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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김탁구' 경합주제의 귀결은 레시피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팔봉선생은 2차 경합의 주제를 공개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을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그 옛날 과거시험을 칠 때나 나왔음직한 두루마리 펼치는 방법으로 경합의 주제를 공개하는 것이 흥미롭다. 1차 경합의 주제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었으니 경합의 주제들이 꽤나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그런데 1차와 2차 경합의 주제를 보면 일관되게 한가지의 목적물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합주제를 공개하기에 앞서 팔봉선생은 세명의 1차 경합 통과자들 앞에 빵을 만드는 가장 기본이 되는 네가지인 밀가루, 소금, 물, 이스트를 내어놓고 그 중에서 빵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재료를 각자 하나씩 골라서 내 앞으로 내밀라고 한다. 양미순은 밀가루를 김탁구와 구마준은 동시에 이스트를 골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1차 경합때와 마찬가지로 15일 안에 각자의 가장 재미있는 빵을 만들어보되 각자가 골라낸 빵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재료는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밀가루 또는 이스트 없이 빵을 만들어야 한다니 과연 이 세명은 각자 어떤 재미있는 빵을 만들어낼지 참 재미있다.

아무래도 밀가루를 골라 낸 양미순은 2차 경합을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트를 고른 김탁구와 구마준 그 둘은 각각의 방법으로 재미있는 빵을 만들어낼텐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제빵에 대한 상식이 없으니 그에 대한 추정을 해보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팔봉선생의 시나리오에는 김탁구와 구마준 모두가 최종경합까지 올 거라는 것으로 보이는데 구마준의 경우는 어떤 빵을 만들지보다도 만드는 빵에서 찬 기운을 어떻게 뺄지가 더 큰 과제일 것이다. 팔봉선생은 이미 구마준에게 2차 경합에서도 빵에서 찬 기운을 빼지 못한다면 탈락시킬 거라는 경고를 했었다.



사실 2차 경합의 주제는 미리 예고를 했었다. 팔봉선생은 1차 경합이 끝나고 김탁구가 만든 보리밥빵을 들고 방에 들어가 먹으면서 "재밌구나. 아주 재밌는 맛이야"라고 혼잣말을 했다. 여기서 팔봉선생이 재밌다고 한 것은 뭔가 뜻밖의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고 그래서 흐뭇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팔봉선생이 발견한 것은 팔봉선생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재미있고 그래서 맛도 재미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팔봉선생이 발견한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냥 보리밥과 옥수수였을 뿐이었을텐데 그것이 무언가와 일치한다는데서 오는 놀라움의 표현이었다고 본다.

한편 이스트 없이 빵을 만들어야 되는 김탁구와 구마준은 이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일단 확실한 것은 베이킹 파우더와 같은 화학첨가물은 절대로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 팔봉선생은 빵에다 절대 화학첨가물을 쓰지 않으며 그런 화학첨가물을 쓰는 순간 경합에서 탈락할 것임은 물론 아마 팔봉제빵집에서 내쫓길 걱정까지도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실수로 봐야할 것 같다. 여기서 재미있는 한마디는 '베이킹 파우더 같은 화학첨가물은 장이 나쁜 사람한테는 완전 마이너스 첨가물'이란 것이다.

그럼 이스트 없이 빵을 어떻게 부풀릴 수 있을까? 화학첨가물을 사용할 수 없다면 그 해답은 자연발효식품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막걸리다. 어릴적 막걸리를 넣어 부풀린 찐빵을 먹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비약이라고 할 수만은 없겠다. 막걸리는 예부터 내려오는 발효의 과학적 산물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전통 막걸리 속에는 유익한 생 효모가 많이 살아있으며 이 효모의 작용으로 인해 찐빵을 만들 때 막걸리로 반죽하면 발효가 되어 잘 부풀게 된다고 한다.

주제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었던 1차 경합에서 김탁구는 보리밥과 옥수수를 넣은 보리밥빵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팔봉선생은 "보리밥과 옥수수는 보릿고개를 넘기던 우리 서민들한텐 거의 주식과도 같았던, 그야말로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에게 배고픔을 달래주던 그런 음식'이라며 '가장 좋은 향이 난다'고 평가했었다.

제주도에는 먹다 남은 보리밥이나 잡곡밥이 쉬어서 못 먹게 되면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쉰다리'라는게 있는데 이처럼 옛날 풍족하지 않던 시절에는 보리와 옥수수로 막걸리를 만들기도 했었다. 막걸리가 쉬면 부뚜막 옆에 두고 발효시켜서 식초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술 지게미는 다들 한두번쯤은 먹어봤을테지만 쉰 보리밥을 찬물에 헹구어 막걸리에 말아서 먹기도 했었다. 그 때는 그렇게 어렵게 살아낼 수 밖에는 없는 시절이었는데 그래도 현대처럼 그리 각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요즘은 건강식으로 막걸리 속에 살아있는 생 효모로만 발효해 만든 보리빵을 만들기도 한다는데 이스트가 없다면 결국 답은 막걸리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막걸리가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위에서 '베이킹 파우더 같은 화학첨가물은 장이 나쁜 사람한테는 완전 마이너스 첨가물'이라는게 재미있는 한마디라고 했었는데 역시 막걸리와 연관되는데다가 막걸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리밥, 옥수수, 막걸리 이것들은 모두 봉빵으로 연결되는 것이라 추정하는데 팔봉선생이 내놓은 경합주제들은 일관되게 봉빵의 레시피를 가리키고 있다. 팔봉선생은 봉빵의 레시피를 직접 알려주기보다는 경합을 통해서 '누구보다 간절히 레시피를 원하는 구마준'과 '누구보다 간절히 꿈을 꾸는 김탁구'가 스스로 알아내기를 원하는 것 같다. 팔봉선생이 쥐고 있는 '발효일지'란 결국엔 봉빵의 레시피가 아니라 빵의 발효종으로 사용될 막걸리에 대한 내용일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양질의 효모를 일관된 맛을 내게 만드는 방법을 정리해 놓았고 김탁구와 구마준이 더 발전시켜주길 기대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막걸리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조선조 중엽 이씨성의 한 판서가 집에 좋은 소주와 가양주가 많은데 굳이 막걸리만 찾아 마시는지라 자제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판서는 소 쓸개 세개를 마련시키더니 담즙을 쏟아 버리고 그 쓸개 주머니에 소주, 약주, 막걸리를 따로 담아 매달아 두었다. 며칠 후 열어보니 소주 쓸개는 구멍이 송송 나 있고 약주 쓸개도 많이 상했는데 막걸리 쓸개 만이 오히려 두터워져 있었다 한다. 역시 화학첨가물은 장이 나쁜 사람한테는 완전 마이너스라는 말이 해결되는 얘기다.

막걸리에 오덕(五德)이 있다 했는데 그것이 한국적 풍토나 생업 그리고 한국인의 생태에 걸맞음을 알수 있다. 허기를 면해주는 것이 일덕이요, 취기가 심하지 않은 것이 이덕이고, 추위를 덜어주는 것이 삼덕이며, 일하기 좋게 기운을 돋워 주는 것이 사덕이고, 평소에 못하던 말을 하게 하여 의사를 소통시키는 것이 오덕이다.

위는 고 이규태 선생의 글이고 막걸리는 밥과 같다고 했던 시인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가장 배부른 빵과 막걸리는 뗄 수가 없는 것이겠다. 김탁구가 보리와 옥수수로 빵을 만들었으니 팔봉선생으로서는 참 재미있는 발견이었을 것이다. 2차 경합 주제까지 팔봉선생의 시나리오에 있는 것과 유사한 것을 내놓는다면 팔봉선생은 또 어떤 표현을 하게 될지 어떤 표정을 짓게 될지 그의 명품 연기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 술은 '백약지장(百藥之長), 백독지원(百毒之源)'이라고 합니다. 한방에서는 조금 마시면 따뜻한 성질이 약력을 위로 보내고 경락을 잘 소통하게 하여 모든 약의 으뜸이 되지만 과음하게 되면 모든 독의 근원이 된다고 보는 것이라네요. 아무리 좋은 술이라해도 많이 마시는건 안 좋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