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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SPORTS

축구해설의 최강투톱, 차차부자

투박한 전차군단은 잊어라. 독일 전차군단은 삐걱거리면서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전진하던 과거의 투박함을 걷어내고 자유자재로 방향전환을 할 수 있으며 정밀 포격으로 상대 진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최첨단으로 무장한 전차군단이 되어 돌아왔다.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은 외질, 쉬바인시타이거, 뮐러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시고 부상으로 결장한 발락의 공백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최상의 경기력을 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조별 예선 첫 경기부터 눈길을 끌었던 외질의 기량과 경기력은 정말 대단하다.

독일 대 스페인의 경기, 현재까지 치러진 이번 월드컵 경기 중에서 조금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가장 재미있고 경기 내용도 가장 좋았던 경기였다.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경기는 네덜란드 대 브라질의 경기였으나 기대치를 훨씬 밑도는 경기 내용에 실망했던 것을 모두 보상받은 기분이다.

한국과의 경기를 보면서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아르헨티나의 공격진을 꽁꽁 묶으며 무력화시킨 독일의 수비진도 대단했지만 정교한 패스와 기술로 끝없이 전진하며 아르헨티나를 완전히 무장해제시켜버린 공격진들도 훌륭했다.

세 골을 허용한 후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절망의 그림자, 아르헨티나의 공격진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세 골을 내 준 한국선수들의 허탈한 표정이 오버랩되었다. 승리에 대한 가능성은 줄어들고 경기할 의욕마저 사라져가는 상황에 처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안타까워 보였던 이유다.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던 독일이 이번 월드컵에서는 가장 재미있는 축구를 하며 전차군단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나가고 있다. 재미의 보증수표로 보였던 네덜란드와 브라질의 재미없는 이른바 '실리축구'는 바뀌어야 한다. 실력과 능력이 되는 팀들이 월드컵 무대에서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축구팬으로서 정말 실망스럽다.

독일의 경기는 차범근 해설위원이 주로 해설을 맡아왔는데 이번엔 경기를 끝낸 차두리가 해설에 합류했다. 차두리는 차범근 해설위원과 콤비를 이루며 우수한 입담으로 분데스리가에서의 경험과 독일내의 분위기를 전했는데 가장 만족스러운 해설이었다. 축구 해설 특히 독일팀의 경기 해설에서는 따라 올 사람이 없는 최강투톱 해설진은 차범근 차두리 부자 즉 차차부자다.

사실 이번 월드컵에서 차범근 해설위원은 과거와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차범근 해설위원이 해설하는 채널을 시청했던 이유는 축구선수 차범근에 대한 추억 이외에 TV 화면으로는 알기 어려운 경기장의 상황을 잘 전달해주었고 경기의 흐름을 잘 짚어주었기 때문이다. 축구해설은 정확성도 중요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런게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가끔 이런 걸 놓치는 경우가 있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차두리가 합류하자 차범근 해설위원도 한층 더 안정적이고 매끄러운 해설을 했고 만족스러웠다. 그동안은 같이 중계하던 캐스터와의 호흡도 불안정했었던 것 같은데 차두리의 합류로 이 부분도 많이 완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차두리가 마치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차두리가 축구를 한다는 것은 언론 등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2002년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었을 때는 조금은 의외이기도 했지만 기대감 또한 있었다. 그런 차두리가 처음으로 월드컵 경기에 나서던 순간을 기억한다. 안방에서 치러진 월드컵이지만 사상 최초의 첫 승을 목전에 두고 있던 때 히딩크는 차두리를 교체선수로 투입시켰다. 차범근이 해설하는 경기에 그 아들 차두리가 출전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내 가슴이 벅찼다. 아마도 차범근을 추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나와 같은 감정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보았다.

그 당시의 캐스터가 김성주였던가, 경기 결과에 한껏 고무된 그가 차두리의 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차두리에 대한 얘기를 해주길 바라며 분위기를 띄웠지만 차범근 해설위원이 잘라 말했다. "시간 끌기 작전인 것 같습니다." 이번 월드컵 그리스전에서도 캐스터가 차범근 해설위원을 부추겼지만 차범근은 경기 상황만을 이야기했을 정도로 차범근은 축구선수 차두리에 대한 칭찬을 아낀다.

그러나 차두리가 실수했을 때는 정확히 지적한다. 이번 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서 첫 실점을 했을 때도 그랬다. 차두리가 뒤에서 접근하는 우체 선수를 놓쳤고 그대로 실점한 상황이었는데 "아... 차두리... 사람을 놓쳤어요."라고 외치며 그 상황을 정확히 전달했다. 그 목소리는 선수를 놓친 축구선수 차두리에 대한 질책과 아들 차두리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얼마전에 축구 칼럼니스트였던 모 기자가 쓴 '차범근이 그리스전 해설을 하면서 아들 차두리의 이름을 거의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월드컵에서 아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또는 아들과 함께 해설을 하면서 아들 자랑을 자주 한 데 대한 반감을 의식한 듯 합니다.'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기자가 어떤 근거로 이런 기사를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기억하는 한 차범근 해설위원이 차두리를 칭찬한 적은 없다.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을 때 선수들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저 안에 우리 아들도 뛰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기뻐했던 것이 유일하다.

오히려 차범근 해설위원은 요즘 네티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차두리 로봇설처럼 차두리가 출전하면 말을 아낀다. 물론 네티즌들의 패러디처럼 차두리를 조종하기 위해서 말을 잃는게 아니라 축구해설자로서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경기를 해설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과 객관성을 잃지 않기에 차범근의 해설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차범근 해설위원의 해설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차두리를 대하는 차범근의 표정은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며 애써 겸손해하지만 자식에 대한 무한사랑과 자랑스러움은 숨기지 않았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축구선수 차두리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엄격하지만 아들 차두리에 대해서는 무한사랑을 보내는 아버지 차범근, 아버지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냉정한 질책을 무서워하면서도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아들 차두리. 아버지가 영면하실 때까지 끝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던 내가 이 두 부자를 부러워하는 이유다.

새로운 팀에서 새롭게 선수생활을 시작하는 차두리에게 좋은 말을 해 달라는 캐스터의 부탁에 아들 차두리에 대한 사랑과 자랑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차두리 화이팅"이라는 어눌한 한마디로 얼버무리고 마는 아버지 차범근. 어쩌면 이들 부자는 각박한 오늘날 가장 이상적인 부자관계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새로운 팀으로 이적하는 차두리가 잘 적응해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해나갔으면 좋겠다.

"차두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