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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누이뎐' 만신은 초옥의 아비였는데...




드라마 '여우누이뎐'에 실수가 있다면 만신을 끝까지 베일에 가려놓았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만신의 정체를 꼭꼭 숨김으로써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제작진의 대단한 착각이다. 상당수의 시청자들이 드라마 '여우누이뎐'을 시청했던 이유는 만신의 정체가 궁금해서만은 아니었다. 만신은 그저 드라마 '여우누이뎐'을 시청하는 재미중에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을 제작진은 간과했다. 제작진은 만신에 대한 뜬금없는 추측들이 난무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즐거웠고 그것이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고 착각했는지는 몰라도 시청자들은 그것 때문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물론 마지막 2회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드라마 '여우누이뎐' 전체에 대한 평가도 만신에게 지쳐갔던 만큼이나 박하게 될 것이다.

드라마속에 등장하는 만신의 정체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많은 사람들의 추측이 분분했을 정도로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존재다. 나는 예전 글에서 만신의 정체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공지했던 적이 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 주 방송에서 만신이 황망하게 죽었다가 회생하는 보고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다. 이번주에는 만신의 정체가 밝혀질텐데 만신의 정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만신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기에 결국은 써봐야 될 것 같다.

만신의 정체에 대한 추정을 가장 어렵게 했던 것은 드라마 시작시에 제작진이 만신은 사람이라는 언급을 했었다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고 지금에 와서 검색해보기엔 번거로워서 생략하겠지만 이 기억이 맞다면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일 것이다.



만신이 윤두수네 일가에 개인적인 원한이 있을거라는 추측을 몇 개 보았는데 워낙 변수가 많은 소재를 다루는 드라마다보니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추측한 것은 조금 달랐다. 윤두수네 일가와 원한이 있는 것은 만신보다는 오히려 조현감 쪽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만신은 도대체 왜 윤두수를 계속해서 곤경으로 몰아넣는지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만신은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몇 개 안되는 수상한 단서를 꿰어 맞추다보니 만신은 다름아닌 초옥의 아비라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만신이 초옥의 아비일수도 있다는 추정의 글을 예전에 쓰려던 날짜에 썼었다면 아마도 목불인견의 악플이 수백개는 족히 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만신이 초옥의 아비라는 추측을 해 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드라마 초반부에 만신이 초옥을 위한 굿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만신이 은밀히 양부인을 뒤돌아보고 양부인의 행동 역시도 조금 수상하다. 그리고 만신은 윤두수를 찾아가 초옥의 시련은 이제부터라며 길어야 십년밖에 못 사는데 곧 그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을 한다. 뒤이어 초옥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자 윤두수가 만신의 은거지로 찾아 와 초옥을 살릴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만신은 윤두수에게 비방을 알려주게 된다. 만신의 비방이란 다름아닌 연이의 간을 꺼내서 초옥에게 먹이라는 것인데 이 때 만신은 '자식 둔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고 하는데 제게 자식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을 보탠다.

그 후 만신과 양부인은 연이를 살해해서 간을 적출할 때까지 계속해서 윤두수 몰래 은밀하게 접촉하며 윤두수가 연이를 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끝없이 윤두수를 몰아넣는다. 결국 윤두수가 연이를 살해하고 간을 적출해 초옥을 살리게 되는데 만신은 은거지를 정리한 채 윤두수네 집으로 찾아 와 초옥을 만난다. 만신은 초옥의 손을 움켜쥐며 '그 작던 손이 이렇게 컸구나'라는 말을 하는데 이 때 양부인이 나타나 당황해하며 윤두수를 데리고 가서 엽전을 건네며 그만 나타나라고 한다. 만신은 엽전을 되돌려주며 마지막으로 알려줄 것이 있어 왔다고 하는데 바로 연이가 소지하고 있던 것 하나라도 초옥에게 닿으면 큰 화를 당할 것이니 모든 것을 없애 초옥에게 닿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신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런 단서들을 떠올리다보니 만신은 초옥의 아비였고 초옥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되자 초옥을 살리기 위해서 끝없이 윤두수로 하여금 초옥을 살리도록 상황을 만들어 나갔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초옥의 아비지만 차마 아비라고 드러낼 수는 없는 그러나 초옥을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부정(父情)으로 인해 만신은 계속해서 초옥을 살리는 일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았다. 윤두수의 초옥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시험해보려는 의도도 있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만신이 지난주에 느닷없이 황망하게 죽어버렸다. 만신도 사람이니 구미호에게 죽을수도 있겠지만 죽기전에 구미호에게 지금까지의 스토리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면서 죽었기에 위의 추측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구미호가 말을 하는 데에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패턴이 정형화되어 있었던 것 같다. 구미호는 윤두수와 퇴마사에게는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했었는데 만신에게는 '이 천벌받을 놈'이라고 했고 양부인에게는 '이 천벌받을 년'이라고 했었다. 마치 구미호가 만신과 양부인의 정체를 꿰뚫어보고 있는듯한 말과 행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만신과 양부인 모두 인간이 아니었다는 추정을 하기 위해서이고 만신과 양부인이 인간이 아니라는 전제가 성립한다면 또 다른 추정을 할 수 있다.

13회 방송에서 빙의된 연이가 만신과 맞딱뜨리자 이런 말을 한다. "그 때 저한테 왜 그랬습니까? 제 간을 떼어 초옥아씨한테 주라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간을 먹으면 모두 아저씨처럼 되는겁니까? 그렇게 사악해지는겁니까?" 빙의된 연이가 만신에게 하는 이 말은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라기보다는 마치 구미호들간의 대화로 보인다. 드라마에서 구미호와 연이는 사람의 간을 먹지는 않았는데 만신은 인간의 간을 먹었고 그래서 여타 구미호들과는 달리 사악해졌다는 얘기로도 보인다.

그리고 14회 방송에서 양부인에 의해 강제로 여우피를 마시고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된 구미호는 보름달이 떠오르는 바람에 기사회생하게 되는데 양부인의 목을 조르며 "사람의 껍데기를 쓰고 인간행세를 하다니 너야말로 하늘이 무섭지도 않더냐"고 말한다. 구미호를 죽이지 못한 양부인은 다시 만신을 찾아가서 구미호가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상태로 우리 초옥이가 위험하다고 하는데 만신은 '몸에 닿기만 해도 본색이 드러나는 그런 묘약을 원하는 것이냐'고 한다. 그런게 있으면 왜 주지 않았냐며 동굴을 뒤지던 양부인은 만신의 허리춤에 있는 주머니를 발견하고 낚아채며 주머니속의 가루를 한움큼 꺼내 만신의 얼굴에 홱 뿌린다.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되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만신은 참 나약해 보인다. 윤두수 앞에서는 칼을 들이대더라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냉소하며 조롱하고 비웃던 만신이 양부인에게 이런 굴욕을 당하고 있다는게 참으로 의아할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모두 만신과 양부인 둘 다 인간이 아니라 구미호였다고 보는 이유들이다. 만신이 양부인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은 양부인이 만신의 누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얘기를 만들어보자면 만신과 양부인은 구미호 남매였는데 인간이 되고 싶었던 양부인은 윤두수를 만나 살게 되었고 초옥을 낳음으로써 인간이 되었다. 만신도 사람이 되고자 했는지는 불분명하나 양부인이 사람이 되어 잘 살아가게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으로 치면 생질녀에 해당하는 초옥의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연이의 간을 꺼내 먹여서 살려내려고 했다. 만신은 인간의 간을 먹으며 연명해오느라 썩은 내가 나는데 양귀비를 태움으로써 나는 향을 이용해 그 썩은 내를 감추어왔던 것으로 봐야 될 것 같다.

만신은 윤두수가 초옥의 목숨을 살려낸 것이고 그 댓가로 윤두수네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윤두수네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더라도 양부인과 초옥이 죽게 되지는 않는다는 관점으로 바꿔서 볼 수도 있다. 즉 양부인은 윤두수네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초옥의 목숨을 지키는 것에만 몰두할 뿐일거라는 것이다. 이 장면은 만신도 윤두수와 어떤 악감정이 얽혀있다는 얘기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이전의 얘기로 돌아가서 양부인의 딸 초옥은 어디선가 들리는 방울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초옥이 연이의 방울소리를 들은거라면 초옥은 사람이 아니라 구미호로 봐야 된다. 나는 애초에 초옥이 역시 구미호가 될 운명이었다는 추정을 했었는데 이는 '여우누이'에 근거한 것이었으나 그 이후 초옥이 구미호라는 단서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초옥이 들은 방울소리는 다른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흔드는 방울소리를 들었다고 보았었으나 초옥이 역시 구미호인 양부인의 피를 이어받았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면 초옥이가 자기 생명을 살릴 제물이 될 아이를 먼저 알아볼거라는 만신의 예언은 연이를 윤두수네 집안으로 끌어들이기만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위에서처럼 연이와 초옥이 둘 다 구미호가 될 운명이라는 추정을 했을 때 연이가 살아남아 구미호가 된다면 윤두수네 일가에 별다른 피해는 없겠지만 만약에 초옥이 살아남아 구미호가 된다면 윤두수네 일가는 풍비박산이 날 것이라고 했었다. 결과적으로 초옥이 살아남았고 구미호가 된 것은 아니라는 면에서는 다르나 윤두수네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운명이라는 면에서는 같다고 할 수도 있다.



위 이미지는 5회 정도의 방송을 보다가 캡쳐해 놓은 것인데 당시에 이 장면을 캡쳐해봤던 이유는 카메라 워크가 좀 독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여우누이뎐'의 카메라워크는 전체적으로 위의 이미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마치 누군가가 엿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또는 하늘에서 모두 다 내려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한다. 마치 '밤 말은 쥐가 듣고 낮 말은 새가 듣는다'거나 '하늘이 모두 다 내려다보고 있으니 천벌받을 짓을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 후반부로 오면서 위 이미지와 같은 장면이 등장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마도 만신이 윤두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뚤어보고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치밀하게 감시하고 보고해주는 자가 있었기에 가능하지는 않았을까 생각된다.

드라마 '여우누이뎐'을 시청하면서 대체 누구의 관점에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인지를 종잡을수가 없었다. 만약에 연이가 구미호가 되는 전개라면 오라비가 있어야 되는데 연이에겐 형제가 없고, 초옥이가 구미호가 되는 전개라면 충일과 충이라는 배다른 동생들이 있지만 그들의 관점에서 전개된다고 보기엔 그들이 맡은 배역이 너무 작았다. 그런데 양부인이 구미호라면 그리고 만신이 양부인의 동생이라면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

이러한 전제가 성립한다면 드라마 '여우누이뎐'에서 정작 주인공은 만신과 양부인이 되는 셈이고, 구미호와 연이는 드라마의 결말에서 마지막 반전카드로 준비해놓은 만신과 양부인을 숨겨놓기 위한 일종의 유인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미호와 연이를 중심으로 지루하리만치 얘기를 전개해오면서도 끝까지 만신을 베일에 감추어두면서 신비감을 유지하려고 했을수도 있다. 만약에 드라마의 결말이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면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이 드라마 제작진들의 차기작은 절대로 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반전이 아니라 시청률을 높여보기 위한 사기에 불과하고 그간의 이 드라마 전체에 대한 평가는 모두 철회할 것이다. 이러한 결말을 준비하고 있다면 제작진들은 향후부터 신뢰는 쌓기 어려우나 무너지는건 한순간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외에 본문에 미처 언급하지 못하고 몇가지 덧붙일 얘기가 있는데 이는 여유가 되면 14회 방송에 대한 리뷰와 함께 나중에라도 언급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