을 섭외했던 제이슨과의 사전 동의도 없이 임의로 공개했다.

위의 두 장면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그러한 설정을 통해 시청자들과 대중들의 비이성적인 반응을 꼬집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방송은 시청자인 대중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아 왔는데 드라마에 등장하는 설정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청자 게시판이 마비가 될 정도로 신랄하게 건드리지는 못하고 '나는 그래도 저 정도로 몰지각한 시청자는 아니야'라고 자위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남겨 놓은 정도였다.

현시혁이 소속사 사장을 폭행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관심 뉴스 1위에서 10위까지가 모두 현시혁 폭행 관련 기사일 정도로 대중들은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인다. 대중들에게 폭행 사건의 전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현시혁은 그저 그동안 키워준 소속사 사장에 대한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 정도로 200억을 횡령한 공직자보다 더 욕먹을 짓을 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윤백희는 침묵을 선택했으나 자신의 일로 인해 현시혁이 대중들에게 '국민 깡패'로 매도 당하는 것만도 참아내기 힘겹다. 그런데 현시혁이 현무진의 양자가 아니라 친자식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현시혁이 더욱 곤경에 처하자 윤백희는 결국 혼자 경찰서로 가 현시혁의 폭행 사건의 전말을 밝힌다. 윤백희가 소속사 사장에게 강제 추행 당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윤백희는 생각보다 괜찮고 버틸만하다고 의연한 척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참아내기가 힘겨워 학교 수업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윤백희는 성추행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윤백희가 먼저 소속사 사장에게 꼬리쳤다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며 말초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을 뿐이다. 윤백희가 혼자서 늦은 시간에 소속사 사장실을 찾아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마 대중들은 사실보다는 이런 헛된 소문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더 나아가 더 자극적인 억측을 확대 재생산해내고 그것을 믿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것이다.

드라마에서 윤백희는 다행히 평생의 흉터를 조금씩 극복해나가고 있다. 윤백희는 스스로의 힘으로 작곡을 해서 시경진에게 보여주는데 시경진은 조금만 다듬으면 타이틀 곡은 아니라도 앨범에 넣을만 하겠다고 칭찬해준다. 윤백희는 혹시 힘내라고 일부러 칭찬하는거냐고 묻는데 시경진은 그렇게 속 넓은 사람으로 보이냐고 에둘러서 말을 한다. 친구들 보는게 부끄럽고 괴로워서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던 윤백희는 이제 수업에도 들어간다. 아버지가 오는 바람에 미국으로 가야할지 고민에 빠진 고혜미를 길거리에서 만난 윤백희는 고혜미를 다정하게 안으며 같이 수업에 들어간다.

제이슨은 '아이돌 포커스'라는 프로그램 담당 PD를 찾아가 프로그램의 300회를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녹화하게 된다. 제이슨은 그를 계기로 해서 소속팀인 하얀기획의 '드림하이' 멤버들을 방송에 출연 좀 시켜달라고 부탁을 한다. 제이슨은 현시혁과 윤백희를 먼저 추천하지만 담당 PD는 방송이 아직 좀 이르다면서 윤백희가 먼저 꼬리쳤다는 소문도 있는데 당연히 자기는 안 믿지만 시청자들이 그걸 믿는다는게 문제라고 거절한다. 글쎄, 이 담당 PD는 과연 소문을 당연히 안 믿을까?

제이슨은 조심스럽게 김필숙을 추천하는데 담당 PD는 이름부터 빵 터진다고 호응하며 김필숙을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게 된다. 김필숙은 '아이돌 포커스' 301회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방송을 시작한다. 잠시 조명을 점검하느라 쉬는 시간에 방송 대본을 본 제이슨은 놀라 옆에 있는 방송 작가에게 질문들이 왜 이러냐며 얘기가 다르지 않냐고 물어본다. 작가는 재밌는데 왜 그러냐며 일단은 튀고 봐야 될 거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제이슨은 김필숙이 혹시 상처라도 받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지켜본다. 마침내 프로그램 진행자가 김필숙의 가장 근사한 재능 하나를 소개하겠다며 과거 뚱뚱했던 사진을 꺼내들고 이게 일년전의 김필숙의 모습이라는데 사실이냐고 물어본다. 제이슨은 들고 있던 대본을 꽉 움켜쥐며 눈을 질끈 감는다. 전혀 예상밖의 질문을 받은 김필숙은 잠시 당황하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아마 82킬로 정도 나갔을 때의 모습인데 이걸 어떻게 구했을까라고 위기를 넘긴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82킬로면 체격이 어느 정도 되는 거냐고 묻는다. 김필숙은 옆에 놓인 커다란 인형을 가리키며 그 인형 정도였다고 대답한다. 진행자는 저 배는 우리 아버지 배라고 우스개처럼 말하는데 김필숙은 허리는 자기가 조금 더 두꺼웠었던거 같은데 보통 피아노 의자에 한 세네명씩 앉지만 거기 혼자 앉으면 꽉 찼었다고 대답한다.

진행자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웃으면서 끔찍한 과거는 다 지우자며 김필숙의 과거 사진을 구기면서 김필숙에게 같이 구겨서 없애자고 한다. 과거의 뚱뚱했던 모습이 끔찍하지는 않기에 김필숙은 잠시 당황하고 망설이다가 구겨버리자며 사진을 구겨버린다. 보고 있던 작가가 '쟤 괜찮은데 감 있어 약점을 잘도 받아치네'라고 제이슨에게 말하고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제이슨도 그제야 마음을 놓은듯 '그럼요 필숙인데'라고 공연히 자기 어깨에 힘을 준다.

제작진들의 화려한 편집 기술로 잘 만들어져 방송되는 이 작은 화면만 보고 그 화면 속에 담긴 것이 마치 단 하나의 진리인양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청자들이 의외로 많다. 드라마는 그 작은 화면 속에 비추어진 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 안에는 김필숙의 눈물과 한숨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엠지 오디션에 지원하기 위한 영상을 제작해야 하는 김필숙은 제이슨과 함께 영상을 제작하려는 장소로 간다. 제이슨은 노래방 화면 같은 데가 그렇게 좋으냐고 타박하는듯 하지만 김필숙이 멕시코에 와 있는 것 같다는데에 제이슨도 동의해준다. 제이슨은 PD가 조사하다가 블로그 옛날 사진을 보고 질문을 새로 만들었다더라고 김필숙에게 사정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미니 홈피랑 블로그 있는 옛날 사진들 지우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김필숙은 그래야겠다면서도 82킬로 때도 기린예고 오디션에도 합격했고 무대에도 처음 서봤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그리고 제이슨도 만났고 꽤 행복했었는데 그 시절 사진을 부끄러워하고 자꾸 지워야 된다는 게 속상하다고 한다. 되게 행복했던 시절이었는데 사람들은 그 때 사진 보면서 막 끔찍하다 그러고 손가락질하고 그럴 거 아니냐며 계속 그러다보면 언젠간 김필숙 자신까지 그런 모습 싫어하게 될까봐 그게 좀 겁이 난다고 말한다.

제이슨은 그 시절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명 더 있긴 하다며 휴대전화에 찍어 둔 김필숙의 과거 뚱뚱했던 사진을 보여준다. 휴대전화에는 제이슨이 매일 줄리라 부르며 아이러브유 아이미스유 하면서 통화하는 여인의 사진이 들어있는줄로만 알았던 김필숙은 자기의 사진이었고 줄리는 다름아닌 제이슨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란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둘은 마침내 귀여운 연인사이가 되었다.

매니지먼트 협회로부터 자선사업하냐는 비아냥까지 듣던 마두식은 결국 강오혁에게 설득 당해 윤백희와 송삼동 그리고 현시혁을 영입해 '드림하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앨범 홍보를 위해 방송사에 찾아가 PD와 작가들을 만난다. 마두식이 앨범을 내밀지만 PD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두고 가라고 하는데 마두식이 꼭 좀 들어봐 달라고 재차 부탁하자 흘깃 쳐다본 PD는 그룹 K 했던 애들 아니냐며 물어본다. 마두식은 현시혁, 윤백희, 제이슨 세 명이 팀에 합류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PD는 현시혁과 윤백희는 빼고 갔어야 했다며 둘은 폭행에 추행까지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아 내부 방침에 의해 방송 출연이 안 된다고 한다. 마두식은 현시혁의 폭행은 정당방위였고 윤백희는 피해자 아니냐고 대꾸하지만 PD는 다들 윤백희가 꼬리쳤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한다. 마두식은 그건 소문이지 사실이 아니라고 하나 PD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뭐가 중요합니까? 시청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 둘을 빼지 않으면 드림하이, 무대에 서는 일 절대 없을 겁니다."

드라마의 요지는 현시혁의 폭행은 정당방위이고 윤백희는 성추행 피해자이지만 그 둘이 방송에 출연할 수 없는 이유는 모두 다 몰이성적으로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청자들의 탓이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이게 만약 설정을 통해 사실관계를 다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아마 KBS 시청자 게시판은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길들여져 온 시청자 대중들로서는 방송제작자가 감히 건방지게 시청자 탓을 하는 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방송이 과연 시청자들의 탓으로 돌릴 자격이 있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연예인들의 성추문 사건과 같은 경우에는 사건의 전말보다는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내 대중들의 말초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만 하는게 방송과 언론이었다. 그나마 자중의 움직임이 일어 변한 게 있다면 당사자를 추정할 수 있는 이니셜을 사용하는 대신에 A양, B양으로 표기하는 것 정도다.

하지만 그렇게만 해도 네티즌들은 왕성한 호기심으로 누군지를 추적해내고 온라인에 공개된다. 그러면 이번엔 방송과 언론에서 역으로 기사화하면서 네티즌의 추적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당연시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일전에 지하철 반말녀가 이슈화 되었을 때 네티즌들은 지하철 반말녀의 신상을 온라인상에 까발렸는데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해준건 방송이었다. 어느 방송에서 S교회라고 명기하면서 교회 관계자와 인터뷰한 것을 내보낸 것을 보고 황당했던 적이 있다. 방송이 친절하게 확인까지 해주면서 신상을 까발리는 네티즌들의 행위가 범죄행위라는 말을 과연 할 수 있을까?



방송은 시청자 대중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도피처로 삼아 별다른 거리낌도 없이 동의도 얻지 않고 출연자의 아픈 과거를 낱낱이 까발려가며 단순히 흥미거리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팔짱을 낀 채 수수방관만 하는 것도 방송이다. 시청률 지상주의의 함정에 빠진 방송들은 시청자들을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추켜세우며 길들여왔다. 이러한 방송의 역기능에 최대의 피해자는 방송이 아니라 몰이성적인 시청자 대중들이라는 사실이 또한 아이러니다.

드라마 '드림하이'에서 '고혜미' 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배수지가 드라마 초반과 비교해 다소 통통해진 모습으로 비춰지자 언론들은 앞다투어 '후덕 수지'라는 가십 기사를 쏟아낸다. 살이 좀 있으면 후덕해 보인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후덕을 붙이는지는 모르겠으나 후덕이란 말을 붙이는건 좀 황당하다. 드라마의 인기 탓인지 몇년 전에 데뷔 당시보다 살이 붙은 한 여가수에 대해 나왔던 반응과 비교하면 다행히 이 뉴스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다.

방송과 언론의 몰이성적인 태도를 바꾸려면 이처럼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시청자가 많아져야 하는 모양이다. 또한 방송 제작자가 '당연히 나야 안 믿지 근데 시청자들이 그걸 믿는다는게 문제'라는 것으로 도피처를 만들고는 사전 동의도 없이 흥미거리로만 무례하게 제작한 방송에 길들여져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청자가 줄어들어야 한다. 그래야 협회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하얀기획과 같은 기획사, 현시혁과 윤백희가 헛소문에 휘말려 꿈을 접는 일이 없어야 하는 시스템이 현실에도 존재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로서는 방송과 언론에는 별로 기대할게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