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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파스타' 쉐붕 커플의 키스신, 산통 확 깨지네

'연기인지 애드립인지', '연기인지 실제인지' 궁금할 정도로 서유경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공효진, 그런 공효진의 연기로 서유경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엔 드라마 '파스타'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렇게 가슴두근거리게 만들던 드라마 '파스타'가 끝나버렸다. 또 언제 이런 달짝지근한 드라마를 볼 수 있을지, 서숙향씨가 더 멋진 드라마로 하루빨리 돌아오길 기대해야겠다.

마지막회는 최현욱이 라스페라로 복귀하는 전후에서 예상해봤던 내 예상과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그렇다고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기보다는 그래서 오히려 더 훈훈한 감동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유경은 이태리로 유학을 떠나고 몇년 후 다시 길거리에서 최현욱과 조우하게 되는게 아닐까'하는게 내 예상이었는데 이 부분만 '파스타' 마지막회와 달랐다. 개인적으로 서유경은 이태리로 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스타'를 가장 잘 만드는 셰프를 꿈꾸는 서유경으로서는 당연히 유학을 갔어야한다. 최현욱은 셰프로서는 당연히 서유경을 이태리로 보내야하지만 서유경의 애인으로서는 간단하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나 역시 이태리로 보내는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드라마 '파스타'에 산통이 확 깨지게 만들었던 장면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쉐붕 커플의 키스신이다. 산통을 깼다기보다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이유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약 1년여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때도 꽤 쌀쌀한 날씨였는데 3월경이었는지 4월경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계속 뒤척이던 날이 많았는데 이 날은 이상하게 머리가 많이 아팠다. 더 이상 방에 누워서 뒹구는것보다는 차라리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조깅을 하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거리에 초등학교가 있고 자주 가서 조깅을 하곤 하던 곳이다. 그 때가 아직은 어둑한 새벽 5시경이었는데 학교에 들어서자 가장자리 벤치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청춘남녀가 부둥켜안고 서로의 입 크기를 재고 있었다.

보아하니 밤새 그러고 있었던 모양인데 '밤새 꽤 추웠을텐데 젊다는게 참 좋다'는 생각과 '그것도 다 한 때다'는 생각으로 나는 그 남녀를 피해 운동장 중앙을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라 운동장이 작기에 평소에는 가장자리로 돌지만 그 남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운동장 중앙을 돌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남녀가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운동장쪽으로 약간 이동해서 서로 몸을 밀착한채 여전히 입 크기를 재기 시작했다.

속으로 '밤새 재어봤을텐데 아직도 누구 입이 큰지 결정하지 못했나'라고 생각하니 슬그머니 웃기기도 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 날이 밝아져오자 운동장에 조깅하러 온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그 남녀의 입 크기 재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그 둘의 위치가 참 절묘하게도 운동장 가장자리를 돌아도 마주치고 중앙을 돌아도 마주치는 그런 절묘한 곳이었다. 조금씩 그 남녀의 행동이 운동장내에서 어색해보이기 시작했다. 젊은 청춘남녀의 아름다운 남녀상열지사로 보였던 광경이었는데 어느새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는 불편한 존재로 보였던 것이다.

'요즘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라고 일부러 저러는 것 같다'는 영화 '타짜' 속 편경장의 대사가 떠오를 정도의 또 다른 불유쾌한 기억이 있지만 19금의 내용이라 생략해야겠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런데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아무데서나 서로 부둥켜안고 스킨십과 함께 입을 맞추는 광경은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사람들로 가득한 전철안에서 버스안에서 그러고 있는다면 그 당사자들이야 민망하지 않을지 몰라도 이를 지켜봐야하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고 상당히 불편하다.



이렇게 아무데서나 민망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흘레질하는 개'가 떠오른다. 옛날에는 동네에서 흘레붙는 개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어릴 때는 이런 광경을 보게 되면 후들겨 쫓아버리거나 돌을 던져서 쫓아버리고는 했는데 개들은 그렇게 쫓겨가면서도 흘레질을 멈추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약한 심뽀였으나 어릴 때였으니 장난끼도 발동했었고 왠지 부정한 장면을 목격한 것 같기도 했고 그랬던 것 같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도시가 늘어나고 개들을 풀어 키울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그런 도심에 살고 있어서인지 모르나 언제부터인가 흘레붙는 개들을 본 적이 없다. 대신에 옛날과는 달리 아무데서나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녀들은 종종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나온 개가 다른 개와 만나서 서로 몸을 맞대기라도 하면 재빨리 자기 개를 안고 '그러면 안 된다'며 막는 것을 간혹 보게 된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게도 개들에게 인간의 감정을 대입해서 인간의 기준을 강요하며 개들의 자연스러운 본능적인 행위를 막는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본능적인 행위는 아무데서나 하기를 원한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끼리의 애정행위라도 때와 장소를 구분해준다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여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직은 극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것이지만 한국적인 가치가 때로는 더 소중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것이 성에 대한 문제를 꼭꼭 감추어 뒤에서 호박씨까자는 것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아츠뉴스 사진 인용, 인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이미지이므로 아츠뉴스 이미지를 사용함)

드라마 '파스타' 마지막회에서 최현욱과 서유경이 대로 한복판에서 벌인 키스장면이 나한테는 산통깨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그 곳은 최현욱과 서유경이 처음으로 만났던 곳이라는 상징성이 존재한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최현욱은 서유경에게 했던 "너 연애 한번도 안해봤지? 그럼 나랑 하자"는 말을 건넨 것이고 처음 만났을 때 최현욱과 눈이 마주칠까봐 떨렸다던 서유경은 키스로 화답한 것이었다.

최현욱과 서유경의 키스는 충분히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장면이었지만 그래도 꼭 그 자리에서 키스를 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달착지근하기만 했던 드라마 '파스타'가 갑자기 쌉싸래해지는 느낌이었고, 이슬만 먹고 살 줄 알았던 '파스타' 서유경이 볼이 미어터지게 삼겹살 상추쌈을 먹고 트림하는 것을 본 것처럼 환상이 깨져버린 기분이었고, 드라마 '파스타'에 걸렸던 마법에서 깨어나는듯한 순간이었다.

드라마 '파스타'의 환상에서 조금 깨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서숙향의 차기작품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 인터넷에선 대개 '붕쉐 커플'이라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로 '붕쉐'란 말의 어감이 별로 좋지 않기에 '쉐붕' 커플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