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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최현욱 셰프의 복귀는 실수

MBC 월화드라마 '파스타' 지난 주 방송에서 라스페라를 떠났던 최현욱 셰프가 이번 주엔 라스페라로 복귀했다. 지난 주 요리사들 앞에서 '서유경을 사랑한다'며 서유경과의 연애를 인정하고 '셰프로서의 신임을 잃은 행동에 책임을 지고 셰프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고 라스페라를 떠났던 최현욱이 다시 복귀한 것은 드라마 전개를 위해서라고는 하더라도 무리한 전개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최현욱 셰프는 요리사들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깐깐하지만 원칙이 있고 소신이 있었다. 그런 최현욱 셰프가 자신이 했던 약속을 뒤집고 다시 라스페라로 돌아온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최현욱 셰프가 자신이 공언한 약속을 뒤집고 라스페라로 다시 돌아 온 것은 셰프로서의 자존심을 완전히 버린 것이다. 물론 라스페라엔 사랑하는 서유경이 있고 오세영이 셰프를 맡을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는 변수가 등장한다. 최현욱은 자신의 셰프로부터 이탈리아로 스카우트하겠다는 제의를 받을 정도로 실력있는 셰프지만 요리냐 사랑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셰프로서의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꼭 라스페라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또한 오세영의 복귀때까지 또는 새로운 셰프를 구할때까지 최현욱이 임시로 주방을 맡아주는건 당연하고 그것이 셰프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나 당분간이 아니라면 문제는 다르다.

무엇보다 최현욱 셰프가 라스페라로 돌아오면 안되는 이유는 주방내에서 최현욱은 셰프로서의 권위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주방을 지휘하는 총책임자인 셰프가 권위를 잃게 되면 셰프의 말도 힘을 잃고 사소한 문제에서도 불만의 목소리들이 터져나올 것이고 결국엔 요리사들을 통솔할 수 없는 카오스 상태가 될수도 있다. 최현욱 셰프가 그동안 요리사들을 통솔해왔던 방식을 보면 셰프로서의 권위를 잃은 최현욱이 계속 셰프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imbc '파스타' 홈페이지 캡쳐사진)

최현욱 셰프가 라스페라로 복귀해서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는 그동안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오던 '파스타' 전체의 스토리 전개가 중단되버린듯한 느낌이다. 작가는 최현욱이 요리와 사랑을 모두 얻게 되고 향후 주방을 정상화시켜 나가는 리더십의 변화를 그리고 싶었는지 모르나 최현욱이 약속을 깨고 스스로 셰프로서의 자존심과 권위를 잃은 이런 상황을 연출한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최현욱 셰프가 서유경을 만나고 나서는 상당한 변화를 보여왔던 것은 사실이나 서유경이 '주방에서는 서유경의 애인 최현욱이 아니라 셰프 최현욱'이라고 했던 것처럼 스스로 권위를 잃은 최현욱의 주방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셰프의 공정성은 셰프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나 여기서는 부차적인 문제에 해당한다.

라스페라로 돌아온 최현욱 셰프가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를 보니 슬그머니 정운찬 총리가 오버랩된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약속이다. 이익이 되면 지키고 상황이 바뀌었다고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약속이 아니다. 유리할 때는 지키고, 불리할 때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원칙도 소신도 아니다. 국가의 정책도 마찬가지다"고 했었으나 국무총리가 되자 세종시 수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웃지 못할 촌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 했는데 국무총리가 어찌 가벼이 일구이언(一口二言)하며 코메디를 연출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라스페라의 레시피', 최현욱은 훌륭한 셰프

스토리 전개가 중단된듯한 것을 제외한다면 '파스타'는 여전히 재미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의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라스페라의 레시피'다. 라스페라로 돌아온 최현욱은 인삼 파스타를 봄 추천 메뉴로 내보내겠다며 파스타 라인을 모아 놓고 유경에게 레시피를 선우덕에게 넘기라고 하면서 '이제부터 인삼파스타는 서유경이나 선우덕의 레시피가 아니라 라스페라의 레시피'라고 말한다.

라스페라의 레시피는 'one best way'를 찾아내서 그것을 모든 작업자에게 적용시키는 표준화(standardization)와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표준화가 잘 되어 있다면 누구라도 그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고 누가 그 업무를 처리하더라도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 업무 처리 방법이 단순화되고 획일화된다면 업무 처리가 신속하고 정확해지므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며 업무 처리의 투명성이 담보되므로 과학적인 관리가 가능하게 되어 결국엔 소비자로부터 해당 제품의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imbc '파스타' 홈페이지 캡쳐사진)

식당에 가서 동일한 음식을 시켰는데 요리하는 요리사에 따라서 또는 요리하는 시간대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면 그 식당은 영업이 아니라 파리를 키울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누가 요리를 하든 언제 요리를 하든 똑같은 맛의 음식을 손님 테이블에 내놓지 못한다면 손님들은 발길을 끊을 것이다. 그래서 요리사만의 레시피가 아닌 식당의 레시피는 반드시 필요하다. 요리사가 자기만의 비법을 감추어두고 요리하려면 '며느리도 모른다'는 식의 개인식당을 운영해야 할 것이고 라스페라와 같은 규모가 큰 식당에서 요리하면 안된다.

요리사가 자신만의 비법을 감추어두고 'Don't touch!'를 외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려고 한다거나 초보 요리사들을 길들이거나 골탕먹이려고 하는 행위는 그 식당에 오히려 해가 되는 것이고 손님마저도 우습게 보는 것이다. 그보다는 식당의 레시피를 만들어 공개해두고 초보 요리사가 그 레시피를 연구하도록 만드는게 훨씬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그를 통해서 더 나은 다른 'best way'를 찾아낼 수도 있다. 음지에 묻혀 있는 것을 양지로 꺼내겠다는 최현욱의 '라스페라의 레시피'는 그래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