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추노' 관전포인트는 한가지밖에 없다

드라마 '추노'가 어느 순간 우스워져버렸고 그 즈음부터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기 시작했다. 요즘엔 드라마에 코믹한 장면들을 많이 등장시키는데 굵직한 걸작으로 보이던 드라마 '추노'가 마치 시트콤 '추노'로 탈바꿈해버린 것처럼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가벼워져버렸다. 드라마중에 천지호가 사형을 당하는 대길을 구하겠다고 형장에 난입해서 밧줄을 입으로 물어 끊으려하는 우스운 장면이 나오는데 이 터무니없는 장면이 드라마 '추노' 후반부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드라마 '추노'가 우스워지고 있다고 단정하기 시작한 것은 '민폐언년'이란 말이 한창 유행하던 때에 '추노'의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언년 역의 배우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던 그 당시부터였다. 시청자들이 '민폐언년'이라고 말들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언년이 캐릭터가 드라마의 전개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언년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력이 달리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작가가 배우에게 사과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민폐언년'이란 논란과 관련해서 작가가 인터뷰를 빌어 배우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그 상황이 꽤 우스웠다. 그 당시에는 드라마의 내용도 지지부진하던 때였으나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한 숨고르기 정도로 생각했었고 여전히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그렇지만 작가가 배우에게 사과했다는 뉴스를 보는 순간 드라마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는 것 같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추노'의 주인공은 언년, 최악의 캐릭터에 달리는 연기력

작가가 생각하는 드라마 '추노'의 주인공은 송태하는 물론이고 이대길도 아니고 바로 언년인 것 같다. 언년은 노비였을 때에도 그랬고 도망을 다닐 때에도 그랬고 남장을 했을 때에도 그랬고 언제나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끔한 분장으로 등장했다. 유일하게 티를 묻힌 것이 원손을 안고 도망하던 때에 어색했지만 입에 피를 묻히던 때였던 것 같다. 아마도 '추노'의 작가는 드라마에서 언년이를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그려내며 최고의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언년은 '민폐언년'이 대변해주는 것처럼 최악의 캐릭터가 되버렸다. 작가는 언년을 순백색의 백자로 만들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백자에 붙어 있는 껌딱지같은 존재가 되버렸다.



'추노' 작가가 언년 역의 배우에게 사과했다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언년이를 답답해하시겠지만 조금만 더 지켜보시면 달라질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언년의 행보는 별로 달라진게 없다. 언년의 말과 행동은 여전히 개연성도 없고 전혀 각각의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때로는 미련해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아둔해보이기도 했다. 언년의 캐릭터는 최악의 캐릭터로 내게 기억될 것이다.

언년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력도 많이 달리는 것 같다.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실제 방송에서는 편집되어 잘려 나가서 보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것을 감안하더라도 언년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유독 언년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드라마에 몰입되지 않고 그 배우의 연기를 보는 내내 왠지 까끌까끌하게만 느껴진다.

짝귀 산채로 들어가서 언년을 보게 된 설화는 언년의 모습이 우아해 보인다며 언년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언년은 우아해 보이지도 않고 행동거지는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고 어색하기만 하다. 오히려 이를 따라하는 설화가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였고 언년을 따라하는 어색함까지 표현해냈다. 설화를 연기하는 김하은이 언년 역의 배우보다 연기 공력(功力)이 더 낫고 카리스마에서도 설화가 언년을 압도했다(검색해보니 둘의 생년은 같으나 생일은 김하은이 더 빠른데 연기 경력은 정확히 모르겠다). 무엇보다 대사 한마디 없이 출연하는 원손 역의 아역배우의 연기가 언년의 연기보다는 더 나아보인다.



언년 역을 맡은 배우는 '추노'에서의 배역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며 표현력이나 의미를 전달하는 능력도 모자라는 것 같고 배역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한 것 같다. 언년 캐릭터를 만든 것은 작가의 몫이었지만 이를 살려내는 것은 연기자의 몫이라고 본다. 언년 역의 배우는 언년 캐릭터를 본인의 캐릭터로 완전히 흡수해서 자연스럽게 연기할 정도로 발전시켜 나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작가가 사과를 표명하는 것으로 보면 언년 역의 배우는 작가의 의도에는 충실하려했고 이를 잘 수행했다는 의미는 부여해야 될 것 같다.

터미네이터 황철웅 vs 종이호랑이 송태하

황철웅은 강력하고 완벽한 장수로 변해버렸고 송태하는 나약하고 허점투성이인 졸장부가 되버렸다. 제주도에서 송태하에게 일격을 당한 후부터 황철웅은 무적의 칼솜씨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많은 사람들의 목을 베었고 송태하를 추격할 때에도 완벽하며 도무지 허점이 없어보인다. 반면 송태하는 말로는 새로운 세상 운운하지만 나약하게 여인네 치마꼬리나 붙잡고 있으며 황철웅이 예측가능하게 움직이는 허점투성이다. 이런 송태하가 과연 나라를 세울만한 자격이 있는지 원손을 보호할 능력이나 되는건지 우스운 모양새로 변해버렸다.



드라마 '추노'의 관전포인트는 딱한가지

드라마 추노에 남은 관전포인트는 한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누가 언제 드라마속에서 죽게 되는가에 대해 점찍어보는 것이다. 작가가 운을 뗀다면 거기에 어떤 것이든 의미를 부여해 보는 것은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것 같다. 다음엔 누가 죽을 차례인지에 대해서 점찍어보고 예상이 빗나갔다해도 별로 의미는 없다. 다음에 누가 죽게 되든 죽은줄 알았더니 다시 살아나든 거기엔 아무런 이유도 당위성도 없으니 육하원칙을 따질 필요도 없다. 그냥 죽이니 죽는 것이고 그냥 다시 살아나라고 하니 살아나서 돌아다닐 뿐이다.

그럼 다음엔 과연 누가 죽을 것인가? 그것은 작가의 마음이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원손은 드라마상에서 죽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인 석견은 유배지를 옮겨가며 오랜 귀양살이를 하다 만 12 세인 1656년(효종 7)에야 귀양에서 풀려난 후 경안군으로 봉해져 복권되었으나 만 21 세인 1665년에 죽었다. 드라마속에서 아직 5세 정도인 원손은 드라마상에서 죽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원손 외에는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어디서 무엇때문에 죽게 될 지는 작가의 마음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 드라마의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언년 역의 배우에게 사과를 표명하던 그 당시부터였다. 그 때 머릿속에 생각을 정리해보면서 그래도 혹시 뭔가 있지 않을까하는 미련을 갖고 드라마를 보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곧 종영한다니 허무한 생각도 든다.

드라마 '추노'는 기획 및 촬영 단계에서 업그레이드 되었고 연기자들의 우수한 연기력에 의해서 또 한 번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아마도 기획과 촬영 그리고 연출을 달리 했다면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지금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을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가 끝난다면 드라마속에 나왔던 수려한 풍광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남을 것 같다.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우수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개인적으로 천지호(성동일)와 짝귀(안길강) 그리고 설화(김하은)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고 새로운 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