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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 세경과 임기사 불편하나 현실

'지붕뚫고 하이킥' 14일 방송분에서 세경에게 프로포즈하는 임기사의 '꼬락서니'는 시청자들에게 꽤나 불편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나. 불편하지만 그것은 한국 역사 속에 존재하는 아픈 진실이었고 그 때의 상처가 고스란히 현실로 전해져 여전히 안타까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다. 불편하다고 외면하고 애써 숨기려한다고 과거의 사실이 사라지거나 감추어지지는 않는다.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은 망가지고 있는게 아니다. 단지 세경의 시대를 좀 더 멀리 거슬러 놓았을 뿐이다. 이 시트콤 작가, 어떻게 이런 시트콤을 제작할 생각을 다 했을까? 이 시트콤은 그저 한순간 가볍게 웃고 즐기자는 그런 코메디가 아니다.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은 현대판 해학이고 풍자다. 우리의 조상들은 켜켜이 쌓인 한을 삭이며 웃음과 해학으로 풀어내 시대를 풍자했다. 그런 우리 조상의 피가 이 시트콤 작가에게 고스란히 이어져 조상들이 그의 피를 흔들어 깨우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역사에서 식모살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20년대를 전후한 시기였다. 노비해방이 이루어지고 봉건적 신분질서가 해체된 시기에 오히려 노예나 다름없는 식모살이가 등장했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늘어난 고아와 미망인들로 식모살이는 더욱 일반화되었다.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한 15세 전후의 어린아이들이 취업할 곳은 없었고 그런 그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밥벌이'가 바로 식모살이였던 셈이다.

식모살이, 말이 좋아 식모살이지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노동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니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작한 노동은 밤에 잠자리에 들어야 끝이 났지만 거의 무보수나 마찬가지의 고된 생활이었다. 당시엔 제도가 정비되지 않기도 했지만 까막눈인 어린 식모들이 현대적 의미의 고용을 알 턱이 없었고 그저 먹고 살 수 있다는 한가지만으로 무작정 시작해야 했던게 식모살이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순이'라 불리던 공장에 취직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게 되므로 식모살이하는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공장에 취직하려면 중학교 졸업장이 필요했고 신체검사나 시험을 통해 가려냈다. 그래서 중졸 학력도 안되는 여성들은 누군가의 졸업장을 위조해서 취직을 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못하면 여전히 식모살이를 해야 했고 봉제공장이나 가발공장에 들어가서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당해야 했었다.

식모살이하는 어린 식모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는 운좋게 주인집을 잘 만난 극히 일부의 경우였을 뿐이고 대개는 주인집과 인간관계의 불화로 견디기 어려워 자발적으로 그 집에서 나오든가 쫓겨나든가 해야 했다. 뭐라도 없어지면 늘 식모가 의심을 받았고 도둑이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나기도 했다. 주인집 아저씨의 상습적인 성폭행에 시달리다가 아주머니에게 들통나면 역시 억울한 누명을 씌워 내쫓았다. 주인집 아들의 꼬임에 빠져 그를 사랑하게 되기도 하지만 농락당하고 내쫓길 뿐이었다. 이렇게 내쫓긴 어린 식모들이 갈 곳이라고는 성매매 업소밖에는 없었다.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식모살이를 시키면서 주인집은 짝을 찾아 결혼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나마 건실한 청년인 경우는 그래도 나았지만 나이 많은 노인네의 재취자리로 보내기도 했다. 이게 정상적인 방법이었을리는 없었고 현대판 인신매매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어린 식모에게 마치 크나큰 은덕이라도 베푸는듯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그래도 아껴주고 잘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마는 단물 다 빼먹고 나면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쫓아내는 경우도 많았다.



12월 3일자 노컷뉴스에 수십년만에 호적 찾은 노숙인 이야기가 기사화됐다. 기사에 나오는 지 모 여인은 어렸을 때 남의 집 앞에 버려진 고아로서 식모살이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했지만 글도 모르는 까막눈이 됐다. 지 모 여인이 기억하고 있는 건 오직 이름 석 자뿐이고 생년월일조차도 잊어버렸다. 20대 중반에 식모살이하던 집에서 도망쳐 나와 주방일을 하지만 가는 곳마다 사장으로부터 폭행과 욕설에 시달리다가 결국 노숙생활을 선택해야 했다. 여성이었던 지 모씨는 행여나 자는 사이 성폭행을 당할까봐 밤새도록 야시장만을 골라 떠돌아다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런 지씨에게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가 호적 찾아주기를 하고 있는데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하므로 빠르면 6개월 후에 결정된다고 한다. 당 센터에 따르면 호적이 없는 노숙인은 해마다 3~4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제 겨우 사십대 중반의 나이인 지 모 여인은 그동안 호적이 없어 받지 못했던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들은 지 모 여인의 말이 가슴 아프게 한다.

"나에게도 호적이 생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너무 기쁘다."


(임채홍, 미니홈피 캡쳐 사진)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임기사는 이에 비하면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제 결혼한 임기사의 야비한 설정이 등장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임기사를 불편해하기엔 아직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고 불편하지만 그것이 식모살이하는 어린아이가 감당해 내야 했던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