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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성균관 스캔들' 벗겨야 뜬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제 7 강, 병판의 수하들에게 완전히 제압당했던 걸오가 어떻게 그 위기를 벗어나 대사례장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에 대한 해답은 그냥 단순했다. 이전 글에서는 드라마에 등장했었던 상황을 종합해서 혹시 걸오의 아비 문근수와 정조가 치밀하게 계획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을 했었는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대사례에선 동방생이 한 접을 이루고 동방생 중에 불참자가 있으면 그 접은 탈락하고 불통을 받게 된다. 정약용이 마지막 인원 점검을 할 때까지도 걸오는 나타나지 않았고 정약용은 명단에 빗선을 그어버린다. 이 때 그 뒤에서 듣고 있었던 구용하가 언제 걸오를 찾아서 구해냈다는건지 구용하의 신출귀몰한 솜씨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걸오를 결박한 병판의 수하들과 마주한 구용하는 예(例)의 그 유들유들한 표정과 말솜씨로 기선을 제압한다. '그래도 성균관 상유를 그것도 성균관 안에서 겁도 없이 험하게 다루는데 혹 관군인 경우 성균관에 관군을 보낸 일이 알려지면 아마 윗분들은 옷을 다 벗으셔야 될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게다가 '그것도 저만 본 게 아니라서요'라면서 이미 성균관 대사성까지 그 장소로 불렀다. 가히 신의 경지라고 할밖에.

성균관 대사성은 어떻게든 줄을 잘 서서 높은 자리 하나 차지하는게 소원이다. 그런데 만약에 걸오가 불참하게 되면 이선준이 불통을 받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고 그리되면 좌상에게 줄을 댈 수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성균관 대사성이 걸오를 애타게 찾아나섰던 이유다. 그러니 구용하의 말 한마디에 열일을 내팽개치고 달려왔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걸오가 거기 있을 거라는걸 어떻게 알았냐는 성균관 대사성의 질문에 구용하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눈에 갖다대며 "저 구용합니다"라고 대답하는데 그 말과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구용하의 도움으로 걸오가 대사례에 참가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대사례가 시작된다. 성균관 대사례는 실시간으로 도성 곳곳으로 생중계가 되고 반촌을 비롯한 저잣거리에서는 우승팀을 예상하고 돈을 거는 일종의 도박이 벌어진다. 생중계하는 방식은 어릴 때 종이컵에 실을 연결해서 전화놀이를 해보던 것을 상상하면 되겠다. 성균관 대사례장에서부터 연결된 실은 도성 곳곳으로 이어져 있는데 성균관에서 상황을 말하면 중간중간에서 이를 받아 전달하는 식으로 일종의 생중계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할 것 같지는 않고 차라리 파발마나 매를 띄우는게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잘금 4인방?

김윤식, 이선준, 문재신, 구용하 이 넷이 어깨동무를 한 채 대사례에 참관한 기생들 앞을 지나가게 되는데 이 때 기생들이 이 네명을 '잘금 4인방'이라 명명하게 된다. 기생들의 말에 따르자면 "아주 보는 사람 미치게 만드는데 쳐다만 봐도 잘금잘금 오줌이라도 싸겠다"해서 잘금 4인방이란다. '잘금 4인방'과 '찔금 4인방'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그다지 어감이 썩 좋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직 4인방이라 하기엔 구용하의 입장이 어정쩡하다.



구용하, 참 능글능글하고 유들유들한 재미난 인물이다. 대사례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청나라에서 들여 온 활을 들고 나타났는데 그만 교역품목에서 화살은 빼놓고 들여오는 바람에 덜렁 활만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활을 쓰지 않는 이유가 입고 있는 옷에 가장 잘 어울리는 활이기 때문에 즉 '깔맞춤'이기 때문이란다. 깔맞춤이란 요즘 말로 비슷한 톤의 색깔로 맞추는 코디네이션이고 구용하는 당대 최고의 패셔니스타(fashionista)인 셈이다.

걸음마를 시작하자마자 기방을 들락거렸다는 구용하는 세책방에서 김윤식을 처음 본 순간부터 여자임을 직감하고 어떻게든 김윤식의 웃통을 벗겨보려고 애쓴다. 그런 구용하에게 드디어 절호의 기회가 찾아 왔다. 장의 하인수의 말에 절대복종하는 임병춘이 김윤식의 활에 사금파리를 입혀서 화살을 잡는 김윤식의 손을 다치게 한다. 그러나 김윤식은 이에 굴하지 않고 요즘 양궁 용어로 치면 '엑스텐(X-ten)'에 해당하는 홍심에 꽂아 대사례에서 장원을 하게 된다. 그 일로 임병춘은 하인수로부터 혼이 나고 술에 만취한 채 김윤식에게 시비를 건다.

둘은 빗속에서 뒤엉켜 한바탕 격투를 하고 김윤식은 옷을 입은 채 물로 엉망이 된 옷을 씻는다. 이를 목격한 구용하가 사내들끼리 내외하는 거도 아닐테니 옷 벗으면 등목이라도 시원하게 물 한바가지 끼얹어 주겠다고 한다. 김윤식은 몸에 아주 큰 흉터가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건 싫기에 사양하겠다고 둘러댄다. 그러자 구용하는 성균관 유생에게 버림받은 여인네가 목숨을 끊은 곳이라 처녀귀신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어 아무도 가지 않는 비밀스런 장소를 일러준다.

구용하가 일러준 은밀한 장소에 간 김윤식은 거기서 남장을 벗고 여인인 김윤희로 돌아가 목욕을 시작한다. 그 시각 이선준은 중이방에서 김윤식이 보이지 않자 김윤식을 찾아나서고, 구용하는 "이건 계집의 벗은 몸을 보고 싶은 사내의 마음이 아니라 참과 거짓을 확인하고픈 학인의 마음일 뿐"이라고 정당화시키며 김윤식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윤식의 벗은 몸 김윤희의 알몸을 먼저 보게 되는 것은 다름아닌 걸오 문재신이었다. 화들짝 놀란 걸오는 딸꾹질을 시작한다.



박민영이 여장하는 장면은 그 전에도 나왔었지만 이번에는 그 수위가 상당히 높아졌다. 여배우를 벗겨야 드라마가 뜬다는 속설 때문에 이런 장면을 연출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 장면은 오히려 드라마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정도에서 그쳤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이러다가 농도 짙은 베드신이라도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은 금등지사 얘기가 가미된 지금에는 박민영을 벗기면 오히려 드라마의 꼴만 더 우스워질 것 같다. 이 드라마가 여전히 산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금등지사 얘기가 계속해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데에 있다. 금등지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가 했으나 7강에서는 별다른 이유나 설명도 없이 흐지부지되면서 전체의 스토리는 또 다시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황이 되버렸다.

드라마의 내용이 지나치게 무겁거나 가벼워지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라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스토리로 해결하려 하다보니 계속 산만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드라마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박민영을 벗김으로써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서둘러 끝내는게 낫겠다. 그보다는 금등지사 얘기를 본격적으로 올려놓고 성균관 유생들과 조정의 얘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전개해 나가는게 더 좋을 것 같다. 운만 떼 놓고 그 자리에서 맴돌면서 에둘러 돌아가기만을 반복하는 지금의 방식은 좀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