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生의 한가운데

누가 남겨둔 발자국일까?

동네 할인마트 주차장 귀퉁이를 시멘트로 덮고 미장을 했는데 그 위로 선명하게 발자국이 찍혀 있다. '하얀 눈 위에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도 아니고 대체 누가 매끈한 시멘트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지나갔을까?

그 주차장이 길은 아닌데 사람들이 몇 발짝 돌아가면 되지만 주차장을 질러 지나다니곤 하는 곳이다. 나도 역시 그 주차장을 질러 간다. 그런데 시멘트를 덮고 미장을 한 그 곳에 누군가가 발자국을 남기면서까지 지나갔다는건 이해불가다.

시멘트를 밟고 가면 열 발자국, 돌아가면 삼십 발자국 정도의 거리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나가는 동안 발도 폭폭 빠졌을텐데도 불구하고 기어코 질러갔을 그 사람의 머릿속이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발자취를 이 땅에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시멘트를 덮고 줄을 둘러쳐서 표시를 해놨는데 그것이 너무 허술해서 그냥 무시해버려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그 주차장을 길로 확신한 나머지 '왜 지나다니는 길에 시멘트를 깔아서 막은거야'라는 불평을 그런식으로 표출하기 위해서였을까?
미장을 마친 사람이 기념으로 본인만의 표식을 남기기 위해서 남긴 발자국일까?
주차장 관리인이 시멘트를 깔았기에 이렇게 지나다니면 안 된다는 경고를 그런 식으로 표시했을까?



주차장을 관리하는 측에서도 그 발자국을 없앨 계획은 없는 모양인지 발자국은 선명하게 남겨져 있다. 거길 지나간 누군가는 그 주차장에 자신의 발자취를 확실하게 남기는데는 성공했다. 그 주차장에서 그 발자국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는.

「 질러가는 길이 돌아가는 길이다 」

질러가는게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난 '빨리 빨리'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도 가야 할 길과 가지말아야 할 길은 분간하자. 빨리 가는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빨리 가야 할 길에서 빨리 가자.

판단이 어려우면 역시 '급할수록 돌아가라'가 지혜로운 방법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