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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정치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사퇴는 당연한데, 뒷 끝은 개운찮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이하 김석기)의 기자회견을 보고.

'김석기는 도대체 왜 사퇴한거지?'

날방송으로 김석기 사퇴 기자회견을 보고 난 나의 소감이었다. 김석기의 기자회견을 요약하면 '용산 참사'의 실체적 진실은 극렬한 불법폭력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라는게 명백히 밝혀졌고 김석기 본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검찰이 과연 수사기관이 맞는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수사결과를 내놓으며 김석기를 비호했고 청와대도 김석기의 사퇴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김석기는 그럼 왜 사퇴했을까?

사실은 돌연 김석기가 사퇴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내심 기자회견에 기대를 가졌었다. 버티기로 일관하던 전임자와는 다른 행보였기에 어떤 책임있는 발언을 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내 순진한 기대일 뿐이었다. 김석기는 단지 도의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서 사퇴한다는 것이었고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것이었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와 청와대의 발언들 그리고 김석기의 사퇴에 이르는 수순은 고도의 정치적 공작'은 아닐까하는 삐딱한 생각도 해봤다.

김석기의 기자회견을 보면 현 정권에서 경찰의 인식이 얼마나 비틀려 있는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설사 정당한 공권력의 수행과정이었다고 하더라도 6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 중에는 공권력을 수행하는 경찰관도 한 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여기에 대해 경찰에서는 그것이 과연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였는지, 무리한 과잉 진압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하나도 없을 수 있는가? 경찰 조직의 수장으로 내정된 자의 인식이 그러하니 인터넷 여론조작을 하겠다는 한심하고 웃기는 발상도 튀어나오는거다.

김석기는 사퇴의 변에서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그런 김석기에게 묻고 싶다.

경찰이 유족들을 강제로 감금, 이송하고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 것은 법과 원칙인가?
용산에서 벌어진 철거 용역 깡패들의 비열하고 무자비한 폭력은 법과 원칙인가?
경찰이 용역 깡패들의 폭력을 방조 또는 비호해 준 것은 법과 원칙인가?
경찰이 용역 깡패들과 합동으로 철거민들을 진압한 것은 법과 원칙인가?
사전에 기본적인 안전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진압을 시작하고 유류 화재 진압 소방차 돌려보내는 등 진압 과정에서 보여진 경찰의 무리한 과잉진압은 법과 원칙인가?
특공대 투입을 최종승인하고서도 아니라고 발뺌하려 했던 김석기 본인은, 진압작전이 진행되는 동안에 무전기를 꺼놨다는 김석기 본인은 과연 얼마나 법과 원칙에 충실했었나?

민주사회에서 폭력이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용산 철거지역에서 폭력으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던 건 철거 용역 깡패들이었고 그 깡패들의 폭력을 방조하고 비호했던 경찰이었다. 그 폭력에 시달리다 경찰로 구청으로 찾아다니며 의사소통을 해보려 했지만 아예 거절해버렸던 것 아닌가? 오죽하면 철거 용역 깡패들의 폭력이 무서워서 망루에서 내려오지 못했다고까지 할까. 철거 용역 깡패들의 폭력과 이를 비호한 경찰의 폭력은 폭력이 아니고 철거민들의 자구책을 위한 폭력만 폭력인가?

'경찰의 자존심과 명예를 국민 여러분이 지켜주셔야만 경찰도 국민 여러분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을 내뱉는 김석기가 과연 경찰총수가 될 자격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웠다.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경찰의 당연한 의무이지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실행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경찰의 자존심과 명예는 경찰 스스로 지키는 것이지 국민이 지켜주어야 지켜지는게 아니다. 경찰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가 못 얻는가, 경찰이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는가 못지키는가는 국민에게 달린게 아니라 경찰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말이다. 신뢰나 존경은 말로 해서 얻어지는게 아니다. 무조건 믿어달라고 우길게 아니라 그렇게 행동을 하면 신뢰는 자연히 생겨난다.

김석기가 중언부언 변명으로 일관된 사퇴의 변을 밝힐 게 아니라 유구무언이란 한마디로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깨끗하게 물러났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그게 경찰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고 사기를 높여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국민들로부터 최소한 경찰에 대한 신뢰는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9.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