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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성균관 스캔들' 홍벽서 걸오는 누가 구해줬을까?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꽤 답답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굉장히 산만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벌써 6강이 훌쩍 지나갔음에도 아직도 드라마의 도입부인양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금등지사에 있다고 판단된다. 드라마의 원작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으나 아마도 소설에는 금등지사 얘기가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는 것으로 짐작된다.

드라마를 보면 금등지사와 성균관 유생들의 얘기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서 돌아가지 못하고 각각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이유도 아마 원작과는 다르게 시도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다보니 현재까지 진행된 드라마의 주 무대가 성균관인지 조정인지 분간하기가 어렵고 드라마의 방향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시청자로서 보기에 성균관 유생들과 조정의 얘기가 서로 맞물릴 수 있게 연결해 주는 유일한 고리가 바로 금등지사인데 이 얘기를 빨리 수면 위로 올려 놓지 못한 게 원인이라고 판단된다.

드라마를 시작한 지 6강이 지나서야 겨우 금등지사와 성균관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드러났는데 너무 안일하게 시나리오를 기획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6강까지 보고 난 후에 이 드라마의 예상 시나리오를 정리해 보게 되었는데 아래와 같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의 순전히 개인적인 추정에 불과하므로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다.

노론 일파는 금등지사를 찾아 내 없애버리려고 하는데 이를 눈치 챈 성균관 박사 김승헌은 성균관 어딘가에 금등지사를 숨겨 놓고 그러한 사실을 정조에게 보낼 사직상소문에 암호화해서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는 노론 일파가 금등지사를 추적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의도적으로 노론 일파의 함정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살해당했다. 병조판서 하오규는 김승헌을 잡으면 금등지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찾아내지 못하자 김승헌을 살해했고 노론의 영수인 좌상에게 금등지사는 없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금등지사는 10여년 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런데 성균관 유생인 걸오 문재신이 금등지사를 밝히라는 홍벽서를 뿌리고 다님으로써 조정내에서 또 다시 금등지사가 불거져나오기 시작했다. 정조는 김승헌을 호종하던 성균관 서리의 아들로부터 김승헌의 유품인 사직상소문을 전달받고는 금등지사가 성균관에 있다고 확신하고 정약용을 성균관으로 보내 금등지사를 찾으려고 한다. 이 금등지사를 찾기 위해서 성균관 유생들이 조정과 엮이게 되면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본격적인 얘기가 시작될 것 같다. 금등지사를 찾을 것이라 예상되는 성균관 유생은 김윤식과 이선준 그리고 문재신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은밀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인지 성균관 유생들도 편이 갈리어 치열하게 암투를 벌이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김윤식은 금등지사를 지키려다 살해당한 김승헌의 여식이고, 문재신은 금등지사를 지키려다가 김승헌과 함께 살해당한 문영신의 동생이자 사헌부 대사헌인 문근수의 아들이다. 김윤식은 아직 아비인 김승헌의 일을 모르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하지만 문재신은 형의 죽음을 목도했으나 도울만한 힘이 없었고 아비인 문근수가 형의 죽음을 알고도 모른 채 하는 것에 분노하고 아비를 경멸한다.

그런데 문재신의 아비인 대사헌 문근수, 이 사람 조금씩 지나면서 보니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대사헌 문근수의 동태를 보면 겉으로는 여전히 좌상과 병판의 편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면종복배(面從腹背)하는 것 같다. 문근수는 조는 듯이 앉아 있는 매와 병 든 듯이 걷는 호랑이처럼(鷹立如睡 虎行似病 ; 응립여수 호행사병) 웅크리고 있으면서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것 같다.



문근수는 노름하고 있던 문재신을 사헌부로 잡아들여서 "한심한 놈. 언제까지 그 따위로 허랑방탕하게 살 생각이냐? 죽은 니 형에게 부끄럽지도 않단 말이냐?"라고 호통을 친다. 이 때 보인 문근수의 언행은 문재신의 생각처럼 비굴한 아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병판은 정조에게 성균관에서 대사례를 시행치 말라고 아뢰는데 이 때 정조는 '부모는 먼저 간 자식을 죄인이라 여겨 가슴에 묻지만 자식은 놓쳐버린 부모의 발자취를 찾아 헤매는게 인간의 길'이라 말하면서 대사헌 문근수에게 '그렇지 않으냐'고 물어본다. 문근수가 대답하려 하자 좌상이 문근수를 노려보고 문근수는 이내 태도를 바꾸어 '대사례와 인간의 도리가 어떤 연관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고한다.

좌상은 병판과 사저로 돌아오는데 이 때 어디선가 홍벽서가 날아 든다. 홍벽서의 내용을 본 좌상은 홍벽서는 성균관 유생이 틀림없다며 다음 날 열리는 성균관 대사례에서 홍벽서를 잡아들이라 명한다. 대사례는 병판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 좌상은 금등지사와 관련한 병판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병판으로서도 정조보다 먼저 홍벽서를 잡아 없애지 못한다면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이 자리에는 문재신의 아비 문근수도 같이 있었는데 좌상이 홍벽서는 성균관 유생이 틀림없다면서 대사례에서 잡아들이라 병판에게 명하는 것을 보면서 복잡한 표정이다. 문근수는 홍벽서가 아들인 문재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봐야겠다.



병판은 수하들에게 홍벽서의 용모파기를 나누어주고 얼굴과 습사 동작을 잘 기억해뒀다가 대사례에서 홍벽서를 잡으라고 지시한다. 성균관은 관군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에 모두 관복 차림으로 은밀히 홍벽서를 찾아 나서되 만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죽이라고 한다.

성균관 대사례가 열리는 날 정조는 궐을 나서면서 병판에게 홍벽서 잡는 일을 서둘러 달라고 한다. 그런데 '단 오늘 만큼은 홍벽서 잡는 것을 허락치 않겠다'고 덧붙인다. 그 전에 좌상에게 '군왕이 오죽이나 변변치 못했으면 나라의 실정을 꾸짖는 홍벽서가 좌상의 사저를 찾았겠느냐'고 했을 때 대사헌 문근수가 나서서 '황망하신 말씀 거두어 주십사' 청한다.

이상의 얘기를 보면 일단 정조는 김승헌과 함께 문근수의 자식인 문영신이 금등지사를 지키려다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문근수가 누구의 편인지를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봐야 되겠다. 그런데 대사례 날에만 홍벽서를 잡아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명한다는 것은 정조 또한 홍벽서가 성균관 유생임을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은밀히 장용영(壯勇營) 군사들을 움직여서 홍벽서를 보호하라고 지시했을 수도 있다. 만약 문근수가 정조를 찾아가서 좌상과 나누었던 얘기를 보고했다고 본다면 문근수가 은밀히 사헌부 군사들을 움직였을 수도 있다.



한편 걸오 문재신은 복면을 쓰고 좌상의 행차에 맞추어 좌상의 사저로 찾아 가 홍벽서를 뿌리고 도망치다가 화살을 맞고 부상을 당한다. 대사례는 동방생끼리 한 접을 이루며 단 한 명의 불참도 용인될 수 없으므로 문재신이 대사례에 참석치 못한다면 이선준과 김윤식 모두 대사례엔 참여할 수 없고 불통을 받게 된다. 문재신은 상처에 천을 감고 다친 몸을 이끌고 대사례장으로 향하다가 병판의 수하들에게 꼼짝없이 붙잡히고 만다.

그런데 이렇게 붙잡힌 줄로만 알았던 문재신이 대사례가 막 시작되기 전 대사례장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김윤식을 향해 "어이 대물. 머릿수 채우러 왔다"고 말하며 씨익 웃는다. 부상이 심한 상태로서 병판의 수하들에게 완전히 제압당했던 문재신은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을까?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정조의 지시를 받고 은밀히 움직이던 장용영(壯勇營) 군사들일 수도 있고 대사헌 문근수의 수하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극비리에 운용해오던 비밀군사들일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움직였다면 아무래도 문근수가 정조를 찾아 가 보고를 했고 그에 맞추어 모든 것을 계획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이로써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스토리 전개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 같다. 성균관과 조정의 연결 고리가 급부상함으로써 각각 따로 노는 것 같던 산만함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