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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법칙' 석기시대 생존캠프 '초심' 가소롭다

 
 
 
'정글의 법칙' 조작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제작진은 해명이나 사과 대신 '방송을 보면 안다'며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췄는데 그 이유는 바로 '초심'에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또한 각본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초심'을 컨셉으로 잡았던 방송에서 조작 논란이 터져나왔던 것은 제작진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강한 자신감을 내보이며 방송을 강행했던 게 아니었겠나.
 
구차한 변명보다 깔끔한 사과가 최선
 
방송을 조작해 시청자를 우롱했던 '정글의 법칙' 제작진의 대처법은 프롤로그란 부제를 달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데 방송의 20 분여를 할애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 또한 조작 논란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으로서 방송 제작상의 고충을 토로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논점을 흐림으로써 제작진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축하고 있을지 모르나 그건 매우 천박하고 비루한 짓이었다. 그보다는 방송을 조작해 시청자를 속였던 것에 대해 깔끔하게 사과했다면 훨씬 더 좋은 성과를 얻었을 것이다.
 
방송 제작상의 고충이야 누구라도 대충은 짐작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방송 제작상의 고충이 있다고 해서 방송 조작에 대한 정당성은 물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방송 제작상의 고충을 핑계로 방송 조작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논점을 흐려 면죄부를 얻으려 하는 제작진의 태도는 방송을 조작한 것보다 더 저질의 추태다.
 
무엇이 조작이고 무엇이 진정성인가
 
'정글의 법칙' 조작 논란의 와중에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조작' 외에 '진정성'이란 거였다. 제작진은 이 둘을 서로 엮어서 논점을 흐려 빠져나가려는 꼼수를 썼다.
 
'정글의 법칙' 조작 논란은 두 가지 국면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한 출연자의 매니저가 제작진은 시원한 숙소에서 맥주 파티를 즐기면서 출연진들의 근처에는 짐승을 갖다 놓아 고생시키는 리얼이 아닌 개뻥 방송이라는 폭로를 계기로 조작 논란이 촉발되었다. 그런데 그 후 방송에서 조작되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속속들이 올라오면서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첫째 국면에서의 조작 논란은 뉴질랜드 방송 편에 국한되는 것이라면 이어진 둘째 국면에서의 조작 논란은 '정글의 법칙' 방송 자체의 조작 논란인 것이다. 즉 '정글의 법칙' 조작 논란의 핵심이 바로 두 번째 국면에서 나온 증거들이란 얘기다.

 
사실은 '정글의 법칙' 방송 자체의 조작 논란은 그전부터 제기되어왔던 것이었다. 하나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가 뉴질랜드 편 방송 제작 시에 한 매니저의 폭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그동안 조작 논란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안이하게 대처해 왔던 제작진들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편집이란 것을 무기로 시청자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다고 오만을 떨던 제작진들이야 마땅히 먹어야 할 욕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들은 끝내는 또 다른 편집을 통해 그들의 조작을 정당화하고 면죄부를 얻는 데 성공한 셈이 됐다. 방송 제작자들은 조작으로 시청자를 속이는 작태를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뉴질랜드 편에서 한 매니저가 폭로한 것은 제작진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제작진이 시원한 숙소에서 맥주 파티를 즐기든 말든 방송 조작 논란과는 큰 관련이 없다. 방송 제작진들 모두가 한데에서 수렵과 어로로 숙식을 해결한다고 하지는 않았으니 제작진과 출연진 간의 인간적인 도리와는 별개로 어떤 조작이라고 몰아가기는 어렵다.
 
또한 방송을 보면 의도적으로 동물을 풀어 놓는 연출을 했다고 볼 만한 장면은 보이지 않으며 출연진들도 이 부분은 극구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갔을 수도 있는 문제이므로 이 부분이 조작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해야 할 것 같다.
 
시청자들이 구체적인 증거로 제시한 내용은 '정글의 법칙'이 명백히 조작된 방송이었다는 것으로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느니 깔끔하게 사과했다면 깔끔하게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저질 노이즈 마케팅이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군중의 심리를 악용하는 추한 작태는 늘 불쾌하다.
 
 

 
시청자들이 제시한 조작 증거에 대해 제작진이 늘어놓는 이런 저런 변명은 신빙성이 없다. 몰랐다면 일단은 진정성은 인정해줘야겠지만 오히려 알고서 조작한 것보다 더 위험하다. 사전 답사에서 그런 정도도 체크하지 못했다면 출연진뿐만 아니라 제작진 모두가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는 것 아닌가?

 
'힘바의 연인', 이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장면이 '정글의 법칙' 조작 방송의 백미다. 제작진들은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는 꼼수를 통해 도리어 자신들의 무능력을 홍보하느니 차라리 조작했던 사실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했어야 했다.
 
김병만을 비롯한 출연자들의 진정성
 
뉴질랜드 편에 처음으로 합류한 정석원이 튀어나와서 개고생했으니 열 손가락 다 걸고 조작이 아니라고 떠들어대는 것을 보고 실소가 터졌다.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비판하면 튀어나와서 '목숨 걸고 연기했으니 막장이 아니다'라고 헛소리하는 딴따라들이 떠올라서다.
 
연기자가 연기를 못해서 또는 연기를 열심히 안 해서 막장 드라마라는 게 아니라 드라마의 설정과 내용 전개가 막장이라는 얘기다. 물론 연기자로서 자신이 애써 배역을 선택한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비판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존심은 상할 수도 있겠으나 논점은 제대로 파악하고 떠들어라. 이런 부류들보다는 '연기자로서도 막장 요소를 어느 정도까지는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고 좋은 캐릭터가 있다면 어느 정도 드라마의 막장 요소를 커버할 수 있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박시은이라는 배우가 훨씬 더 개념 차고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정글의 법칙'에서 출연자들의 진정성이란 촬영하는 동안에 개고생을 했냐 안 했냐에 대한 진정성이 아니다. 특히 김병만이 몸으로 하는 것에 대한 진정성은 이미 '달인'에서부터 충분히 입증해오지 않았나.
 

 
김병만을 비롯한 출연자들의 진정성이란 미리 제작진과 짜놓은 각본에 따라 연기를 했냐 아니냐에 있다. 김병만이 "절대 이분들을 놀라게 하면 안 돼!"라고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즉 김병만의 진정성이란 이 장면에서 각본에 따라 연기를 했던 것인가 아니면 정말 몰랐고 제작진이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었기 때문에 저리 말했던 것인가에 달린 것이란 얘기다.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조작 및 진정성에 대한 논란은 이처럼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하지만 김병만과 출연자들이 제작진과 짜고 연기를 했던 거라면 그들 또한 제작진과 함께 방송 조작의 공범들로서 제작진과 싸잡아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조작을 기획한 제작진과는 별개로 출연자들로서는 몸은 몸대로 개고생하고도 진정성 없다고 욕은 욕대로 먹으니 억울할 만도 하겠으나 결국은 그들이 선택해 자초한 것일뿐이다.
 
방송 조작 논란이 생길 때마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약자일수밖에 없는 출연자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모면하려는 방송사들의 태도다. 물론 개중에는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나서는 출연자들도 있을 것이지만 왠만하면 제작진들이 저지른 문제는 출연자들에게 떠넘기지 말고 제작진이 책임지고 해결했으면 한다. 그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방송사가 시청자를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는 데에 있다.
 
가소로운 석기시대 생존캠프 '초심'
 
'정글의 법칙'이 초심으로 돌아가 석기시대 생존을 마쳤다고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은 매우 가소롭다. 특히 시커먼 옷으로 바꿔입고는 완전히 석기시대라도 되는 양 연기하는 장면에선 실소가 터졌다. 이 장면은 조작 논란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 같다고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작 논란은 이런 정도의 오버 액션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안전을 위해서 언더웨어는 벗지 않는다는 자막은 제작진의 웃음 코드로 이해해야 되나? 문명을 벗었다는데 그 시커먼 옷은 문명이 아니라 현지에서 직접 조달한 것인가? 안전을 위해서 운동화는 신고, 냄비를 주고 물물 교환을 빙자해 라면과 김치를 주고, 수경과 장갑 오리발을 주어 고기를 잡으며 석기시대로 완벽 회귀했다고 과대 포장하면서 제작 당사자들은 좀 오글거리지 않는지 무척 궁금하다.
 
 

 
제작진들의 이러한 쓸데없는 오버 액션이 어쩌면 조작 논란이 생겨난 근본적인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과도한 오버 액션을 해놓고 보니 그 다음엔 더 센 뭔가를 필요해지고 더 과장해서 포장하려다 보니 결국 조작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제작진들이 편집의 힘을 과신해서 시청자들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버린다면 굳이 초심이니 진정성이니 찾지 않아도 자연히 수반될 것이다.

 
'초심'으로 되돌아가겠다고 하는데 '정글의 법칙'의 초심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듯하다. 프로그램을 런칭할 때 제작진의 초심은 무엇이었고 참여한 출연진들은 또 어떤 각오와 자세로 촬영에 임했던 것인지 마치 남의 다리를 긁으며 시원해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최초의 방송은 어땠을까? 출연자들은 휴대전화를 비롯한 문명의 이기들을 버리기는 했으나 그런 건 거기서 갖고 있어봐야 짐만 될 뿐 무용지물이다. 그리고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들을 지참했다. 광희는 휴대용 샤워백과 물을 정수할 수 있는 약을 휴대함으로써 현지에서 식수를 해결했다. 그럼에도 이 방송이 조작이고 진정성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즉 '정글의 법칙'의 초심과 진정성이 여기에 있다.
 
인간은 문명 속에서 살아도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타지에 가서 물을 바꿔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물은 사람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한데 아무런 검사나 여과장치도 없이 현지에서 식수를 해결하라고 하는 게 방송의 초심이나 진정성과 무슨 관련이 있나? 동행하는 의료진이 있다고는 해도 이건 출연자들을 학대하는 것에 불과하며 초심이나 진정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뉴질랜드 채텀 섬에서 바위에 고인 물을 식수로 쓴다는 장면이 잠깐 나왔을 뿐 그 물을 실제 식수로 사용했는지의 여부는 당사자들 외에는 확인할 길이 없다. 사실은 확인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그 물을 마시지 않았고 제작진이 생수를 지급해줬기를 바라는 게 내 진심이다. 아무리 방송 활동이 출연자들의 직업이라고는 하나 며칠 동안이나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프로그램의 컨셉이 정글에서 자급자족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는 지급해야 한다. 그것은 출연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사전에 답사를 했고 후방에 안전요원들이 백업해주고 있다고 해도 그게 맞다. 그런다고 해서 프로그램의 초심 또는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제작진의 쓸데없는 편집질이 그것들을 망칠 뿐이다.

 
문명 속에 살고 있는데 도구를 몽땅 버린다고 해서 원시 석기인이 되는 게 아니다. 이미 읽은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있는데 책을 버린다고 해서 책을 읽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인가? 제작진들의 초심으로 돌아간 석기시대 생존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진화와 위험성을 컨셉으로 잡아라
 
'정글의 법칙' 최초 방송은 출연자들이 서먹한 사이임에도 오지로 들어가 갈등하고 그것을 해소해나가는 과정이 사실감 있게 그려졌다. 익숙한 것들에서 떠나와 적막한 곳에서 느끼는 갈등과 두려움, 나약함 등에 대해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극적인 장면도 나왔다. 이런 게 '정글의 법칙'의 초심이고 진정성이다. 만약에 여기서 조금이라도 사전에 기획해서 연출된 부분이 있다면 그게 바로 조작이란 것이고 시청자들로서는 프로그램을 즐겨봤던 그 이상의 배신감을 가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처음의 방송에서와 같은 장면은 나오기 어렵다. 출연자들은 이미 그 시스템에 익숙해졌고 요령이 생겼다. 새로 합류하는 출연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미 방송을 통해 충분히 숙지했고 대강의 상황을 짐작하고 촬영에 임한다. 시청자들에게도 패턴이 익숙해졌다. 정글에 가서 거주지 마련하고 수렵 및 어로로 끼니를 해결하고 먹으면서 흐뭇해하는 똑같은 표정들 일색이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제작진들이 짜낸 궁여지책이 좀 더 세고 가혹한 설정인 듯하다. 그게 뉴질랜드 편에서 나온 초심 찾기인데 이러한 발상은 잘못됐고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초심'은 하나의 컨셉이지 모든 문명을 버리고 석기인이 된다가 아니다. 이러다 보니 결국은 뉴질랜드 편에서도 그랬듯이 필요한 것들은 그때그때 지급해 주면서 마치 모든 문명을 버리고 석기인으로 살아냈다는 식으로 과대 편집 및 조작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컨셉은 '진화'여야 한다. 뉴질랜드 편에서 병만족은 '초심'이란 컨셉을 잡아 석기인이 된다는 설정을 함으로써 과거로 회귀해 퇴보했다. 진화를 거부하거나 퇴보하는 병만족의 운명은 멸종밖에는 없다. 최초의 방송에서와 마찬가지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는 지참하고 방송에 임하는 각오와 자세는 초심을 유지하되 삶의 방식에서는 진화해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조금씩 루즈해지는 부분들은 새로 합류하는 출연자의 활약과 예능감을 활용하면 충분히 메울 수 있다.

 
병만족이 진화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는 그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청률을 위해 조금 더 세게 조금 더 가혹하게 컨셉을 잡고 조금씩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다 보면 그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고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초심을 컨셉으로 잡아 각오와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것과 일체의 도구들을 버리고 원시 석기인으로 퇴보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조작 논란과는 별개로 '정글의 법칙'을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은 뻔한 길을 놔두고 왜 저리 힘들게 돌아가냐는 것과 정글을 왜 저리 훼손하냐는 것이다. 뻔한 길을 돌아가며 개고생하는 거야 그들의 선택이겠지만 과대 포장으로 조작해서 시청자를 속이려는 고약한 시도는 버려야 한다.
 
단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 정글을 훼손하고 오는 것은 무슨 심뽀인지 모르겠다. 뉴질랜드 관리 당국으로부터 숙영 불가와 불도 피울 수 없다며 촬영 불가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통지를 받은 제작진은 당혹감이 아니라 자괴감과 수치심을 가졌어야 정상이다.
 
낚시와 사냥 등이 금지된 데다 불을 피우는 것까지 엄격히 감시하는 갈라파고스에 가서 라면을 끓이고 고기를 튀겨 먹는 짓을 도대체 왜 했는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라면을 끓인 거야 어떻게든 처리가 됐을 거라고 보지만 고기를 튀긴 것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조명을 이용해 끼니를 해결하는 뻔한 잔꾀가 이런 몰상식한 장면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건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을 찾아가 그 순수한 자연을 훼손하고 돌아오는 것이 '정글의 법칙'의 방송 취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