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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김탁구' 구마준은 변할까?

드라마 '제빵왕김탁구'에 등장하는 팔봉선생은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사마휘(司馬徽)가 환생이라도 한 것처럼 탁월한 지인지감(知人之鑑)의 소유자로 보인다. 지인지감이란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을 일컫는 말인데 팔봉제빵점에 있는 문하생들의 인성을 하나하나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어린 김탁구를 처음 보았을 때나 성장한 후에 팔봉제빵점에 왔을 때나 구마준이 자필인증서를 받기 위해 팔봉제빵점에 왔을 때나 팔봉선생은 한눈에 그들의 인성을 꿰뚫어 보았었다.

팔봉선생은 이덕위본 재예위말(以德爲本 才藝爲末)을 경합에 통과할 자격조건에 대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우선적으로 그 사람의 덕을 보고 그 다음으로 재주를 보겠다는 의미다. 한 분야에서 명장이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덕과 재주를 겸비(재덕겸비 ; 才德兼備)하는게 필수적이고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재주는 탁마(琢磨)로 보완할 수 있으므로 덕이 있는 사람이 부단히 노력하거나 또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덕을 쌓으려 노력한다면 재덕겸비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재주는 뛰어나지만 덕이 적다(재승덕박 ; 才勝德薄)면 자기 재주만 믿고 우쭐대다가 경박해지기 쉽고 덕을 쌓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이렇게 덕이 부족한 자에게 비법을 전수한다면 오히려 죄악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이전 글에서 경합의 기준은 비인부전이 될 거라고 언급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취지의 내용이다. 그런데 드라마 '제빵왕김탁구' 16부를 보면 팔봉선생은 단순히 경합 참가자들의 인성을 테스트하고 평가하는 수준에서 끝내는게 아니라 그들의 인성을 교육시키고 변화시켜보겠다는 의중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팔봉선생이 이전에 '원래 천재가 노력하는 놈 못 이기고 노력하는 놈이 즐기는 놈 못 이긴다고 했지'라고 했던 발언과 일정부분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김탁구와 구마준을 상대로 하는 팔봉선생의 이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팔봉선생은 특히 구마준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김탁구가 밀가루에 소다를 넣었다고 오해한 구마준은 김탁구와 싸우게 되고 팔봉선생은 둘 다 1주일간 제빵실에 출입을 금지하라고 한다. 그러나 둘은 계속 티격태격 싸움을 계속하게 되고 팔봉선생은 둘을 불러 끈을 내놓으며 '3일동안 단 한순간도 그 끈을 빼지 않고 버틸 수 있다면 제빵실 출입을 허락해주겠다'고 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웃어넘길 에피소드로만 보기보다는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장면이다.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子曰, 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인행필유사'란 말로서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그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팔봉선생의 의도는 둘의 손을 묶어서 24시간 함께 생활하게 함으로써 둘을 화해시키려는 것보다는 둘이 같이 생활함으로써 서로에게서 장점을 발견해서 배우고 단점을 고치기를 바랬다고 할 수 있다.

김탁구는 상당히 긍정적인 에너지로 주위 사람을 변화시키고 자기 편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졌으나 감정적이고 신중하지 못한 면이 있다. 반면에 구마준은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경합에 쓰일 재료구입비를 놓고 나누었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탁구는 재료비가 부족하지 않다고 여기고 경합에 통과할 경우 허갑수보다 끗발이 높아진다는 정도에 관심을 쏟았다면 구마준은 '주어진 시간안에 최대한 재료비용을 절감하면서 빵을 만들어라? 아무튼 만만치 않은 시험이네'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이 둘이 서로에게서 장점을 발견해서 배우고 단점을 고치기만 할 수 있다면 본인들은 물론 팔봉선생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팔봉선생은 김탁구와 구마준 모두 재덕겸비가 가능한 재목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들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팔봉선생은 김탁구에 대해서는 "그 녀석이 앞으로 어찌 될 지, 그 다음이 궁금하구나"라며 김탁구가 재능을 갈고 닦으며 내재된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이라면 구마준에 대해서는 재주는 뛰어나지만 덕이 부족하므로 자기 재주만 믿고 우쭐대다가 일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이 부분은 봉빵의 발효일지와도 어떤 연관이 있어 보인다. 봉빵은 만드는 사람의 인성에 따라서 빵이 아닌 독이 될 확률도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김탁구와 구마준은 제빵실 출입을 앞당기기 위해 각각의 손목에 팔봉선생이 준 끈을 묶고 '적과의 동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서로의 사인이 안맞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서 사사건건 트러블이 생기지만 조금씩 적응해가고 익숙해져서 얼핏보면 환상의 콤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저런 과정에서 구마준도 서서히 마음이 바뀌어가는 것 같기도한데 과연 구마준은 예전의 까칠함을 버리고 긍정적인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까? 그러나 구마준이 이렇게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마준이 김탁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그 순간에 서인숙이 팔봉제빵점으로 찾아와 회사로 돌아오라고 말하고 김탁구는 서태조가 구마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들킨 구마준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자존심 강한 구마준은 김탁구에게 열어가던 마음을 다시 닫고 까칠하게 대할 것이다. 또한 회사로 돌아오라는 서인숙의 요구를 무시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구마준은 자기에 대한 서인숙의 남다른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구자경이 구자림에게 했던 얘기처럼 '엄마가 저렇게 지나치게 굴 때는 항상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안다.

구마준이 서인숙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변할 가능성도 있겠는데 구마준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생부인 한승재와 서인숙이 할머니인 홍여사를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장본인들이라는 비밀까지 간직하고 있다. 구마준은 스스로를 여기에 가두어버렸고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겁쟁이이다. 또한 서인숙은 구마준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사사건건 간섭하며 철저히 자기의 욕심대로 끌고 가려고 하는데 구마준이 이것을 깨고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구마준이 안고 있는 여러가지 자괴감과 열등감을 스스로가 극복하지 못한다면 구마준은 다시 마음을 닫고 변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는 김탁구의 성공신화 못지않게 구마준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쪽이다. 구마준이 변하기 위해서는 구일중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빵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제빵은 구마준에게 '인생이고 신념이고 자부심이며 인생을 걸만큼 가치있는 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드라마 '제빵왕김탁구'는 전선을 지나치게 넓혀놓았던 예전과는 달리 15, 16부의 경우는 상당부분 단순화시켰다는 느낌이다. 김미순의 복수가 전면에 나서면서 권선징악이란 주제로 집약시키기 위함일수도 있겠는데 이게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김이 빠졌다고 느끼게 하는 요인이다. 이런 식의 전개속에서 구마준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모르겠는데 서인숙의 빗나간 모성과 욕심에 구마준이 밑바닥까지 희생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탁월한 지인지감(知人之鑑)으로 제자들의 재능과 인성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단순히 제빵기술을 전수하기보다는 먼저 인성을 가르치고 스스로 모범이 되어주는 팔봉선생은 사표(師表)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직접 가르침을 받은 스승이 아니어도 학식과 인품이 높아 모범이 될 만한 누군가를 마음의 사표(師表)로 삼는 것도 의미가 크다. 사실 요즘은 주위에 사표로 삼을만한 지도자를 찾아보기가 어렵고 일선의 교사들도 이념에 따라 전교조, 비전교조로 나뉘어 싸우는 이 시대에 드라마속의 팔봉선생을 사표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이것이 드라마 '제빵왕김탁구'를 시청하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