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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 왜 부담스러울까?

'일밤'이 개편되고 한번도 끝까지 시청해 본 적이 없다. '일밤' 코너 중에 단비와 아버지는 충분히 감동스러운 내용이다. 그럼에도 중간에 채널을 돌려야했던 이유는 방송이 감동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너무 부담스러워서다.

개편된 '일밤'의 주제는 바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해 감동을 극대화시키자는데 있는 것 같다. 자막을 비롯한 모든 편집은 감동의 극대화에 맞춰져 있고 MC들도 이런 취지를 이해하고 있음인지 감동에 지나치게 집착해서인지 더 강한 감동을 주는 소재를 찾아내려고 돌아다니는 '감동 파파라치'들 같다.

편집을 통해 수시로 반복되는 클로즈업과 리와인드 그리고 슬로우 모션에 자막까지, 이런 포맷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찍고 있는 모든 카메라가 이 과정을 반복하는 심한 장면도 있었다. 제작진들의 관점을 결정해놓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강요하려는 이런 제작 방식은 감동의 극대화로 나타나는게 아니라 프로그램에의 몰입을 방해할뿐이며 감동보다는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제작진들은 간과한 것 같다.



리얼야생을 표방한 '1박 2일'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이 편집을 통해 제작진들의 의도를 강요하는데에 시청자들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리얼야생 예능에 대해 시청자들의 피로도가 나타나고 있으며 과거로의 회귀를 요구하고 있다는 어떤 징후도 찾을 수 없다. '패떴'에 대한 논란은 리얼 야생에 대한 피로감의 노정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리얼로 포장했다는데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단비'는 아프리카 잠비아 사람들에게 '단비 우물 1호'를 만들어주며 기대를 갖게 하더니 희귀병 어린이 치료를 돕는 예전의 느낌표의 '산 넘고 물 건너'로 돌아갔다. 선행을 한 '시민영웅'들을 태운 '2009 단비열차'가 되더니 말기암 환자의 마지막 결혼식을 주선하며 '마음껏 울어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다시 스리랑카의 두 소년에게 의족을 선물하고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에서 열악한 현실에 처한 가족에게 배를 선물했다. 프로그램의 소재가 자주 변경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단비'를 시청하려고 채널을 고정해 놓았더니 그 다음주엔 '아버지'가 방송되고 그 다음주엔 '헌터스'가 방송되었다. 프로그램 초기라 시험해 보려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단비를 시청하려던 시청자들은 단비가 방송될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으며 '한 번 돌아간 채널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경쟁 프로그램이 충분히 시청자들의 눈길을 고정시켜 줄 것이다.

'아버지'도 역시 기획 의도는 대단히 좋다. 그런데 전체적인 포맷은 양심냉장고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양심 냉장고'의 옛영화를 재현해보고자 했음인지 몰라도 이것은 오히려 식상함으로 연결된다. 아예 대놓고 '마음껏 우십시오'라는 포맷으로 가기 위해서는 매주 이런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감동을 쥐어짜낼 소재를 찾아내야 할텐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소개된 사연중에서 깜짝쇼를 동원한 '아빠 냉장고'를 주는데 누구의 사연이 더 감동적이라는 제작진들의 가치평가는 '아버지'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또한 그 판단은 시청률에 대한 제작진들의 기대치로 할 것인가?

정가은은 감동적인 사연을 전하는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눈물을 쏟을 것인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카메라를 들이대서 클로즈업하고 '제발 좀 울라'고 강요해서 나오는 눈물은 오히려 감동을 반감시킨다. 그래도 정가은처럼 연예인들은 카메라를 들이대고 울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정도로 울 수 있는 연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 출연자들은 다르다. '아버지' 카메라가 등장하면 일반인들은 눈물을 흘리든가 웃길 준비를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부자연스러움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그 순간 이 코너는 의미가 반감된다.


(잠비아 '단비 우물 1호'에 출연했던 한지민, 사진 MBC 일밤 홈피)

아프리카에서 '단비' 촬영을 마치고 돌아 온 김용만은 '열심히 찍고 왔으니 제발 좀 한번만이라도 시청해달라'고 구걸하다시피했다. 그러나 열심히 찍지 않는 방송은 없다. 열심히 찍기로 따지자면 1박2일만 하겠는가. 한겨울에 야외취침을 하고 계곡물에 입수하기도 하고 복불복에 등장하는 까나리 등에다가 방송장비를 직접 들고 나르고 산 속에서 취침 도중에 눈에 갇혀 눈을 뚫고 걸어서 나오기도 한다.

열심히 찍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시청자들의 기호를 파악하고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게 더 필요할 것 같다. '일밤'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굳이 감동을 강요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스러운데 감동을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자연스러움 속에서 시청자들이 감동하게 만들 수 있는 묘안을 '일밤'은 찾아내야 할 것이다. 시청률이란 결과만을 보고 '일밤'의 코너를 폐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단비'나 '아버지'는 시청률이란 잣대로 재단하기엔 더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