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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프린세스' 반전은 없고 건망증만 있다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는 지난주에 이설의 아버지 이한 황세손을 죽인 사람이 박해영의 아버지 박태준인가에 대한 얘기로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드라마 전체적으로도 이한 황세손의 죽음에 박태준이 어떻게 관여되어 있는지와 관련한 스토리는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이번주에는 드디어 이설이 모든 기억을 회복하고 이한 황세손이 사망한 비밀의 뚜껑이 열렸는데 그다지 대단한 비밀은 없었다. 말하자면 드라마에 반전은 없었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스토리를 전개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생뚱스러운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가에게 건망증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토리의 얼개는 꽤나 엉성하고 조악해 보인다. 혹시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될 정도로 시종일관 갈팡질팡하고 있는 스토리 전개는 이젠 갑갑하게 느껴질 정도까지 되었다.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 김태희가 연기력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작품이 될 거라는 애초의 기대는 이미 사라져버렸고 아마도 김태희가 망가졌던 것만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 김태희에게 연기는 별로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김태희가 계속 연기를 할 요량이라면 연기력은 물론이고 먼저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태희가 이설 공주 역할을 제대로 소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 스토리의 전개가 갑갑하다면 연기자의 인기도나 연기력만으로 시청자를 붙잡아 두기에는 역부족이다. 김태희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시청하게 된 드라마였기에 끈기를 갖고 시청했지만 그다지 인상 깊은 드라마는 아니었다. 그래도 단 2회 분량만이 남아 있으니 끝까지 보기는 할 것이다.

각설하고, 이설이 기억해 낸 이한 황세손의 죽음에 박태준이 어떤 관여를 했는지에 대한 사실은 오기택이 박해영에게 해주었던 얘기와 이를 안 오윤주가 이단을 시켜서 말하게 했던 내용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박태준이 직접 이한 황세손을 죽인 것은 아니다.

이한 황세손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실은 이미 드라마 초반(3회 방송)에 박동재의 입을 통해서 나왔었다. 이러한 내막은 13회 방송에서 이설이 기억해 낸 것과 일치한다. 또한 드라마 초반에 이한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듣게 된 이설이 박동재에게 했던 말과 이설이 모든 사실을 기억해 낸 후에 박동재를 찾아가 했던 말의 취지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드라마는 똑같은 사실과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 위해서 10회 이상의 분량을 끌어왔던 셈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는 갈팡질팡하기만 했을뿐 별로 주목할만한 내용도 없었다.

박동재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오기택에 의하면 박동재는 너무 좋은 소식이 있으면 그러기도 한단다. 박동재에게 좋은 소식이란 이설을 찾아낸 것이다. 박동재는 박해영을 시켜 이설을 데려오게 하는데 이설이 도착하자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한다.



서재로 이설을 데리고 간 박동재는 순종 황제의 사진을 보여주며 누군지 아느냐고 물어보는데 이설의 전공분야이니 당연히 아는 사진이다. 박동재는 이설에게 과거의 얘기를 들려준다. 박동재의 부친은 순종황제의 명으로 박동재를 데리고 상해를 오가며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박동재는 해방이 되기 직전에 마지막 군자금을 가지고 도망을 쳤는데 현재의 대한그룹은 그 때의 군자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설은 몸에 북두칠성 뭐 그런 것도 없는데 공주란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는데 박동재는 이한 황세손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설은 사진 속의 인물이 누군지 모른다. 이설은 다섯살 정도까지는 기억이 없는데 '어딘가 골목에서 엄청 울었던 거, 딸기 머리끈, 벽돌지게, 헬리콥터' 같은 기억인지 꿈인지 만들어 낸 상상인지 분간도 안되는 기억밖에 없다고 한다.

박동재는 이번에는 딸기 방울이 달린 머리끈을 보여주는데 이를 본 이설은 어렴풋이 기억이 났는지 관심을 나타낸다. 그러자 박동재는 공주마마를 찾았다고 말하는데 그 근거는 이설이 이십년 전 공사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설은 그럼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되묻는데 박동재가 이미 죽었다고 대답하자 그냥 돌아서 나가버린다.

이설이 학교로 돌아간 그 때 박동재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황실을 재건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는 바람에 이설을 찾아 기자들이 몰려온다. 박해영이 찾아와 이설을 구해내 간신히 얼굴이 찍히는 것을 모면하게 되나 박해영의 집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친다. 박동재는 이설을 이한의 묘에 데리고 가기 위해 박해영에게 이설을 데려오라고 하고 박해영은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헬기를 동원한다.

타려던 헬리콥터를 보면서 이설은 어릴 적 아버지와 공사장에서 만났었는데 박동재가 거기로 찾아왔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찾아간 곳이 아버지의 묘인 것을 본 이설은 죽은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며 더 이상은 알고 싶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려고 하는데 박해영은 알아야겠다고 한다. 이설은 아버지가 진짜 살아있다고 믿는다기보다는 실은 자기를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혼자 편하게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박동재는 이한을 죽인건 바로 자신이라며 이한이 죽었던 날 밤의 얘기를 들려준다. 박동재는 이한이 일하던 공사장으로 찾아가 명성황후의 향낭을 전해주며 남은 생애를 다 바쳐서라도 이한과 이설을 창덕궁으로 모셔가겠다고 한다. 이한은 그동안 황세손이라 부르는 사람들에 이용당하기만 하고 살아왔었기에 그만 잊혀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박동재가 잠이 든 틈을 타 향낭을 챙긴 이한은 자고 있는 이설을 깨워 몰래 도망친다. 뒤늦게 알게 된 박동재는 이한을 쫓아오고 이한은 이설에게 금방 데리러 오겠다 말하며 이설을 홀로 남겨둔 채 박동재 일행을 따돌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만 달려오던 자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모두를 들은 이설은 그만 떠나려고 하는데 박동재가 자신을 용서하지는 않아도 좋으니 아버지인 이한에게 절이라도 올리고 가라고 한다. 그러자 이설이 대답한다. "네 전 회장님 절대 용서 못할 것 같습니다. 평생 무슨 일 있어도 회장님 기쁘게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설사 제 아버지 무덤에 인사드리는 일이라도요."

이상은 3회에 방송되었던 이한이 죽게 된 내막의 전부로서 13회에서 이설이 기억해 낸 것과 다르지 않으며 이설이 박동재에게 했던 말의 취지 또한 그렇다. 13회에서 이설은 박동재에게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들 손에 다시 공주 노릇을 하면서 박동재의 죄책감 씻기에 더는 들러리 서고 싶지 않으니까 황실 재건을 포기해 달라고 한다. 말은 서로 다르다고 강변할지 모르나 취지는 같다.

오기택은 오윤주에게 박해영의 아버지 박태준이 이한의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을 해준다. 오윤주가 확실하게 말해달라고 묻자 오기택은 박태준이 이한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박태준과 이한 뿐인데 이한은 돌아가셨고 박태준은 영영 이 나라를 떳으니 누가 진실을 알겠냐고 대답을 한다.



그런데 오기택 이 사람, 이한이 죽던 날 죽던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오기택의 말을 그 자동차 사고의 배후에 박태준이 있는가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박동재는 이설에게 맹세코 박태준이 이한을 죽이지 않았고 이한이 죽은 건 사고였다고 말한다. 박동재가 박태준을 국외로 추방한 건 박태준이 이한을 겁박해 평생을 떠돌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이한이 박동재를 피해 도망치다가 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박태준이 이한을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이설을 찾은 후 박동재는 이설이 향낭을 갖고 있기를 바랬으나 이설은 향낭도 없었고 아버지 사진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이설이 딸기 머리끈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박동재는 이설이 공주라고 확신하게 된다. 이 딸기 머리끈은 오기택이 박해영에게 박태준의 얘기를 들려줄 때 나온다. 박태준이 이설에게 준 것인데 박동재가 공사장으로 이한을 찾아가던 날 이설은 이 머리끈을 묶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에 이한이 몰래 도망치기 위해 급히 이설을 깨워 나오는 바람에 그만 방에 떨어뜨리고 만다.

드라마에서 그나마 스토리의 앞뒤 아귀가 잘 들어맞는 부분은 이 딸기 머리끈밖에는 없다. 딸기 머리끈만 보고 박동재가 어떤 확인 절차도 없이 이설이 공주임을 확신하게 되는 단 하나의 비밀도 여기서밖에는 찾을 수가 없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는 작가가 꽤나 공을 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설이 고아원에 온 지 "몇몇개월 만에 겨우 말문을 열었는데 아저씨가 어디 있냐고, 아저씨랑 있으면 아빠가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고, 아빠는 달리기 대장이고, 아저씨는 울보 대장이라고" 말했다는 고아원 원장의 말에 있는 울보 대장 아저씨는 누구인가? 설마 오기택은 아니어야 할텐데. 고아원 원장이 단서를 달았듯이 이설이 만들어낸 상상이라고 해버리면 그만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오기택은 왜 박해영에게 박태준이 이한의 죽음에 더 관련이 있는듯이 말을 흘렸을까?

이설에게 전화를 건 박태준의 말을 보면 이한이 죽었던 장소에 박태준도 있었음은 확실해 보인다. 이한이 죽은 건 그냥 사고였고 그래서 박태준이 이설을 별장으로 데려왔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고 현장에 있었던 오기택의 말을 보면 가해자가 박태준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박태준은 왜 이한의 지인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고 다시 이설에게 전화를 걸어 진실이란 말을 하는지 박태준이 말하는 진실이란 무엇인지 또 다른 진실이 있다는건지 여전히 생뚱스럽기만 하다.



박태준의 전화를 받고 기억을 찾은 이설은 박동재를 찾아가 '제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저는 박태준씨 별장에 있었다'고 말한다. 어린 이설은 향낭이 든 가방을 꼭 끌어안고 박태준에게 '열밤 자면 우리 아빠 온다고 해놓고 열밤 자고 또 열밤을 잤는데도 왜 안오냐'고 묻는데 박태준은 죽었다고 대답한다. 어린 이설은 '아빠가 돌아온다고 약속했는데 거짓말이라고 울부짓는다.

박동재가 이한의 소재를 찾아내고 이한이 죽자 박태준이 이설을 바로 찾아내 별장으로 데리고 올 정도라면 대단한 정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별장에 데리고 왔던 이설이 그많은 경호원들의 눈을 피해 박태준 몰래 집을 나갈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박동재가 이설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을 수 있는지 의아하다.

지난 방송 중에 찻집에 앉아 이한을 찾는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어왔던 사람들의 리스트를 알아내고 일일이 전화를 거는 장면이 나온다. 얼굴 다 보이게 큰소리로 '이설 공주인데 이한 황세손의 지인을 찾는다는 신문광고 보고 전화 걸었던 분이냐'고 전화를 해도 찾집에 있던 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설이 엎드려 졸고 있을 때 얼굴도 보이지 않음에도 뒤에서 몇사람이 다가와 이설을 알아보는 생뚱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이설이 기억해낸 장면뿐만 아니라 이 장면은 드라마의 전개가 대체적으로 꽤나 생뚱스럽다는 것을 가장 잘 상징한다.

이한의 죽음과 관련해서 드라마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달라진 사실은 이한이 이설을 버린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이설이 알게 되었다는 것밖에는 없다.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 꽤나 지루하게 스토리를 전개해 왔다고 할 수 있겠는데 드러난 결과는 더 갑갑해지기만 했을 뿐이다.



이제 드라마는 2회만을 남겨놓고 있는데 어떤 내용으로 채워갈지 궁금하다. 박해영의 후임으로 새로 임명된 전담 교사인 김사무관은 향후 이설의 교육을 진행하기 위한 커리큘럼을 짜 이설에게 보여준다. 커리큘럼은 클래식 감상, 바이올린, 승마, 패션 등 이설이 얼굴마담 노릇하기에 적합한 것들로만 짜여져 있다. 이설은 맘에 안드니 직접 수업 계획을 짜겠다며 직접 수업 계획서를 써서 김사무관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번주 내로 섭외되겠죠? 선생님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요즘 MBC는 마땅한 소재가 없을 때면 으례히 인기 아이돌을 대거 등장시킨다는가 하는 대규모 물량공세를 퍼붓는데 설마 이 드라마의 남은 2회 분량도 그렇게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솔직히 스토리의 전개를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설이 명시해 둔 사람들의 출연을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다. "이번주 내로 모두 섭외되겠죠? 작가님의 능력을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