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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이 '일박'을 극복할 수 없는 두가지

   
   
   
휴일 저녁 MBC 예능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코너로 물갈이해오고 있다. 하지만 내놓는 코너들마다 별다른 특성도 없고 참신함도 없고 프로그램의 취지나 의도가 무언지조차도 불분명한 코너를 이름만 바꿔서 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MBC 예능국 사람들의 사고는 '자판기식 사고'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판에 박힌 듯 딱딱하게 굳어 있다. 100원짜리 커피가 나오는 자판기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딱 100원어치 커피가 바로바로 나와야 안심이 되고 모자라거나 안 나오면 그 원인이나 이유를 분석해서 대책을 세우려하기보다는 자판기를 발로 걷어차 다른 자판기로 교체를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그게 내가 말하는 '자판기식 사고'다.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던 '오빠밴드'를 폐지해 버리고 그나마 의미와 가치가 큰 프로그램이었던 '단비'는 과도한 욕심이 반영된 기획과 편집이 화근이 되어 별로 주목 받지 못하고 퇴장시켜 버렸는데 이 모두는 '자판기식 사고'를 하는 프로그램 제작 관련자들의 조급증 때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물론 내부적인 사정이야 있겠지만 현재 '일밤'의 가장 큰 문제는 제작진들의 조급증이다.

'일밤'의 코너 중에서 시청하지 않은 '뜨거운 형제(뜨형)'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오늘을 즐겨라(오즐)'가 '1박2일'을 넘어서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보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가장 특징적인 것 두가지를 언급해 보자면 프로그램 외적으로는 광고 타임이 끼었다는 것을 들 수 있고 프로그램 내적으로는 제작진들의 빈약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1박2일'의 경우는 합창단으로 상당한 공감대를 넓힌 KBS의 '남자의 자격'이 끌어주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고정 시청자층이 다양하고 단단해서 파고 들어서 시청자를 끌어오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 그 외에도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오즐'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광고가 있다. 광고를 하는 그 정도 시간이면 경쟁프로그램인 '1박2일'에 몰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오즐' 앞의 '뜨형'이 끌어준 시청자들마저 경쟁프로그램에 내주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어차피 수익창출이 우선인 방송사가 일단 현찰부터 챙기고 보자는 데야 할 말이 없지만 그 시간에 광고를 봐주면서 다음 프로그램을 기다려주는 시청자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시간에 광고는 너무 근시안적인 결정인 것 같다.



또한 '오즐'의 경우는 프로그램의 취지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아이디어가 빈약하고 졸속적으로 기획하고 촬영하는 티가 너무나도 역력하다. 아이디어가 빈약하면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시청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시청자들 중 다수가 'NO'라고 하는 것들만 모두 하지 않아도 반은 성공이다. 그런데 별다른 아이디어도 없으면서 계속 내 갈 길을 가련다 식만 고집하는 것은 '똥고집'일 뿐이다. '오즐' 제작진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빈약한가는 프로그램에 나온 장면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위의 두 이미지가 그것인데 도대체 무슨 연관성을 부여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게 하는 장면이었다.

생산자와 판매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고객의 니즈(needs)를 파악하는 것인데 아무리 공중파 방송이라고는 하나 프로그램의 생산자가 시청자들의 니즈를 외면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먼저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성향을 파악하고 그러한 성향의 변화를 주시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그에 따른 적절한 아이디어도 나오는 것일텐데 '오즐'의 경우는 시청자들의 성향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정도의 방식으로는 '1박2일'이 아니라 다른 어떤 프로그램과 경쟁하더라도 우위에 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을 즐겨라 - 마라톤을 즐겨라'는 마라톤 하프코스를 이봉주는 혼자서 완주하고 '오즐'팀은 아이돌을 더 추가해 42 명으로 구성해서 각자 500 미터씩 완주하는 1 : 42의 마라톤 대결이었다. 그러한 발상 자체가 참 한심하지만 어쨌든 은퇴했다고는 하더라도 마라톤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봉주 선수이기에 시합은 가능하다. 이봉주 선수 정도 되면 들쭉날쭉한 '오즐'팀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예상한 시간내에 완주할 능력이 있을 테니까 가혹한 대결이라고까지 할 수만은 없겠다.

그런데 그 진행과정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경찰서의 협조로 안전하게 경기를 진행했다고는 하는데 경기가 진행되는 도로에는 차들이 붐볐고 골목에서 툭툭 튀어나오기도 하는 등 불안하게 보이는 장면들도 많았다. 그리고 하프코스를 뛰는 선수에게 물컵으로 물을 전달한다는 한심한 발상은 도대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왔는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것도 한 번은 컵을 떨어뜨려 마시지도 못했고 겨우 한 컵을 받아서 마시고 하프코스를 뛰게 했다. 물론 편집된 화면도 있을테니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겠으나 이 정도면 완전히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돌을 대거 참여시키는 물량공세로 밀어붙이다 보니 예산이 달려서 이봉주 선수에게 선수시절 마시던 음료는 고사하고 마시고 얼굴에라도 끼얹을 수 있는 물병 하나 준비해 줄 만한 예산도 없었나?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을 하려면 책상머리에 앉아서 대충 기획하고 졸속적이더라도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발상은 버리고 마라톤 하프코스를 뛰어보는게 먼저다. 매회마다 이렇게 사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땜질식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시청률이 잘 나오기만을 기대한다는 건 도둑놈 심보나 마찬가지다.

경기가 끝나도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모두 무안하기만 한 이런 어이 없는 프로그램은 대체 왜 제작했는지 이봉주 선수의 근황이 궁금해서 시청했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다. 제작진들도 무안했던지 방송 말미에 승패의 구분이 무의미한 순간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차후 방송에서는 필히 '오즐'팀의 첫 승이었다고 기회만 되면 이 어이없었던 방송을 두고두고 우려먹으려고 할 것이다. 이런 어이 없고 졸속적인 방송을 이어간다면 앞으로 누가 프로그램에 나와서 망가지려고 할 지 의문이다.

다음 주 방송 예고는 다시 17세 이하 여자 축구팀과의 대결을 한다고 하는데 여자 축구팀과 경기를 했던 방송에 대한 반응이 좋았었던 모양이다. '두 번의 도전 두 번의 패배 도전은 삼세번'이라서 또 다시 여자 축구팀과의 방송을 추진했다는데 갖다 붙이기는 참 잘도 갖다 붙인다. 도전이 삼세번이라서 '초특급 용병 2PM' 멤버들을 끌어들인 것인가? 축구를 즐기라더니 이젠 어린 여자 선수들을 이겨보겠다고 죽기 살기로 대드는 꼴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아무리 대표팀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어린 여자 선수들이고 전에 서지석이 골키퍼 강가에와 충돌해서 강가에가 부상당할 수도 있는 아찔한 장면도 나왔듯이 충돌하면 어린 여자 선수들이 부상당할 위험이 더 높다. 축구가 전부인 어린 여자 선수들이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 극단적인 상황이 생길수도 있는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도 궁금하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게스트를 희생하려 하지 말고 프로그램을 통해 게스트를 빛나게 해주겠다는 발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무리수는 계속될 것이고 그러다가 얼마 안 가 슬그머니 새로운 코너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마라톤이 감동적인 건 단순히 긴 거리를 완주했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이면에 숨겨진 땀과 노력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오즐'도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뭔가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고 그 스토리가 바로 멋이고 풍류이며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길이기도 하다.

'오늘을 즐겨라 - 마라톤을 즐겨라' 팀이 즐긴 건 '마라톤'이 아니라 '500 미터 달리기'였을 뿐이다. 이젠 김영희 PD는 그만 2선으로 은퇴하는 게 나을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