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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누이뎐' 만신은 왜 자결했을까?




드라마 '여우누이뎐' 지난 주 12회 방송에서 만신은 최후를 맞이했다. 도무지 적수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 절대강자로서의 포스와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만신이 구미호의 일격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황망함과 허탈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렇게 죽은줄로만 알았던 만신은 뜻밖에도 다시 살아났고 옆에 죽어 있는 퇴마사의 장기를 탐하는데 이 장면은 마치 짐승의 사체를 먹어치우는 하이에나처럼 보인다. 만신이 황망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만신의 정체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꿰 맞추려던 시도는 허사가 되었기에 또 다시 혼란에 빠져버렸다.

먼저 '여우누이뎐' 13회 방송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면 천벌(天罰)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윤두수는 자기 딸 초옥을 살리기 위해 구산댁의 딸 연이를 살해하고 간을 적출해가고 양부인은 연이의 간을 초옥에게 먹여 초옥을 살려낸다. 그렇게 살려낸줄로만 알았던 초옥은 연이의 간을 먹고 살아났다는 것을 알고 방황하던 중에 연이가 빙의되어 마치 연이인양 행동한다. 초옥에게 연이의 원귀가 씌었다고 판단한 양부인은 초옥을 강제로 무당에게 데려가서 원귀를 쫓으려는 굿을 시작한다.

초옥에게서 연이의 원귀를 쫓으려고 했던 양부인의 계획은 초옥에게 빙의된 연이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 납치하고 칼을 꽂던 윤두수를 떠올리면서 의외의 상황으로 바뀌어버린다. 초옥을 찾아 무당집으로 들어서며 초옥을 부르는 윤두수의 소리를 들은 빙의된 연이는 사력을 다해 몸을 묶고 있던 줄을 풀고 무당의 칼을 들어 윤두수를 찌른다. 딸이 흉기를 들어 아비를 찌르는 패륜을 저지르고 딸을 살려내겠다던 어미는 속수무책으로 그 장면을 넋 놓고 지켜봐야 되는 이런게 바로 천벌이라는 것 아니겠나. 금수만도 못한 짓을 저지른 윤두수와 양부인의 원죄로 인해 왜 초옥이가 그 아비 어미와 똑같은 패륜을 저질러야 되는건지 당위성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 고통은 고스란히 초옥의 아비 어미가 받게 되는 것이니 전혀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자기들의 원죄에 대해서는 조금의 반성도 없이 흉악하게 변해버린 초옥에게 짐승도 제 아비를 해하지 않는다한들 '내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를 살리려고 어떤 짓을 했는데, 고작 돌아온 댓가가 고작 이런 것이냐'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딸이 아비를 흉기로 찌르는 것은 패륜이고 자기 딸을 살리겠다고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은 패륜이 아닌가. 윤두수와 양부인은 초옥이 아비를 찌른 것이 잘못한 행동이었다는 말을 들으려하기 이전에 먼저 자기들의 원죄를 깨달아 뉘우치고 초옥에게 용서를 빌어야 될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빙의된 연이는 기꺼이 초옥의 몸을 떠나갈 것이다.

초옥에게 연이의 귀신이 씌었다고 생각한 계향은 충일과 충이에게 고춧가루를 넣은 주머니를 채워주고 연이에게 이쁜 짓을 한게 없으니 초옥이 가까이 오면 뿌리라고 한다. 그렇게 연이의 귀신이 무서우면 살아있을 때, 옆에 있을 때 좀 더 살갑게 대해주지 그깟 고춧가루가 뭐라고 그걸로 연이 귀신을 방어하겠다는 것인지 인간이란 참 어리석다. "전 이런거 필요없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연이를 불쌍하게 여겨야 되는 것 아닙니까? 연이가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다시 왔겠습니까?"라고 고춧가루를 팽개치고 가는 충일의 변화가 놀랍다. 난폭했던 충일을 이렇게 변하게 한 건 무엇일까?

정규의 하례날 정규에게 간 초옥을 찾아왔던 윤두수는 초옥을 끌고가려고 하는데 빙의된 연이는 상에 놓인 젓가락을 들고 윤두수를 찌르려고 한다. 하지만 구미호가 막아서면서 오히려 구미호가 찔리게 되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 온 윤두수는 초옥에게 '너는 대체 누구냐'고 물으며 초옥에게 사랑을 쏟았는데 내게 왜 이러는 것이냐며 탄식한다. 그러나 초옥은 윤두수에게 침을 뱉으며 "짐승만도 못한 놈. 니 놈이 내게 한 짓을 벌써 잊었느냐? 기다려라. 내 반드시 내 손으로 네 놈의 숨통을 끊어 놓을 것'이라고 증오가득한 말을 쏟아낸다. 윤두수는 '왜 자기 자식 귀한줄만 알고 남의 자식 귀한줄은 모르냐'는 상징적인 질문을 끝없이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정규는 하례날 찾아 온 초옥을 만나고 초옥에게서 연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초옥에게 찾아 와 연이가 맞느냐고 물어보지만 빙의된 연이는 혼례를 앞둔 정규를 놓아주기 위해 연이가 아니라 초옥이니 돌아가라고 한다. 실랑이중에 방울노리개가 떨어지고 뒤이어 연이가 그리던 그림이 날려 정규손에 들어간다. 정규와 개울가에서 반딧불이를 잡던 것을 그려놓은 것이다. 빙의된 연이는 '연이랑 노는 모습이 하도 좋아보이길래 그렸다'고 둘러대지만 정규는 연이임을 직감하고 빙의된 연이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혼이라도 좋고 괴물이라도 좋다는게 진심이니 다시는 떠나지 마라'고 애원한다. 정규와 연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이 애절한 사랑은 드라마 '여우누이뎐'의 해피엔딩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또 다시 예측불허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초옥에게서 연이의 귀신을 떼어내겠다고 찾아 간 무당에게 초옥의 혼이 들어와 연이가 몸을 빼앗아 갔으니 몸을 찾아달라고 한다. 연이 혼이 심장에 있는데 보름달이 뜰 때 심장을 찌르면 연이 혼이 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양부인에게 칼을 쥐어준다. 초옥의 혼이 무당에게 들어간다는 이 장면은 다소 생소해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과거에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집들이 많았고 굿을 구경하다보면 이와 유사한 행동을 하는 무당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는 관계로 초옥을 연상하기에는 무리가 많지만 무당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꽤나 그럴싸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양부인은 칼을 들고 초옥의 방으로 향하는데 이를 본 천우가 구미호에게 알려 빙의된 연이를 빼돌린다. 이 사실을 모르는 양부인은 칼을 들고 초옥의 심장 부위의 이불을 찌르게 되지만 초옥은 없다. 실성한 것은 초옥이 아니라 바로 양부인이다. 심장을 찌르면 연이 혼이 나갈 거라는 말을 믿는다는 것도 그렇지만 심장을 찔린 초옥이 정말 살게 될거라고 믿는다는 것은 실성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색경이라도 있으면 니 모습을 보여주고 싶구나. 지금 니 모습이 진정 악귀의 모습이구나"라는 구미호의 말은 양부인의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양부인은 결국 윤두수에 의해 집에서 내쫓기고 만신이 은거하는 동굴로 찾아가 만신을 발견한다. 만신에게 초옥을 살려냈으니 초옥을 찾아줄수도 있을거라며 초옥을 좀 찾아달라고 애원한다. 만신도 역시 양부인에게 초옥의 심장을 찔러야 초옥아씨가 돌아올거라고 무당과 똑같은 말을 한다. 양부인과 만신은 자고 있는 초옥을 몰래 납치해와서 칠성판에 묶어 놓는데 만신은 양부인마저도 직접 초옥의 심장을 찌르게 만들 요량인지 보이지 않는다. 뒤늦게 빙의된 연이를 찾아 온 구미호가 동굴로 들어서서 양부인을 제지하려고 한다. 이 때 만신이 등장하는데 죽인줄로만 알았던 만신이 살아있음을 안 구미호가 당혹해하는 사이 양부인은 칼을 들어 구미호를 찌르려고 한다. 그 순간 기절해 있던 빙의된 연이는 위험을 감지하고 정신을 차려 묶여 있는 새끼줄을 뿌리치고 양부인의 칼을 구미호 대신 맞게 된다.

빙의된 연이를 살려서 데려가려고 구미호는 빙의된 연이가 윤두수를 향해 찌른 젓가락을 대신 찔리게 되고 위험에 처한 어미를 살리려고 빙의된 연이는 초옥의 혼이 나갈수도 있는 심장에 양부인의 칼을 구미호 대신 맞게 된다. 예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미 구미호와 새끼 연이의 사랑은 방어적이라면 윤두수와 양부인은 다른 누군가를 죽여서라도 자기것을 지키려는 공격적인 사랑이다. 그렇게 심장을 찔린 초옥이 살아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드라마의 소재가 구미호이니 구미호의 여우구슬을 삼키고 살아나기는 할텐데 과연 연이의 원혼은 초옥의 몸에서 떠나갔을까? 초옥이 몸을 되찾았다면 양부인은 또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이고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릴수도 있음을 무릅쓰고 여우구슬을 소비하며 살려낸 것이 빙의된 연이가 아니라 초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구미호는 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한편 정규에게서 사랑을 확인하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빙의된 연이는 만신과 마주치게 된다. 곧 주인한테 돌려줘야 될 몸이니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만신의 말에 빙의된 연이는 만신에게서 아주 지독한 썩은 냄새가 난다며 앞으로 누구도 만신의 근처에 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만신을 좋아하지 않을거라고 대꾸한다. 양부인의 칼에 맞고 쓰러진 초옥을 구미호와 양부인은 서로 제 새끼라며 밀치고 초옥을 끌어안는데 이를 지켜보고만 있는 이 추악하기만한 만신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지난주에 만신은 구미호에게 일격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장면은 만신이 죽임을 당했다기보다는 스스로 자결을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구미호는 만신의 간을 찌르고 움켜쥐었는데 만신이 구미호의 손목을 잡아 방향을 바꿔서 찔러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설마 구미호가 장기의 위치도 모르고 찔렀을거라고 할 수는 없겠고 만신은 구미호의 일격을 간이 아닌 심장쪽으로 밀어넣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만신이 심장을 찌르게 했을거라는 추정은 심장을 찔러야 초옥의 몸에서 연이의 원혼이 빠져나갈거라는 설정과 관련이 있을거라는 생각에서 해보는 추정이다.

만신은 지난주까지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신은 대단히 심각한 정신착란증세를 보이고 있는데 그 사연은 지난주의 황망한 방송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졌기에 아무래도 생략해야겠다. 지난주 방송에서 만신은 왜 자결을 택했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만신이 득을 보게 되는 것은 잠시동안 윤두수의 추격을 피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짐작할만한 단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주에 돌아다니는 만신은 왠지 시체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상한 것은 만신은 사람의 간을 먹었다는 것인데 그것이 1회에 그쳤는지 상습적으로 그래왔는지는 모르겠다. 만신은 퇴마사의 사체를 끌고 가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퇴마사의 장기를 탐하는데 이 때가 만신이 최소한 두 번째로 사람의 장기를 먹는다는 것으로써 이렇게 웅크리고 앉아 주위를 살피는 만신의 모습은 섬뜩하기만 하다. 결국 만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끝까지 오리무중으로 남게 될 지도 모르겠고 드라마 '여우누이뎐'의 스토리도 명확하게 결론을 내고 끝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드라마 '여우누이뎐' 이번 주 방송에서 고무적이었던 것은 광고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드라마 시작전에 나오는 광고가 두 개에서 시작했고 그 후에도 네다섯개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드라마가 끝날 즈음이 되어서야 두자릿수로 늘었다. 그만큼 드라마 '여우누이뎐'의 시청률이 높아졌다는 방증일텐데 조금 늦기는 했으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광고는 드라마 대본의 우열에 따라서 결정되는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좋을거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광고의 목적은 다르기에 이것은 그냥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