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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도깨비' 앞뒤 안 맞는 검(劍)에 대한 의문, '검진요'

 
 
 
드라마 '도깨비'가 끝이 나긴 했나 보다. 습관처럼 기다려도 더이상은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다. 간혹 이처럼 괜찮은 드라마가 나와주기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막장을 참아내는 것 아니겠나? 궁금증이 생긴다. 배역에 푹 빠져 몇 달을 살았을 배우들은 드라마가 끝나면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올까?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는 시청자로서도 이런 드라마가 끝나면 한동안 빠져나오기 힘든데.
 
무려 7 일을 기다려서야 보게 된 마지막 3 회 분량은 그 이전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고 느껴져서 당황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어떠냐, 눈이 부시게 푸르른 아이 지은탁이 있는데, 너무나도 근사하고 멋진 도깨비가 있는데, 허우대 멀끔한 저승사자가 있는데,...
 
뭐가 이렇게 가슴이 아리고 이리도 아련하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까? 난 살아있는 지은탁이란 아이에게 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저 아이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저승사자와 도깨비 사이에 놓여져야만 하는 그 여리고 순수했던 날의 초상.
 
드라마는 끝이 났는데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도깨비 김신이 가슴에 꽂고 있던 검에 대한 의문. 드라마에서는 검에 대한 설명에 앞뒤가 잘 안 맞기 때문이다. '검진요(검에 대한 진실을 요구합니다)'.

 

 
지은탁이 처음으로 지목했을 때의 검이다.
 

 
이건 도깨비가 지은탁을 메밀밭으로 데려가 검을 뽑으려고 할 때의 검이다.
 

위 두 개의 검은 완전히 다른 검이다.
 

 
이것은 최초에 김신에게 꽂혀졌던 검이다.
 

 
형태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다른 관점에서 본 검이다.
 
두 번째 검 손잡이에 피 묻은 헝겊을 두르면 위와 같은 검이 된다. 첫 번째 검과는 다르다.
 

 
이는 지은탁이 검을 움직일 수 있었던 때의 검이다. 최초에 꽂혀 있던 검과 같아 보인다.
 

 
이건 마지막에 검을 뽑아내는 장면인데 각도가 애매하지만 메밀밭에서의 검과 같은 듯하다.
 

 
그리고 검을 뽑아 박중헌을 소멸시킨 후의 검이다. 이는 처음으로 지목했던 때의 검이다.
 
'물의 검' 그리고 '불의 검'
 
드라마에는 최소 검이 두 개가 등장한다. 피묻은 헝겊을 감고 안 감고를 따지면 종류는 더 늘어난다. 워낙 복선이 많은 드라마니까 기다려봤는데 끝내 납득할 만한 장면은 찾지 못했다. '물의 검'과 '불의 검'에 대해 나오기는 하는데 달라지는 검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디테일의 부주의함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단 한 장면으로 939 년의 세월을 담아내 설명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던 연출력에 흠집이 되는 게 아쉽지만 말이다.
 
사실 디테일이 아쉬웠던 장면이 몇 있는데 두 가지만 언급해 본다.
 

 
이동욱과 유인나가 왕과 왕비로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런데 유인나는 왕비였던 적이 없고 왕으로서의 이동욱은 왕비가 없었다. 이미 김소현이 유인나로 환생했다는 것은 몇 차례 언급되었고 시청자도 다 알고 있는데 굳이 이 장면을 넣었던 것은 과유불급이었다. 김소현의 스케줄 때문이었다면 차라리 그 장면은 빼버리는 게 더 나았다는 생각이다.
 

 
또, 유인나의 명부를 보면 향년 68 세이고 사인은 병사(病死)다. 그런데 저승사자 앞에 온 유인나의 모습은 도저히 병사한 68 세의 여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늙지 않는 저승사자 이동욱과의 비주얼 문제 때문이었다면 굳이 저렇게 언밸런스하게 할머니 옷을 입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검을 뽑든 안 뽑든 지은탁은 결국 죽는다
 
검이 다른 것은 디테일 문제로 볼 수 있더라도 내가 갖는 의문은 도깨비에게서 검을 뽑든 안 뽑든 결국 지은탁은 죽게 되어 있었다는 데에 있다.
 
검을 뽑아야 되는 그 순간에 맞추기 위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게 하고, 죽음을 맞게 되는 그 순간에 정확히 맞추기 위해 지독하게 슬픈 세월을 견디게 했다. 그래놓고 이런 기타누락자인 의인의 행동은 신의 영역 밖이라고 해버리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첫 번째 생이고 또 무수히 많은 세월이 흘러 날이 적당한 어느 날 도깨비와 재회하고 도깨비 신부가 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하는 것은 지은탁에게 너무도 잔인한 일이다. 첫 번째 생에서의 눈이 부시게 푸르른 지은탁의 삶은 신이 멋대로 장난쳐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검을 뽑기 전과 후에 달라진 건 박중헌을 소멸시킨 것 외에는 없다. 결국 지은탁은 박중헌을 없애서 김신과 왕여의 한을 풀어주려고 삼신할미와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쑥덕쑥덕해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죽은 자들의 원을 풀려고 산 자를 이용하려 한 신의 고약한 장난이라 봐야 하지 않나?
 
검을 뽑으면 무로 돌아갈 도깨비를 다시 이 세상으로 불러다 놓기 위함이었다 해도 지은탁의 희생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도깨비에게 '검(劍)'을 꽂아 놓은 것은 '검'이 '신(神)'을 의미한다는 데서 착안한 것으로 보았다. 나비 형상으로 신이 존재하고 있지만 도깨비를 지배하는 신은 검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아도 산 지은탁과 연관지으면 검은 앞뒤가 안 맞고 근본적인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을 얘기하려 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작가의 의도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래도 막장의 홍수 속에서 오아시스 같은 드라마였다. 처음으로 소장이라는 걸 해야겠다 생각하게 만든 괜찮은 드라마 그동안 잘 보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문득문득 촛불을 불어 끄고 싶어질 것 같다. 도깨비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고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저 아이 지은탁이 불쑥 나타나 쉼없이 재잘거리며 지독한 쓸쓸함을 달래준다면 정말로 좋겠다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