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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허약하나 '남자의 자격' 충분하다

KBS2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21.0975km 하프마라톤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그들 모두가 완주하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황영조 대한육상경기연맹 마라톤 기술위원장이 방송에 출연해서 조언했던 것처럼 두어명 정도는 완주하지 않을까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하프 마라톤 완주를 해 본 나로서는 이 방송에 대한 기대가 특히 컸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모두 마라톤을 완주해주길 기대하기보다는 그냥 최선을 다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시청할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마라톤을 전문으로 하는 선수들도 아니고 마라톤 완주를 위해 운동에 전념할만한 여건도 아닐 것이므로 그들에게 기록이나 완주는 중요치 않다. 마라톤은 멤버들에겐 도전이고 도전한다는 것은 최선을 다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이 방송을 위해서 한 며칠 운동하고 마라톤에 참가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도 몇 주는 운동을 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몇 달은 이 방송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훈련을 했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들의 숨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방송에선 이 과정이 거의 편집되어 버렸는데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한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멋진 남자, 김국진 그리고 이경규

김국진은 페이스 조절을 잘 하면서 계속 앞서다 마지막으로 운동장 트랙을 돌면서 윤형빈에게 선두를 내줬는데 추월해가는 윤형빈을 보고 흔쾌히 박수를 쳐주고 응원해줬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 윤형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흐트러진 페이스, 김국진이 선두를 뺐기지 않으려고 했다면 충분히 가능했지만 후배를 위해 기꺼이 양보해주고 축하해줄 줄 아는 김국진의 모습은 멋지다. 선배를 믿는 후배나 후배를 밀어주는 선배나 그 순간 승부욕보다는 동료의식을 가졌을 그들은 남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하고 멋진 남자들이다.

이경규는 7 킬로미터 정도를 남겨두고 포기를 결정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이경규는 거기서 포기를 했어야 했다. 아무리 방송이라지만 그 상태라면 더 달릴 여유나 이유가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걷다가 서다가를 반복했는데 그 때 시각장애인 마라토너가 앞질러 가자 이경규는 기꺼이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러다가 방송차에 타고 포기를 결정하려고 했고 당연히 포기했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대회 진행자가 다가와서 링거 맞을 것을 권유하자 이경규는 '클로징은 하고 병원에 가야 된다'고 말을 한다.



그 상태에서도 먼저 방송을 걱정하는 그의 투철한 직업의식과 책임감이야말로 '왜 이경규인가'를 충분히 설명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적당히 눈치나 보면서 시간이나 때우면서도 다양성이라는 것으로 포장하려고 하는 자들이 본받아야 할 교훈을 이경규가 직접 온몸으로 알려 준 것이라 생각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서 골인 지점을 통과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을 보여 준 이경규는 멋진 남자이고 '남자의 자격'이 충분하다. 선배의 투혼을 기꺼이 축하해주고 눈물 흘린 '봉창'씨나 '비덩'씨도 멋진 남자들이다.

이윤석 허약하나 남자의 자격 충분하다

'국민약골' 이윤석, 그가 완주하리란 기대는 정말 전혀 없었다. 처음에 트랙 3 킬로미터를 뛸 때 이윤석은 구토를 하려고 했는데 그건 평소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매일 기름진 음식으로 호강시켜주다가 갑자기 흔들어대며 운동을 시키니까 소화기관이 반기를 들고 데모를 시작한 것이다. 이 때에는 그냥 쉬면서 살살 달래주면 되고 그러면 소화기관은 데모를 멈추고 운동한 그 정도에 맞춰서 자기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200여 미터 남은 거리를 이윤석의 판단으로 걸어 들어왔다고 큰 무리는 없다.

문제는 이윤석의 감기인데 그 상태로 왜 마라톤을 강행하고 완주까지 했는가다. 진눈깨비에 바람도 많이 불 정도로 날씨도 상당히 궂은데 그런 몸상태라면 기권했어야 한다. 그 마라톤 완주가 곧 끝을 의미하는건 아닐텐데 굳이 완주를 고집했어야 했는지는 회의적이나 이윤석에게는 완주를 고집해야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방송에서 국민약골로 나오는 이윤석을 보면서 '쟤 왜 저렇게 비실대지?'하면서도 나는 이윤석이 늘 방송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열심히 해보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안되는건 어쩔수 없는 것이다. 이윤석의 약골 이미지가 시청자들에게 몸개그로 연결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가 방송을 위해 열심히 하려고 했다는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윤석은 말개그에도 충분한 자질이 있지만 늘 몸개그를 위해서 망가지고 희생해 왔던 것 같다. 이번 방송은 그가 코메디에 대해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를 엿보는 기회가 되었다. 말개그와 몸개그를 접목시켜서 발전시킬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코메디언이 있다면 바로 이윤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정상적이거나 비상식적인 설정들이 다양성이란 것으로 포장되고 있는듯한 지금의 예능 방송의 한계는 언제고 오게 마련이다. 전유성은 기존 코메디계에서 튀어볼려고 '개그맨'이란 말을 만들고 개그콘서트를 기획해서 성공시켰다. '개그맨' 이후를 기획하고 성공시킬 코메디언이 바로 이윤석이 되길 기대해본다.

이윤석, 비록 몸은 허약하지만 방송을 위해(물론 본인이나 가족과의 약속이라는 동기도 있었겠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그 자체가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고 하프 마라톤 최장 기록을 세웠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전투기를 못 탔어도 다른 운동을 잘하지 못해도 이윤석은 충분히 멋진 남자이고 '남자의 자격'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