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어부'(채널A 방영,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19일 방송분을 보면 마닷(마이크로닷)이 '이제 곧 반갑'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TV리포트' 조혜련 기자가 이를 '말실수'라고 기사를 썼는데 생소한 말이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반갑'은 사전에는 없는 말이긴 하나 외국에서 자라 한국어에 서툰 이의 꽤나 참신한 발상에서 나온 말이고 이를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기에 기록해 본다.
 
마닷이 '반갑'을 유추해낸 과정은 틀렸다. 그의 아버지가 종종 '이제 곧 환갑이다'라고 했던 모양인데 한국어에 서툰 마닷은 이를 '한 갑'이라고 들어 그렇게 인식하게 됐고 거기에서 '반갑'이란 말을 유추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마닷의 아버지는 필시 '환갑'이라고 했을 것이고, 마닷이 그의 아버지에게도 '반갑'이라고 말을 했을 것인데 애써 그 말의 오류를 설명하고 바로잡아주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 갑자(1 甲子)'는 갑자(甲子)에서부터 계해(癸亥)까지 60 년이다. 동방삭(東方朔)은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다고 하니 무려 18만 년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마닷의 발상은 틀렸으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30 세를 '반 갑'이라고 했다 해서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갑자(甲子) 년에 출생을 했다고 가정하면 60 년째 되는 해가 계해(癸亥) 년이 되고, 그 다음 해는 다시 태어난 해의 갑자와 동일한 갑자(甲子) 년이 돌아오게 되는데 이를 환갑(還甲)이라고 해서 성대하게 잔치를 열어 왔다. 환갑은 출생 후 61 년째 되는 해인데 이 환갑을 '한 갑'으로 알아 듣고 거기에서 또다시 '반 갑'을 유추해낸 것이니 이 부분에서는 틀린 것이 맞다.
 
환갑(還甲)은 회갑(回甲), 주갑(周甲), 갑년(甲年), 환력(還曆), 환갑(換甲), 화갑(華甲) 등으로 쓰여지기도 한다. 환력(還曆)은 주로 일본 쪽에서 쓰이는 것으로 보이고, 화갑(華甲)은 좀 더 미화해서 쓰는 말이나 60 년 사는 것이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시대인 오늘날에는 없어져야 될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환갑을 맞은 이에 대해 입에 발린 말로 쓰여지는 부분이 더 크기에 어쩌면 이 말만 남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간혹 환갑과 회갑이 다르다고 바락바락 우기는 자들을 보게 되는데 둘은 같은 말이다. 이런 자들의 상당 부분은 아마도 진갑(進甲)과 관련해서 잘못된 정보를 어디서 주워들은 데서부터 갖게 된 오류로 보인다. 진갑은 말 그대로 환갑을 지낸 다음 해 즉 갑자(甲子) 년에서 더 나아간((進) 해인 을축(乙丑) 년을 진갑이라고 한다. 출생 후 62 년째 되는 해이다.
 
'반갑' 참신한 발상, 신조어의 좋은 예
 
'반갑'은 한국어에 서툰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긴 하나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 발상이 꽤나 참신하다. 요즘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저급한 신조어들에 비하면 '반갑'은 신조어의 매우 좋은 예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요즘 딴따라나 딴따란서(딴따라가 된 아나운서 따위들) 나부랭이들이 무차별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대중들 사이에서도 무분별하게 쓰이는 '멘붕', '츤데레' 등등은 참 가관이다. 딴따라들이야 애초부터 기대할 게 없지만 딴따란서들은 아나운서 이력은 그만 팔았으면 한다. 딴따라와 딴따란서 따위들을 필두로 한국 방송은 시나브로 저급한 일본어에 잠식돼가고 있다.
 
마닷의 말실수는 '반갑'이 아니다
 
실은 마닷의 말실수는 '반갑'이 아니라 그 뒤의 '형님'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말실수는 그 이전 장면에 나오는 '인생에 쉬운 게 뭐 있습니까'다. 이 말은 모두 마닷이 이덕화에게 한 말인데 인생 운운한 부분은 말실수라기보다는 망발이라고 하는 게 맞다.
 
언제부턴가 딴따라와 딴따란서를 중심으로 소나 개나 다 '형님'이고 '아버님'이라 칭한다. 조카뻘 혹은 손주뻘 되는 아이가 '형님'이라 칭하는 게 더 모욕적이지 않나?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 사람한테 '아버님', '어머님'이라 칭하는 딴따라나 딴따란서들을 보면 기함할 지경이다.
 
마닷의 아버지가 아직 환갑 전이라면 그가 이덕화에게 '형님'이라 칭하는 것도 껄끄럽다. 이것은 몹시 본데없는 짓이다. 거의 할아버지뻘인 사람한테 '형님'이라니, 더 나아가 인생 운운하는 장면은 당최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한국어에 서툴다는 면죄부는 지극히 한시적이다. '헛소리 하지 마십쇼, 형님' 같은 부류의 말은 조속히 개선해야 할 거다.
 

 
이덕화는 미혹되지 않는 나이 마흔(四十而不惑),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는 나이 쉰(五十而知天命),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는 나이 예순(六十而耳順)을 넘어서 이제 곧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 일흔(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이 된다.
 
아직 뜻이 확고하게 서는 나이 설흔(三十而立)도 되지 않은 마닷이 이덕화에게 인생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아주 가소롭고 가당찮은 헛소리이고 망발이다. 한국에서 성장을 했다면 필시 본데없이 자랐다고 욕 먹고 손가락질 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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