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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우려먹기는 MBC의 만행




MBC '놀러와'가 지난해 추석 특집으로 '세시봉과 친구들'을 방송한 후부터 '세시봉'이 주목을 끌기 시작했는데 이는 센세이셔널한 열풍으로 이어져 지속되어 오고 있다. MBC '놀러와'가 이번 설 특집 방송으로 '세시봉 콘서트'를 이틀간이나 편성 방송했으나 '세시봉'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그러자 MBC는 일요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일밤'을 결방하고 대신 '스페셜 세시봉 콘서트'를 180분간이나 방송했다.

방송에서 '스페셜'이란 단어를 붙이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주로 편집된 재방송일 경우에 붙인다. 마찬가지로 '스페셜 세시봉 콘서트' 역시 지난 설 연휴에 방송되었던 내용을 재편집해서 내보낸 것이다. MBC에 의하면 '놀러와'를 통해 방송됐던 '세시봉 콘서트'의 뒷이야기와 미방송분이 공개된다고 하나 180분간이나 방송하려면 상당부분은 편집된 재방송으로 채워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MBC가 기존의 프로그램인 '일밤'을 결방하면서 내보내는 '스페셜 세시봉 콘서트'가 방송되는 시간대는 지상파 3사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치열하게 시청률 경쟁을 벌이는 시간대다. 이러한 황금 시간대에 MBC가 '스페셜 세시봉 콘서트'를 방송하는 것은 만행에 가깝다. MBC가 제작한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냐고 할 지도 모르나 '스페셜 세시봉 콘서트'의 MC가 동시간대 시청률 경쟁 프로그램 중에 하나인 SBS '런닝맨'의 MC와 겹친다.

그나마도 '일밤'을 시청해오던 시청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서둘러 끝내면서까지 MBC가 이런 무리수를 선택한 것은 기본적인 상도의마저도 무시한 처사다. MBC는 '스페셜 세시봉 콘서트'를 ’ 방송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방송 이후 열화와 같이 일어났던 세시봉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우리 모두가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것'이라며 '부모들과 자식들이 서로 대화를 하며 볼 수 있는 방송이었다는 시청자 의견에 무게중심을 두어 일요일 오후 황금 가족 시간대에 편성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참으로 군색스럽고 옹졸한 변명이다.


(MBC '놀러와' 방송 화면 캡쳐)

차라리 솔직하게 3월 6일 새 코너들로 개편해서 방송 예정인 '일밤'의 공백을 메우고 이슈를 만들어 홍보까지 겸하기 위해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고 말했다면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최소한 그들 스스로가 자괴감을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시봉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우리 모두가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의 방송이었다면 기 제작된 방송을 우려먹을 게 아니라 새로운 콘서트를 기획하고 방송을 제작했어야 했다.

그래도 방송의 포맷은 좀 다르게 가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그것은 괜한 기대였고 나는 차라리 경쟁 프로그램 중에서도 평소에 잘 보지 않는 SBS '런닝맨'으로 채널을 돌려버렸다. 자사의 이득에만 눈 멀어 자존심을 내팽개친채 타방송을 베껴내고 상도의를 무시하며 지상파를 자사의 소유물인양 행세하는 MBC의 오만함은 도가 지나치다. 드라마국, 예능국, 보도국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잘 정비된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유기적으로 오직 돈만을 향해 가는 지금의 MBC는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다.

'세시봉'이란 음악 감상실을 만들어 가수들에게 노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던 이유는 "휴전 후 암울했던 시절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마련된 음악의 장소인 '세시봉'에서 청춘들은 골방에 가서 밥 얻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고 열정을 불태웠다.

MBC '놀러와'가 '세시봉'을 다시 주목받게 만든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일밤'이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상도의마저 무시한 채 '놀러와' 방송을 재탕해 우려먹기한 MBC의 결정은 앞서의 의미를 상당부분 퇴색시켜버릴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세시봉'의 이미지가 소비된다면 '세시봉'에 대한 관심은 금새 시들고 '세시봉'을 통해 세대간에 형성되었던 공감대가 줄어들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MBC의 이번 무리수는 자본주의의 다양성 중에 하나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천박해 보인다. MBC가 과연 공영방송이자 문화방송이긴 한건지 회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