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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 김태원 빠지는게 낫다

지난 주말 방송된 '남자의 자격' 하프 마라톤 도전기는 김태원으로 인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내내 참으로 불편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도 아니고 '노세 노세 프로그램하면서 놀아'가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근본 취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태원의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해 보인다.

방송에 보여지는 김태원의 그 허약 체질이 설정이 아닌 완전한 리얼이라면 프로그램에 나와서 노닥거릴게 아니라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수준일 것이다. 그런 상태로 멀쩡히 걸어다니고 콘서트까지도 소화할 수 있다는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의심될 정도다. 하다못해 동네 노래방에서 혼자 한시간 정도만 노랠 불러도 체력이 바닥날 정도로 힘든데 기획된 콘서트에서 수많은 관중을 앞에 두고 두어시간을 공연한다는 것은 왠만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저 쉬엄쉬엄 적당히 대충하는 콘서트가 아니라면 말이다.

김태원은 이제 고작 만 44 세다. 65년생들을 모두 모아  놓고 가려낸다면 저런 허약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 지 궁금하다. 남자 40대면 모두 저리 삭아버리는거라는 한심한 선입견은 갖지 마라. 주변에서 보게 되는 6,70대의 어르신들도 방송에 나오는 김태원보다는 낫다.

내겐 상상할 가치가 없다 하더라도 개인에 따라서는 그런 체력을 가진 사람도 없지는 않을거라는 가정은 인정해 주자. 설마 그런 사람 어디 한 둘 없지는 않을 거다. 문제는 방송을 대하는 김태원의 태도다. 그저 적당히 놀며 대충 시간이나 때우면서 방송 분량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의도가 아니라면 요즘 방송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그 놈의 쓰레기같은 설정 때문일 수도 있다.

김태원은 처음에 '시체'라는 컨셉이었다가 지금은 '할머니'란 컨셉으로 도저히 상상할 가치가 없는 허약 체질로 포장되어 방송에 나오고 있다. 줄넘기 한 번을 넘기기 어려워 안간힘을 쓴다든가 선착순하면 아예 포기하고 천천히 걷는다든가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한다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찬다고 하든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허약함이 김태원의 설정이다.

이 설정을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결국 김태원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허약함을 매번 보여줘야 된다. 물론 그 허약함이 김태원의 귀차니즘에서 나오는 것으로 몸에 밴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로 발전시켰을수도 있고 실제로 보통사람들보다는 터무니없이 허약한 체력의 소유자일수도 있다. 물론 아무리 허약한 체질이라고 하더라도 설마 저 정도일까 싶은건 사실이다.

이 날 방송에서 남자의 자격 멤버들은 100 미터 달리기를 하고, 턱걸이를 하고, 넓이 뛰기를 하고, 기본 3 킬로미터 달리기를 하면서 기본 체력을 테스트했었다. 여기에서 김태원을 관찰해보면 해보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다. 한마디로 '그 힘든 걸 왜 해'다. 100 미터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서서 뛰는 시늉만 하고 턱걸이도 그저 매달려 있을 뿐이고 제자리 멀리뛰기도 그냥 건성으로 뛰는 시늉만 내는 것 같고 3 킬로미터 달리기는 아예 뛰어보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다.

100 미터 달리기가 사실은 만만한게 아니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것과는 운동의 강도가 다르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다가 100 미터를 전력 질주하고 나면 숨이 턱에 차는 건 기본이고 구토에 어지럼증 그리고 두통까지 올 수도 있다. 턱걸이도 근력이 약화되어 있으면 달랑 한 번 하기도 버겁다. 제자리 멀리뛰기도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멀리 뛸 수가 없고 3 킬로미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허약한 체질에 나이도 있는 김태원이 이 모든 걸 잘 해주길 바라는게 아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해보겠다는 의지다. 해보려고 하지만 안되는 것과 아예 할 생각도 없이 노닥거리는 것은 관점이 완전히 다른 문제에 속한다. 애초에 아무런 의지도 없으면서 그냥 방송출연을 위해서만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하프 마라톤 도전기는 왜 제작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차라리 앉아서 노닥거리며 이바구나 하는 주제를 찾아내는게 나았다.

지난번에 방송되었던 남자의 자격 전투기 방송 때는 전투기 탑승을 위한 훈련시에 급작스럽게 녹화 일정이 바뀌었는데 김태원의 콘서트와 날짜가 겹치게 되었다는 이유로 김태원은 오프닝만 함께 하고는 조퇴하여 모든 훈련에 불참했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김태원을 이 방송에 남겨두어야 할 정도로 남자의 자격에서 김태원의 존재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김태원이 남자의 자격 시청률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의 자격 포맷을 보면 다른 누구를 그 자리에 넣어도 그 정도의 지분은 빼낼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김태원을 빼는게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더 나을수도 있다. 다른 멤버를 보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김태원을 빼고 서로간에 어색하다고 생각되는 이정진, 윤형빈의 웃음코드를 짜내는게 더 낫다.

김태원 본인으로서도 이 프로그램에서 빠지는게 현명한 선택이다. 입만 열면 로커로서의 자존심을 얘기하는데  예능은 예능하겠다는 사람에게 넘기고 음악가로 돌아가라. 록 그룹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이며 작곡가로서 주옥같은 명곡들을 만들어낸 음악성으로 무대 공연에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대중을 휘어잡던 그 음악가로 돌아가라. 그게 로커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다.

로커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의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지는 김태원의 모습은 이런 것과는 좀 다른 문제다. 차라리 본인의 굴곡 많은 인생의 경험들을 객관화해서 남 얘기하듯이 툭툭 털어내는 그 화법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서 본인의 예능 끼를 펼치는게 훨씬 더 낫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김태원 본인만이 가진 독특한 아우라(Aura)를 확고히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