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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새' 비정상적 군상들뿐인데 15세 시청가?




KBS 2TV 수목드라마 '가시나무새'에 정상적인 인간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인 서정은(한혜진)과 이영조(주상욱) 그리고 한유경(김민정) 셋 모두 아비 어미가 죽었거나 누구인지 모르거나 알더라도 어미로부터 버림받고 성장했다. 주요 인물 중에 최강우(서도영)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없으나 어미가 없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비정상적인 가정환경에 대한 아픔을 갖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짐작된다.

이러한 주요 등장인물들 외의 주변인물들도 하나같이 상식 밖의 천박한 언행을 일삼는 비정상적인 군상들뿐이다. 이처럼 죄 비정상적인 군상들만 등장시키는 것도 모자라 아동 성폭행을 암시하는 듯한 아동 폭행 장면을 묘사한다든가 어미가 젊은 남자를 탐닉하고 있는 호스트바에 성장했다고는 하나 아들 둘이 들어오는 등의 낯뜨거운 장면도 등장한다. 이런 드라마가 어떻게 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15세 이상 시청가 판정을 받을 수 있었는지 대략 난감하다.

서정은은 보육원에서 성장하는데 어미를 찾기 위해 가족찾기 프로그램에 신청을 한다. 그리고 한유경과 함께 몰래 보육원 서류를 뒤져보지만 관련서류는 없고 보육원 원장은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다. 서정은은 가족찾기를 도와주는 경찰서로 가서 확인하지만 서정은의 어미가 서정은을 찾으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경찰서 복도에 앉아 통곡한다.

한유경은 서정은과 둘도 없는 단짝친구였다. 그런데 서정은이 약속장소에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폭행을 당하다가 뒤늦게 나타난 서정은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서정은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서다가 한유경은 어미의 전화통화를 듣게 된다. 어미인줄로만 알았던 여인은 어미가 아니었고 사실은 친어미로부터 돈을 받고 대신 키워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유경을 키워준 어미는 남편이 딴살림을 차리고 한유경의 친어미로부터 받은 돈을 탕진해버려서 살아가기 어려우니 한유경에게 그만 친어미한테로 가라고 한다.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깬 키워준 어미는 옆에서 한유경이 꼭 껴안고 놓지 않자 한유경의 친어미를 찾아가지만 결국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돈을 받고 돌아와 한유경과 계속 살아가게 된다.

이영조는 어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성장해 왔으나 유명 여배우인 윤명자(차화연)과 함께 집으로 왔던 윤명자의 옛 매니저 최종달(박지일)에게서 친어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영조는 윤명자를 찾아가 친어미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이영조의 친어미 김계순(송옥숙)은 박한수(최재원)라는 자식이 있으나 돈 많은 유부남인 이영조의 아비와 살림을 차리고 이영조를 낳는다. 이영조의 아비가 죽자 김계순은 한 재산을 받아내는 댓가로 죽은 이영조 아비의 본처에게 이영조를 들여보낸다.

이처럼 주인공 셋 모두가 갖고 있는 아픈 상처는 아비 어미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을 가진 주인공들이 성장한 후 우연히 만나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아픈 상처를 반복하게 된다는 그저 그런 진부한 내용의 드라마다.

서정은은 단역에서부터 시작해 영화계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이영조와의 사랑도 키워간다. 하지만 한유경이 이영조를 유혹해 낳은 아이를 서정은에게 주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은 서정은은 부득이하게 영화계를 떠나 공백기를 갖게 된다. 그런데 서정은은 한유경이 파투를 놓는 바람에 이영조와의 사랑이 깨졌다는 것을 알고는 한유경에게 되갚아주려고 그 아이를 한유경의 친어미인 윤명자에게 준다. 그리고는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스타가 되고 그러는 와중에 서로 화해하게 된다는 대략 그런 내용인 것 같다.



서정은은 남의 일에 나서기 좋아하는 오지랖 넓고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돈키호테적 성격에 대책없이 착하기만 한 전형적인 선으로서 꽤나 진부한 캐릭터다. 한유경은 어릴 때부터 서정은과 둘도 없는 친구사이였고 서정은의 처지를 같이 아파할 줄 아는 이해심과 배려심이 넓은 아이였다. 그랬던 한유경이 10여년만에 만난 서정은을 모르는 체하는 것은 몰라도 1차 오디션에 합격한 서정은의 지원서를 몰래 파쇄해 버린다든가 서정은이 좋아하는 이영조를 유혹하는 등 서정은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하는 악의 캐릭터로 갑자기 변신해버린 것은 공감가지 않는 스토리 전개라고 생각된다.

한유경이 폭행 당하고 병원에 갔다는 소식이 학교에도 퍼지고 한유경은 서정은이 친구들과 그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한유경은 전학을 결심하고 서정은에게 다시는 아는 체하지 말라고 오해라며 매달리는 서정은의 손을 뿌리친다. 서정은과 한유경의 그동안의 관계를 보면 서정은이 학교에 소문을 냈다고 확신해서 한유경이 서정은에게 이런 모진 말을 했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한유경은 아비 어미가 누군지도 모르며 보육원에서 사는 서정은을 동정해 왔었다. 그런데 자신도 친어미로부터 버림받고 다른 사람을 친어미로 알고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자기가 동정해왔던 서정은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켜버렸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을 견디기 힘들다. 세상에 유일하게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서정은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한유경이 서정은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 두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서정은에 대한 오해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서정은을 보면 아픈 상처를 떠올리게 될까봐 싫은 이유가 더 크다. 설혹 이 두가지 이유라고 하더라도 한유경이 10년 후에 만난 서정은에게 하는 행동들은 지나치고 그 행동들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드라마 홈페이지에 '가시나무새'에 대한 얘기와 콜린 맥컬로우가 쓴 '가시나무새' 중에서 한 구절을 인용해 놓고 있다. 아일랜드의 전설 속에 나오는 '가시나무새'는 평생 가시나무를 찾아 헤매다 날카로운 가시나무의 가시에 목을 찌르고 애절한 울음을 울며 죽는데 가시나무새가 일생에 단 한번 내는 그 처절한 울음소리가 절묘하게도 아름답게 들린다고 한다.

작가의 상상은 대략 여기에 바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시나무새와 찔려 죽는 가시는 매번 같은 가시나무새 가시가 아니다. 시대에 따라 인간들의 아픔과 아파하는 방식이 다르듯이 그것을 묘사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드라마 '가시나무새'가 대략 6,70년대에나 통할 법한 아픔과 설정을 현대에 끌어들여서 그것도 모두 비정상인들로만 전면에 등장시키는 이런 진부한 발상으로는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들여다보면 아픈 과거사 하나 없는 사람이 있겠나마는 비정상적인 캐릭터들을 내세워 작가가 말하는 '별처럼 빛나는 사랑'을 그려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첨(添) ; 2011. 3. 5. 17:05

'비정상적'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단어 선택이었습니다.

부모가 구존해 있으면 정상적
그렇지 않으면 비정상적

이러한 구분법으로 사용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이 부분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로 의견 올려주신 분 감사드립니다.

혹시 첨부글을 올리기 전에 이 글을 읽고
해당 단어에서 제가 선택한 의도와 다른 의미로 오해해서
속 상하셨던 분이 계시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