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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 초심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남자의 자격 - 남자 그리고 초심' 편은 초심이란 심오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미션으로 내세웠다. 초심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루기에는 좀 어렵고 벅찬 주제인 것 같은데 초심이란 용어의 정의를 내리는 것 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나 소화해낼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남자의 자격'은 초심에 대한 정의나 결론을 내리지 않았고 각각 다른 방법으로 나름대로의 초심을 찾아간다는 정도의 설정으로 근본적인 문제는 피해갔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시청자들도 초심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프로그램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정진은 드라마 촬영에 시간을 빼앗겨서인지 인터뷰 게임이라는 쉬운 방법을 선택했는데 초심찾기라기보다는 인터뷰이(interviewee)들로부터 훈육을 받았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김태원은 부활 초창기 멤버들과 함께 연주를 하면서 부활을 시작을 느껴본다는 것이었는데 김태원 본인 입으로 직접 말했듯이 수월한 미션이었던 것 같다. 배우로 돌아가 독립영화 촬영을 했던 김성민은 굳이 초심찾기가 필요없는 멤버라고 할 수 있다. 남자의 자격 초기부터 매 미션마다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아직도 처음 방송에서의 열성 그대로이고 이번 미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경규를 비롯한 네 명의 코미디언들의 경우는 좀 복잡미묘한데 이경규의 말대로 그들에게 초심찾기가 슬픈 아이템이 되버렸기 때문이다. 네 명은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패러디한 '특수분장실의 이선생'이란 아이템으로 독한 분장을 하고 직접 개그콘서트 무대에 섰다. 개그콘서트를 무사히 마치고 후배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박수를 받으며 돌아온 이경규와 이윤석 그리고 김국진은 서로가 말이 없었다. 관객의 환호를 뒤로 하고 퇴장한 후에 느낀다는 공허함 외에도 그들은 아마도 잊고 있었던 초심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개그콘서트 무대를 마치고 나왔을 때 줄을 서서 박수치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니 옛날의 내가 한 30 명 서 있는 것 같았다'는 이경규의 말이 바로 그의 초심이 아닐까 싶다. 너무 하기 싫었던 독한 분장이었는데 공연을 끝내고 나니까 벗기가 싫어진건 웃겨야 사는 코미디언이란 초심을 찾았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무대 위에 서서 우스꽝스럽게 분장하고 관객들을 웃기던 선배 코미디언을 떠올리며 애처로움과 슬픔을 생각했던건 코미디언으로서의 초심과 운명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들에게 초심찾기는 애달프고 슬픈 아이템이 되었다.

사실 초심이란 간단치 않은 개념이라 나같은 범배(凡輩)가 언급하는 것은 좀 주제넘은 일이다. 그래도 이 기회를 빌어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초심이란 부정적인 경우에 인용하는 말은 아니다. 가령 매너리즘에 빠졌던 도둑이 남자의 자격을 시청한 후 처음 도둑질을 하던 때의 초심을 찾자고 각오를 다진다면 웃기는 일이다. 인터넷상의 도둑이라 할 수 있는 남의 글을 함부로 퍼가는 자들에게 초심이란 남의 글을 도둑질해가는 그 사악한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도둑이 도둑질할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은 초심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고약한 '심보'라고 해야 한다.



초심을 되돌아봐야 할 때는 무언가 익숙해져서 자만하고 방심하게 되었을 때이고 이 때가 사실은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운전을 시작한 사람이 대형사고를 내는 때가 언제인가하면 바로 운전에 익숙해지고 운전실력을 자만하고 방심했을 때이다. 운전에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붙기 시작할 때 필요한 것은 운전실력을 자랑하고 뽐내는 자만심이 아니라 운전을 처음 시작하던 때의 조심스럽고 겸손했던 마음 즉 초심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초심이란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남자의 자격에서 초심찾기가 슬픈 아이템이 되었던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서 초심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온고이지신가이위사의)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를 개인에 국한해서 해석하자면 과거의 자기자신을 잘 알고 이해해야만 미래의 자신도 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과거로 회귀해서 과거의 그 마음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을 초심이라 할 수는 없으므로 옛 것과 새 것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온고지신이 오히려 초심찾기에 더 가까운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며 살아오느라 잊어버린 가장 어려웠던 시절의 뜨거운 열정을 되돌아보는 것이 결국은 초심찾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기에 초심찾기는 과거의 그 마음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어렵고 힘들 때 다시 다잡을 수 있는 원동력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초심을 찾는 이유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일텐데 과거의 자기자신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전제한다면 초심이란 곧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찾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초심찾기는 단순히 과거를 되돌아보자는 과거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미래지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