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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제빵왕 김탁구' 악(惡)의 유인(誘因)은 구일중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마침내 종결(終結)되었다. 드라마의 스토리를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급박하게 종결지으려고 하다 보니 두루뭉술한 면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대로 무난하게 절충된 결말이었다고 생각된다. 일단 드라마의 총체적인 평은 뒤로 미루고 구일중에 대한 글을 먼저 써보려고 하는데 워낙 여러가지 생각이 엉켜있는 터라 짧은 시간에 매끄럽게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제목으로 사용할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근원(根源)이라고 해야 할 지 원인((原因)이라고 해야 할 지 근본원인(根本原因)이라고 해야 할 지 선택이 쉽지는 않은데 일단은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되는 유인(誘因)을 선택했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이 글은 아래의 부제를 첨가하려고 한다.

부제(副題) ; 선악구도(善惡構圖)의 덫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는 악의 축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구일중과 김미순이고 다른 하나는 서인숙과 한승재다. 그리고 이 두 악의 축을 만들어 낸 장본인은 바로 홍여사다. 구일중이 서인숙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한 것은 홍여사 때문이었다. 홍여사에 따르면 김미순의 부모가 죽지만 않았어도 구일중과 김미순이 혼인했을 것이나 김미순의 부모가 죽자 홍여사는 서인숙을 며느리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홍여사의 말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아마도 김미순의 부모는 상당한 재력가였으나 급격하게 가세가 기울어 사망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홍여사는 김미순을 밀어내고 재력이 있는 서인숙을 며느리로 받아들이려는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서인숙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한 구일중은 늘 무관심하고 냉랭하게 서인숙을 대했고 홍여사는 오로지 서인숙이 하루 빨리 아들을 낳기만을 종용했다. 홍여사는 서인숙이 둘째인 구자림마저 딸로 태어나자 더 무시했고 구일중은 서인숙이 출산할 때도 병원에 들르기는 커녕 서인숙이 병원에서 산후조리를 하던 때에 집에서 김미순과 통정하는 불륜을 저질렀다. 그 일로 김미순은 임신하게 되었고 병원에서 돌아 온 서인숙은 이 사실을 알고는 분노해서 김미순을 내쫓으려고 한다.

이 때 홍여사는 7년이 넘도록 아들 하나 못 낳은 처지에 어디서 대놓고 질투를 하느냐며 서인숙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서인숙으로서는 한 번도 돌아봐주지 않던 구일중이 집안 허드렛일을 하던 김미순과 정을 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치욕스럽고 치가 떨리는 일인데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홍여사로부터 구박까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불편하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서인숙은 무엇보다 절실하게 아들이 필요해졌고 결국은 한승재를 유혹해서 아들을 만들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두 악의 축은 이렇게 홍여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홍여사는 두 악의 축에 대해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구일중의 외도에 대해서는 관대했고 서인숙의 분노를 질투심으로 몰아세웠는데 반해 서인숙의 외도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이것은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었던 때였기에 그리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여튼 서인숙의 외도 사실을 목격하게 된 홍여사는 결국은 사망하게 되는데 이로써 두 악의 축은 이제 사생결단을 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홍여사가 두 악의 축을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그렇게 악의 축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은 구일중이다. 결과적으로 구일중은 친구처럼 자란 한승재가 사랑하는 여인인 서인숙을 빼앗게 되었고 서인숙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구일중은 서인숙이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의 사랑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무관심하고 냉담하게 서인숙을 대했다. 심지어는 외도까지 함으로써 서인숙이 엇나간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동기를 만들었다.

두 악의 축이 만들어 낸 악의 씨는 서로 상반된 환경에서 성장했다. 김탁구는 편모 슬하에서 가난하게 생활하지만 구김살 없고 건강한 심신을 갖고 성장했으나 구마준은 부족할 것 없이 부유한 환경에서 생활하지만 홍여사의 엄격함과 구일중의 무관심함 그리고 서인숙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성장함으로써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되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런데 구마준이 비뚤어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구일중이 청산 공장에 내려갔다가 빵을 훔쳐 나오던 김탁구와 마주치게 된 사건이다. 김탁구가 고물을 주워 판 돈으로 빵값을 마련해 와서는 용기 없는 놈이라고 말한 것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하자 구일중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김탁구가 다니는 학급에 크림빵을 김탁구 앞으로 보내준다. 이 때 구마준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구일중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김탁구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김탁구가 구일중의 아들이라고 집안으로 쳐들어오기까지 했기에 구마준은 김탁구를 증오하게 되고 어떻게든 김탁구를 쓰러뜨려서 구일중의 인정을 받아보려고 애쓰며 살게 된다.



홍여사는 부모가 없던 한승재를 거두어 줌으로써 구일중과 친구처럼 성장했는데 한승재는 이들 모자를 은인으로 여기고 그에 대한 보은으로 구일중의 옆에서 그림자처럼 돕는다. 구일중에게 사랑하던 여인인 서인숙을 빼앗겨도 그에 대한 불만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살아 왔다. 29부와 30부에서 한승재를 불쌍한 인물로 묘사하며 동정의 여지를 남기려고 했는데 한승재가 면회 온 구마준과 만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혀 불필요한 사족이었다.

한승재가 불쌍한 인물이라는 것은 그 이전에 이미 충분히 설명되어 있었으며 한승재가 정말로 불쌍한 이유는 바로 동정의 여지가 없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와서 한승재에게 동정의 여지를 만들어 준 것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함이었는지 모르나 그것은 오히려 의미를 퇴색시킨 선택이었다. 구마준이 어릴 때 홍여사에게 종아리를 맞자 한승재는 구마준의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며 "넌 '니 아버지'보다 더 큰 사람이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거다"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이미 한승재가 앞으로 악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다는 그럴듯한 이유와 그런 한승재가 불쌍하다는 모든 설명이 되어 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사달의 유인은 바로 구일중이다. 구일중이 사랑 없는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만 바라보는 서인숙을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끌어 안았더라면, 김미순과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구마준을 한 번이라도 김탁구에게 대하듯이 다정하게 대해주었더라면, 한승재를 진정으로 친구로 여기고 대했더라면, 한승재와 서인숙의 불륜사실을 알았을 때 제대로 바로잡았었더라면, 이 모든 사달은 애초에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구마준이 김탁구와 같이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 구일중이 구마준에게 화를 내고 다음 날 구마준은 구일중을 찾아 가 제발 등을 돌리지 말고 얘기 좀 들어달라고 애원한다. 구일중이 이 때에라도 구마준을 냉정하게 내치지 않았더라면 구마준은 달라질 수 있었으나 구일중은 아무 얘기도 들으려하지 않고 등 돌리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구일중이 구마준의 출생 비밀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은데 최소한 이 시점 정도부터는 심증을 굳히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한다.

구일중은 한승재에게 친구로 가족으로 생각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승재를 진심으로 친구나 가족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고는 볼 수 없다. 구일중은 한승재에게서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했고 한승재의 의견 따위는 무시했으며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고 그저 시키는 일만 따르라고 해 왔다. 이 경우에는 단 한순간도 가족으로 받아주지 않았고 구일중의 종으로 부려먹었다는 한승재의 말이 더 일리가 있다.

구일중은 서인숙과 한승재의 불륜을 알고서도 오랜 친구인 한승재를 진작 어찌하지 못하고 모르는 척 눈감아 주었기 때문에 이 사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정략결혼을 했던 구일중은 그 이후로도 줄곧 회사의 지분을 놓고 서인숙과 줄다리기를 했고 서인숙은 그런 구일중의 사랑을 붙잡아 두기 위해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흥정을 시도했다. 구일중이 단지 한승재가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서인숙과 한승재를 어쩌지 못했고 지켜보고 있었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사실을 방치함으로 인해서 애꿎은 구마준에게까지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게 된다. 결국 구일중은 자기의 언행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주게 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자기만이 옳았다는 비겁한 자기변명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구일중이 비겁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탁구의 이름에 있다. 김미순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구일중은 이름을 탁구라고 지으면 되겠다고 얘기하는데 이 탁구라는 이름은 그냥 신문기사를 보고서 내뱉은 것에 불과했다. 서인숙이 병원에서 산후조리를 하던 때에 김미순과 정을 통하고 임신하게 했으면서도 책임감보다는 오히려 김미순을 얕잡아 보고 있다고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급기야 김미순에게서 탁구를 데리고 와 자기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서 김미순을 납치하라고 사주하기까지 함으로써 김미순을 죽음의 위험으로 내몰고 결국 실명할 위기에 놓였다.

구일중은 또 다시 조진구가 필요하게 되자 과거와 단절하고 건실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생의 치료비로 흥정하면서 위험으로 끌어들였다. 조진구가 김탁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구일중은 자기를 위해서 할 수 없다면 김탁구를 위해서라도 다시 일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조진구에게는 어쩌면 생명이 걸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임에도 김탁구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까지 조진구를 또 다시 악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였다.

김미순을 피해자라 동정하는 의견도 많은데 서인숙의 입장에서 보나 김탁구의 입장에서 보나 김미순 또한 가해자에 지나지 않는다. 김미순의 간통행위로 인해 서인숙과 구마준의 인생은 더 불행해졌고 어린 김탁구를 거성가에 들여 보냄으로써 고단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김미순은 어린 김탁구를 거성가에 밀어 넣고는 홍여사로부터 돈을 받게 되는데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청산으로 내려 온 홍여사로부터 돈을 받게 된다. 이것은 김미순의 말대로 돈 받고 아이를 낳아줘다 해도 할 말 없는 것으로 손가락질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구일중이 김미순과 통정한 행위는 결과적으로 보면 김미순을 씨받이로 선택한 것이고 김미순에게 돈을 준 홍여사나 김탁구에게서 김미순을 떼어 놓으려고 납치를 지시했던 구일중 모두 김미순을 단지 씨받이로만 대했던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김탁구가 지금처럼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면 그래도 구일중은 김탁구를 찾아 내려고 했을지, 비열한 암수를 쓰면서까지 회사로 끌어들이려고 했을지는 의문이다. 여기서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만약에 김탁구가 거성가에서 성장했다면 지금처럼 긍정적인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조차도 의문이다. 거성가의 환경을 보면 김탁구가 지금처럼 성장했을거라 기대해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구일중도 역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끝없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고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그럼에도 구일중을 악으로 여기지 않고 선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바로 선악구도의 덫이고 많은 사람들이 선악구도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악구도의 고전적인 수법은 흑백논리인데 이러한 흑백논리에 익숙해지면 악이라고 할만한 게 정해져 있을 경우엔 그 외의 것은 선으로 간주해버리기 쉽다.

만약에 선악의 구도가 명확하게 성립되고 반드시 선이 악을 이긴다는 주제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오히려 불안해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임의로 선과 악을 구분하고는 그것을 정당화하려고도 한다. 그래서 악이 행하는 일은 무조건 악행이어야 하고 선이 행하는 일은 어떻게든 정당화하고 미화하려고 애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고 모욕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는 적이라고 간주하기 시작한다. 나하고 같은 생각을 가졌다면 무조건 내 편이고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르다면 무조건 적이 되는 대표적인 흑백논리의 폐해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구일중과 한승재 모두 악이지만 둘의 차이점은 한승재는 죽음을 선택하더라도 구마준만은 평생 그림자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함으로써 동정의 여지를 만들지 않았다면 반대로 구일중은 동정의 여지를 많이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일중은 자기로 인해 생긴 일이라 여기고 스스로 결자해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면 한승재는 끝까지 김탁구와 동반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매듭을 묶은 게 한승재 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종내는 자승자박하게 되고 만 꼴이다.

마지막회에서 구일중은 서인숙에게 '가엾은 사람'이라 말하며 딱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서인숙을 그렇게 가엾은 사람으로 만든 책임은 홍여사와 구일중 본인에게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현실속의 사람과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구일중인 것 같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구일중을 어떻게든 선의 카테고리에 넣어보고 싶어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현실속의 사람들 또한 자기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가 되고 피해를 주는지는 인정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옳다고 자기합리화를 시키고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살아간다.


덧) 꼭 언급하려던 것을 빼먹은 게 있기에 짧게 요지만 첨언한다.

관점을 바꿔서 본다면 구일중과 서인숙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서로의 힘겨루기에 자식들을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