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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57세의 '김만덕', 드라마는 왜 이리 젊을까?

드라마 '거상 김만덕' 도입부에 김만덕(이미연)이 궁궐로 들어서는 장면이 나왔다. 당시 김만덕의 나이는 만 57 세였는데 드라마속의 김만덕은 너무 젊어보인다. 김만덕은 1739년에 출생해서 1812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김만덕이 궁궐로 나아가 정조를 알현한 것은 1796년(정조 20년 : 정조실록)이었으니 당시 김만덕의 나이는 만 57 세였다.

아래는 드라마의 장면들을 캡쳐해서 드라마의 순서가 아닌 역사적 시간 순서로 배열한 것이다.


(만 56 세의 김만덕, 굶주리는 제주민들의 참상을 목격하는 장면)


(만 56 세의 김만덕, 전재산을 풀어 구휼을 결심하는 장면)


(만 57 세의 김만덕, 궁궐로 향하는 배 위에 서 있는 장면)


(만 57 세의 김만덕, 의녀반수를 제수받고 궁궐로 들어서는 장면)


(만 57 세의 김만덕, 정조를 알현하기 위해 들어서는 장면)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김만덕은 57세의 나이로 보이지 않을만큼 상당히 젊게 나온다. 김만덕 역을 맡은 이미연도 올해 만 39 세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보인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드라마에서 김만덕을 이렇게 젊게 분장한데는 이유가 있다.

김만덕은 전재산을 풀어 4백 5십석의 구휼미를 내놓았고 천백여 명의 기아자(飢餓者)를 구해냈다고 한다. 조정에서 제주로 보낸 구호곡을 실은 배마저 해상에서 침몰하는 등 속수무책이었던 조정으로서는 대단히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고, 제주 기녀 출신의 여성이었으나 임금을 배알하고 싶다는 김만덕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구휼미를 내놓은 것은 김만덕 외에도 더 있었는데 김만덕이 센세이셔널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5백석에 가까운 엄청난 양의 구휼미를 내놓았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김만덕이 기녀 출신의 여성이라는 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기녀 출신의 여성이 재물을 풀어 백성을 구제했다는 사실 자체가 여성의 모든 재능이 억압받던 시대에서는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의미있는 기부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고관대작들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김만덕이 임금을 알현하기 위해 한양에 와서 채제공을 만났는데 김만덕의 공덕을 칭송하고 한 번 보고자 하는 고관대작들은 많았던 것 같다. 김만덕이 소원했던 금강산 유람을 마친 후 제주도로 돌아가려하자 채제공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글과 김만덕의 사적을 엮은 '만덕전'을 선사했고 병조 판서 이가환은 송시(頌詩)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만덕은 제주의 기특한 여인인데
육십의 얼굴이지만 사십쯤으로 보이네
천금으로 쌀을 사들여 백성을 구제하였으니
한번 바다 건너 궁궐을 찾아 뵈었구려
다만 한번 금강산을 유람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산은 동북녘에 연기와 안개로 싸여있네
임금님이 끄덕이며 날쌘 역마를 내리셨으니
천리의 광휘가 강관을 떠들썩하게 하네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는 마음과 눈은 장한데
표연히 손을 흔들면서 바다 구비 돌아가네
탐라는 먼 예로부터 고량부가 살던 곳인데
여자로서 이제 비로소 임금 계신 서울 구경하였네
돌아오니 찬양하는 소리가 따옥새 떠나갈 듯하고
높은 기풍은 오래 머물러 세상을 맑게 하겠지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름을 세움이 이와 같으니
여회청대(女懷淸臺)로 이름은 어찌 족히 몇이나 있으리

위는 병조판서 이가환의 송시(頌詩)인데 여기에 보면 '육십의 얼굴이지만 사십쯤으로 보이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요즘 말로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는' 표현이다. 김만덕이 아무리 동안이었다 하더라도 이십년씩이나 어리게 보였을까 싶다. 또한 그 당시의 사십쯤의 얼굴과 현대의 사십쯤의 얼굴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드라마에서는 현대의 사십쯤의 얼굴로 김만덕을 등장시킨 것 같다. 어쩌면 세월이 흐를수록 의녀(義女) 김만덕의 얼굴은 더 젊어질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거상 김만덕'의 도입부)

김만덕은 제주로 돌아온 지 15년 만인 73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 약 20여 년 후에 제주에 귀양왔던 김정희는 김만덕의 사적에 감동하여 손수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편액을 써 주었다고 한다. 추사의 편액은 마치 예언처럼 김만덕의 선행은 2010년도에 되살아났고 다음 세대에도 계속 전해질 것이다.


*** 병조판서 이가환의 송시(頌詩) 중에 여회청대(女懷淸臺)가 있는데 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나온다. "淸寡婦也 能守其業 用財自衛 不見侵犯 秦皇帝以爲貞婦而客之 爲築女懷淸臺" 파(巴) 땅에는 청(淸)이라는 이름의 과부가 있었다. 그녀의 조상이 단사(丹砂)를 캐내는 동굴을 발견해 여러 대에 걸쳐 이익을 독점해왔기 때문에, 재산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청은 과부였으나 가업을 잘 지켰고, 재물을 이용해 자신을 지키며 사람들에게 침범당하는 일이 없었다. 진시황은 그녀를 정조가 굳은 부인이라고 여겨 손님으로 대우해주고, 그녀를 위해서 여회청대를 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