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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드라마, 막장이거나 삼류이거나




독주 체제를 유지하던 SBS 수목드라마 '싸인'이 종영하고 후속 드라마 '49일'이 제작발표회를 가졌다. 이로써 지상파 방송 3사의 수목드라마는 한 주 먼저 시작한 KBS '가시나무새'와 MBC '로열패밀리' 그리고 새로 가세하게 될 SBS의 새 수목극 '49일'이 본격적인 시청률 경쟁을 시작하게 됐다. KBS '가시나무새'와 MBC '로열패밀리'가 SBS '49일'보다 한 주 먼저 시작했다고는 하나 시청률이 아직은 두 자릿수를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SBS '49일'이 뚜껑을 열어 봐야 알겠지만 '싸인'의 독주체제를 '49일'이 넘겨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KBS '가시나무새'와 MBC '로열패밀리'는 출생의 비밀이나 재벌 같은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풀어가는 스토리여서 시작부터 막장스러운 요소로 자극 요법을 사용하고 있다. 두 드라마 모두 눈여겨 볼 만한 드라마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두 드라마의 대결에서는 '로열패밀리'가 우세를 보이지 않겠나 생각된다. 출생의 비밀이 있는 주인공들만 등장하는 밋밋한 사랑이야기인 '가시나무새'보다는 양공주라는 비밀을 간직한 한 여인이 재벌가에 입성해 총수의 자리에까지 오른다는 일종의 신데렐라적인 판타지 요소가 들어 있는 '로열패밀리'가 시청자들을 자극해 눈길을 끌기엔 더 유리해 보인다.

웰메이드 감성드라마의 부활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높였던 KBS 드라마 '가시나무새'가 뚜껑을 열었지만 웰메이드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조차 쑥스러울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의 드라마다. 키스 신이나 침대 신 같은 자극적인 장면으로 깜짝 이슈를 만들어낼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 외에는 정말 볼 게 아무것도 없고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드라마 '가시나무새'는 전체적인 배경이 되는 막장 설정의 문제보다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의 문제가 더 커보인다. 초반의 자극적이고 뻔한 설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후에 등장하는 설정과 대사들도 하나같이 뻔하고 진부하며 유치하기까지 해서 채널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런 드라마에도 투자하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가시나무새'는 삼류 막장 드라마인 것으로 보인다. 키스 신 같은 자극적인 장면으로 깜짝 이슈를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을 흡인시킬 만한 수준은 못 되는 것 같다.



MBC '로열패밀리'는 일단 소재부터가 거부감을 준다. '대한민국 상위 0.01% 로열패밀리'. 상위 1%의 귀족들 스토리라고만 해도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한데 상위 0.01%에 속하는 귀족들의 숨겨진 진실이 베일을 벗는다니 참 허황된 얘기로 보인다. 대한민국 상위 0.01% 로열패밀리들에게 진실이라는 게 있기는 있을지 설사 있다고 해도 그 진실을 밝혀낸다는 건 망상에 가까워 보인다.

'가시나무새'의 뻔한 유치함이 식상해 채널을 돌려 '로열패밀리'를 잠시 시청했지만 이 드라마도 별 것이 없고 식상하고 진부한 그런 수준의 설정과 내용인 것 같다. 김인숙(염정아)은 JK그룹의 둘째 아들과의 사랑만으로 결혼해 재벌가에 들어왔으나 시어머니인 공순호(김영애) JK그룹 회장을 비롯한 그룹 내 사람들은 집안, 학벌, 능력 어느 것 하나 변변치 않은 김인숙을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며 비인격적인 대우를 한다.

김인숙의 남편은 결혼 후 공순호의 압력을 피해 한국을 떠나려다가 죽어버렸고 아들이 있다. 공순호는 돈을 주면서 김인숙을 내치려 하지만 김인숙은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마치 그림자처럼 18년간을 살아왔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재벌가 총수에 오른다는 대략 그런 내용인 것 같다.

JK그룹 회장인 공순호는 대권 유력 후보와 인연을 만들려고 하나 여의치 않다. 그러자 유력한 대권후보의 아내인 진숙향(오미희)과 절친한 사이인 김인숙은 친분을 이용해 진숙향과 만나 자기의 비밀들을 털어놓으며  JK그룹과의 인연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김인숙은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데 가장 큰 비밀은 양공주였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을 계기로 공순호는 김인숙의 금치산 선고를 취소하고 아들에 대한 친권 회복을 약속한다. 그렇게 서서히 김인숙이 일어서게 된다는 것 같다.



정통 서사 드라마라고 하는 '로열패밀리'는 일본 소설 '인간의 증명'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원작 소설을 2년여 간에 걸쳐 한국의 정서에 맞게 대폭 개작해낸 드라마라고 한다. 상위 0.01%에 속하는 귀족들이 등장해야 한국의 정서에 맞는 것이고 정통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모양이다. 하긴 재벌이나 출생의 비밀, 불륜 등이 빠지면 한국 드라마가 아닌 게 현실이다.

현재 방송중인 드라마도 재벌이나 귀족이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를 세는게 더 빠를 것 같을 정도로 한국은 드라마도 재벌이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재밌는건 재작년인가 KBS가 '재벌 2세'라는 노래에 대해서는 방송 부적합 판정을 내렸던 적이 있다는 거다. 드라마는 재벌 천지인데 노래는 안 된다. 한국 드라마의 사정이 이러하니 원작 소설의 주인공을 재벌로 바꾸고 한국의 정서에 맞게 개작했다고 한들 무슨 이의를 달 수는 없을 거다. 대한민국 상위 0.01%의 귀족들의 사고를 가지고 인간을 증명하겠다니 일단은 그 발상 하나는 놀랍다고 해야겠다.

수목드라마는 현재 막장이거나 삼류이거나 대략 그런 정도라고 할 수 있어서 채널을 고정하고 싶은 드라마는 없어 보인다. 새로 시작하는 SBS 수목 드라마 '49일'은 또 어떤 내용과 수준의 드라마인지는 몰라도 이젠 마지막으로 SBS 드라마 '49일'에 기대를 걸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