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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성균관 스캔들' 2프로 부족한 레미제라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전체 분량의 절반이 지날 즈음에서야 겨우 내용 전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전개로 보면 또 언제 생뚱스럽게 샛길로 빠져서 산만하고 답답한 내용을 이어갈지 모르는 일이니 아직은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균관에서 거관수학하는 성균관 유생들이 성균관을 떠나 집에서 보낼 수 있는 날, 각자 집으로 갔다가 성균관으로 돌아 온 성균관 유생들은 집에서 가지고 온 진귀한 물건들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 배해원은 보석이 박힌 물건을 들고 들어왔다고 자랑하고 김우탁은 연수정으로 된 연경줄을 달고 들어 왔다고 자랑이며 구용하는 중국에서 수공으로 만드느라 1년이나 기다려 받았다는 자금성 미니어쳐를 들고 들어와서 자랑질이다.

그 시각 김윤희는 명륜당에서 부용화가 의뢰한 연서를 대필하는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하나 그 연서를 받게 될 사람이 바로 이선준이기에 망설이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성균관에 도둑이 들고 유생들의 물건들이 사라지고 약방에서는 약첩까지 없어져버렸다. 약첩을 가져간 도둑이 시전 약방에 약첩을 팔면서 성균관 내부 물건들을 함께 내다 팔았다. 김윤희는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없는 상태로 곤경에 처하는데 설상가상으로 도둑이 훔친 김윤희의 호패를 시전 약방에 떨어뜨리고 감으로써 김윤희는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성균관 장의 하인수는 성균관 대사성에게 성균관 유생을 처벌하는 일인데 금부를 불러 도적을 잡을 수는 없는 일이니 재회(齋會)에서 김윤식의 죄를 치죄하여 성균관 유생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요청한다. 그 때 정조가 나타나서 그 의장을 하겠다고 말하며 그것을 순두전강으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만일 김윤식이 도난 사건의 진범이라면 출재이나 진범이 아니라면 무고의 죄를 짓는 유생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유생들 모두 한성부 권지로 임명할테니 김윤식이 무죄라 여기는 유생들과 유죄라 여기는 유생들은 각자 접을 이루어 이틀 동안 그를 증명하라고 한다.



모든 정황이 완벽하게 김윤희에게 불리하고 모든 유생들은 하인수와 같은 접을 이루어 따라가지만 문재신, 이선준, 구용하는 김윤희의 결백을 믿고 그를 증명하기 위해 남는다. 이제서야 잘금 4인방이라 불러도 될만한 조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형국이다. 이 이전에 잘금 4인방이라 명명하며 의미를 부여했던 것들은 모두 설레발에 불과할 뿐 고려할 가치가 전혀 없었던 것들로 봐도 무방하다.

운종가에서 나고 자랐으며 운종가 상인들에게 가게 세를 놓을 정도로 재력이 막강한 부친을 둔 구용하의 혁혁한 공로로 진범을 잡을 단서가 시전 행수의 수장고에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선준이 난전의 거래내역이 담긴 거래장부를 찾기 위해 수장고로 잠입하나 하인수에게 들켜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이를 알리기 위해 김윤희가 기생복장으로 갈아 입고 수장고로 들어가서 위기를 모면한다. 김윤희와 이선준은 함께 도망을 치다가 또 다시 하인수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지만 구용하와 모란각 기생들의 합동작전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김윤희와 이선준이 시전 행수의 수장고에서 가져 온 거래장부에는 반인이란 말 뿐인데 이를 보던 구용하는 성균관을 제집처럼 드나들어도 티가 안 나는 재직(齋直) 아이와 연관이 있는 반촌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김윤희가 함부로 의심하면 안된다고 하자 구용하는 함부로 의심하는게 아니라며 방문을 열어젖히는데 밖에서 엿듣고 있던 재직아이가 도망을 친다. 구용하의 말처럼 "그래도 핏줄이라고 범인이 드러날까봐 내내 맘 졸이고 있던 모양"이었다.



구용하의 추리대로 성균관의 물건을 훔쳐 내다 판 범인은 재직 아이인 복동의 형 복수였다. 복동 형제의 엄마가 상을 당하자 살아 생전 죽는 날까지 약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의원 한 번 못 보이고 보낸 것만으로도 하늘이 무너지게 억울하고 새 옷 한 번 못 입어보고 고생만 했던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에 삼베옷 한 번 해 입히려고 물건을 훔쳐 간 것이었다.

그런데 재직 아이가 도망치다가 하인수 일행과 맞닥뜨리게 되면서 또 다시 김윤희에게 불리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하인수가 재직아이 복동의 기록을 보고 사는 곳을 알아내 성균관 물건을 훔쳐 간 복동의 형 복수를 먼저 만나게 된다. 돈 꾸러미를 내밀고 순두전강이 끝나는 시점인 이틀 동안 물건을 훔친 적이 없다는 비밀만 지켜주면 돈을 차지할 수 있을거라고 겁박한 것이다.

김윤희 일행은 복수의 용모화를 들고 반촌을 뒤지고 다니지만 안다는 사람이 없자 다시 조사를 한 후에 지난 보름간 가장 가격이 폭등한 품목인 소금과 삼베로 범위를 줄인다. 그리고 성균관 서리에게서 재직아이 가솔 중에 복동 어미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알게 되고 드디어 복수와 마주치게 된다. 그 때 구용하와 성균관 서리의 대화를 엿들었던 복동이 달려오며 복수에게 형 잡으러 왔으니 빨리 도망치라고 말하고는 돌뿌리에 채여 넘어지고 만다.



김윤희가 거래장부를 내밀자 증거를 대라던 복수는 임금 앞에서 자백할 수 없다고 한다. 복수는 엄마 장례는 치뤄야 되고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삼베옷 해 입히고 싶지만 아무리 해도 시전에서 제값 치르고 살 수 없는데 어떡하느냐고 뭘 잘못했느냐고 따지고 든다. 김윤희는 그 말을 듣고 돌아서는데 쫓아 온 이선준에게 복수가 예전의 자기와 닮았고 복수의 말이 다 맞는데 말이 필요없다고 한다. 결국 아무도 강제하지 못하고 잘금 4인방은 하나 둘씩 자리를 뜬다.

복수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다. 찔금 4인방들의 시선이 그것이다. 그들의 말을 빌려 보자면 '어린 놈이 돈 맛은 알아가지고 내일까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돈으로 어린 놈의 양심을 사려고 했던 비겁한 자들의 시선은 늘 이렇게 저열하다. 아마도 복수가 입을 다물 것 같지 않았다면 이 자들은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윤희 일행이 복수와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장면은 언뜻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연상된다. 주인공인 장발장은 일곱 명이나 되는 어린 조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겨울철이 되어 일거리가 없어 조카들이 굶주리자 빵 한 조각을 훔치다 잡혀서 19년간이나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장발장을 법대로 처리하는게 옳은 것인지 인정에 끌려 모른 척 봐주는게 맞는 것인지 쉽게 결단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나오는 복수의 경우는 이러한 딜레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복수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말들은 당시 사회상을 풍자하는 내용은 될 수는 있겠는데 인정에 끌려서 복수의 도둑질까지 모르는 척해버리기엔 복수의 죄질이 상당히 안좋다. 일단 훔쳐간 물건들이 상당히 값나가는 고가이고 어린 동생이 고생해서 일하고 있는 성균관을 털었고 김윤희의 호패를 훔쳐서 일부러 범행 현장에 떨어뜨림으로써 죄를 타인에게 전가하려고 했다.

복수의 경우에는 인정을 베풀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법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면 당연히 복수는 법대로 원칙대로 의법 처리하는게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복수의 말에서 드러난 사회적인 문제점을 바로 잡는게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잘금 4인방의 언행과 처신을 통해 복수의 도둑질이 어쩔 수 없었던 행위였고 인정을 베푸는게 더 일리가 있다는 뉘앙스를 준 것은 2% 부족한 레미제라블의 흔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걸오가 복동의 발을 씻겨주며 복수가 들으라는듯이 말을 하는 장면은 의미가 상당히 컸다. "동생이란 놈들은 말이다. 그렇게 형의 뒷모습을 따라 사는 놈들이야. 너 이 녀석이 나중에 어떻게 되길 바래? 좀도둑 아니면 비겁한 도망자?" 걸오는 복수에게 돈 주머니를 내놓으며 훔친 물건들 갚을만큼 될텐데 빌려주는 빌려주는 것이고 모양 빠지지 않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임금 앞에 나와서 자백하라고 에둘러서 권유한다. 복수가 돈만 들고 튈 수도 있다고 하자 걸오는 복동의 머릴 쓰다듬으며 '설마 이 녀석이 이렇게 보고 있는데?'라고 한다. 걸오의 형에 대한 회한이 함께 묻어나오는 애잔한 장면이었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사랑으로 변화되고 그렇게 변화된 장발장은 팡틴느의 딸 코제트를 사랑으로 변화시킨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에서 두번째 혁명이 시도되던 정치 사회적 격변기를 살았던 비참한 사람들의 얘기라면 '성균관 스캔들'에 나오는 복수는 금난전권의 폐해가 극심해서 통공발매정책이 시행될 수밖에 없었던 격동기를 살았던 비참한 사람들의 얘기라 할 수 있다. 걸오가 복수에게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고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 주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걸오의 이 장면이 있기에 복수의 죄질에 대한 작가의 상상은 2% 부족함이 되기도 한다.

성균관 유생들이 따뜻한 아랫목에서 단잠에 곤히 빠져 있을 때 아침마다 앞다투어 달려 와 북을 두드리며 기침하라 소리치던 아이, 성균관 유생들에게 뛰어다니며 호외가 될만한 조보(朝報)를 돌리던 아이, 성균관 유생들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쫓아다니며 알려주던 아이, 난 그 아이들이 학동 정도라 생각했었는데 그 티없이 밝은 아이들이 재직이었다니 마음이 아프다.

자기 형의 도둑질이 혹여 탄로라도 날까봐 성균관 유생들의 방문을 기웃거리며 애를 태우던 복동이, 제 형의 도둑질이 탄로났음을 알고는 그 사실을 제 형에게 알려주기 위해 달려가다가 돌뿌리에 채여 넘어지면서도 잡으러 왔으니 빨리 도망치라고 소리치던 복동이, 나이 11세로 부모는 없고 품성 천성은 善이라 기재해놓은 이 아이의 선한 눈매가 자꾸 눈에 밟혀 내내 마음이 답답하다. 복수가 걸오의 충고에서 사랑과 희망을 깨닫고 올바른 선택을 해서 복동이가 성균관에서 다시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의미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