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선덕여왕, 미실이 덕만을 왕으로 옹립(擁立)하나

드라마 '선덕여왕'의 이창섭 책임 프로듀서는 "다음 주 화요일인 10일, 50부 방송에서 미실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지만 미실이 자살을 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죽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비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확실한 것은 고현정이 꽃보다 아름다운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했단다. 기사를 전하는 기자는 "'미실' 고현정이 미모와 명성에 걸맞는 아름다운 최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고 있다.

미실이 이렇게 아름다운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덕만을 왕으로 옹립하는 길밖에는 없어 보인다. 미실이 반란을 일으키고 왕을 감금했다는 사실은 이미 온 서라벌에 퍼졌고 당나라에까지도 전해질 것인데 미실이 아름답게 죽어갈 수 있는 다른 뾰족한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물론 덕만이 넓은 포용력으로 미실을 보호해주고 천수를 다하고 죽게 해줄거라는 상상을 해 볼 수도 있다. 실제 드라마속에서 덕만은 '미실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적'이라고 했었고 왕이 되겠다는 자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적진에 홀로 뛰어들어 미실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이웃블로거중에 한 분이 꾸준히 주장하는게 있다. 덕만이 왕이 되는데 미실이 공을 세울 것 같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는데 그 소망이 결국 드라마 속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실제로도 이런 바램을 가진 사람들도 꽤 되는 것 같다.

'선덕여왕'의 이창섭 CP는 미실이 늙지 않고 흰머리가 없는 이유에 대해 의도가 있는 설정이며 실수나 옥에 티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극의 흐름, 캐릭터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 미실의 모습을 결정하게 된다"며 "과연 시청자들이 늙고 약해진 미실의 모습을 보고 싶어할까? 미실의 변함없는 모습은 극의 흐름, 극의 몰입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흥미와 긴장감을 더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이창섭 CP는 "나는 'CP느님'의 경지에 있으니 누구도 태클을 걸지 말라"는 정도로 보이는데 이 사람의 논리에 따른다면 시청자들이 원하니까 미실을 늙지 않게 했고 시청자들이 원하니까 미실을 아름답게 죽일 것이고 시청자들이 원하니까 미실이 마지막에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아름답게 죽게 할 것이다. 물론 드라마도 그렇게 진행된다면 또 한바탕 '최고의 반전'이라느니 '최고의 감동'이라느니하는 따위의 맹목적인 칭송이 난무할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고 'CP느님'은 그것까지도 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CP느님'의 현란한 술수로 미실에겐 거부할 수 없는 여왕의 위용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고 오히려 미실이 여왕이 되길 원하고 있다. 당나라 사신과 마주한 미실은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민족주의자가 아닌가하는 정도의 말들을 뱉어 내면서 주체성과 자존감을 지켜내 졸지에 희대의 애국자로 승화되어 버렸다. 미실에겐 드디어 '여걸'이라는 평가까지도 더해졌다. 이제 남은건 미실이 왕이 되는 것이고 드라마 전개상 이런 결말이 된다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차라리 미실을 왕으로 만드는게 나을수도 있다.


이런 'CP느님'이 어째서 역사에 대한 성찰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조차도 모르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불과 한 주 사이에 드라마는 20년 이상을 넘나들었다. 지난주엔 미실의 난이 기유년(649년)이라고 하더니 이번주엔 생뚱맞게 당나라 사신을 드라마에 끌어 들여서 628년 이전으로 돌아가버렸다. 입에 침도 안바르고 시공을 넘나드는 'CP느님'의 거짓말 신공은 가공(可恐)스럽고 가히 드라마속의 어리석은 백성들과 같은 현실의 백성들이 경외할만하다. 그의 충만한 오만은 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가가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창섭 CP는 또한 "미실이 죽음을 맞이한 뒤 향후 덕만을 대적할 라이벌로는 비담과 춘추를 꼽았다"고 하는데 그의 무지함과 뻔뻔함에 경의라도 표해야 될 지경이다.

그냥 천명을 부활시키면 간단할텐데 왜 애꿎은 소화는 두 번씩이나 죽게 했을까. 칠숙과 소화를 살려왔듯이 천명도 그렇게 뻔뻔하게 살려왔다면 덕만과 유신이 탈출하는 과정에서와 같은 터무니없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잘 뛰지도 못하는 소화를 데리고 도망을 가는데 날고 긴다는 그 많은 병사들이 단시간에 제압을 못하고 뒷꽁무니만 쫓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한다는건 그냥 이 드라마의 웃음코드라고 해두자.

'재미만 있으면 모든게 다 용서가 된다'고 했던 시청자들이 이제는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과연 재미만으로 모든게 용서되고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인지 말이다. 앞서도 여담으로 말했듯이 박정희가 일제시대에는 독립을 위해 헌신했고 독립 후에는 서민들의 권익을 위해 봉사한 희대의 영웅으로 묘사되는 드라마가 등장했는데도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넘어갈 것인지 판단해봐야 될 때다.


한국인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헤타리아'가 한국을 비하했다며 거세게 반발했었는데 단지 창작 만화일뿐인 애니메이션엔 왜 그토록 비난했었던가. 단지 한국을 비하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던가. 그렇다면 한국을 비하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 각색해도 문제 삼지 않고 봐주겠다는 것인가. 드라마 선덕여왕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정당화해주는데 앞장섰던 시청자들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미 일본,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등지에 수출이 완료됐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은 물론 아프리카와 중동, 유럽 여러나라에까지 수출되면서 한류 전도사가 된 제2의 '대장금'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문란하다고까지 할만한 성생활을 했던 희대의 색녀가 최고의 정치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여걸로 둔갑되어서 충분히 왕이 될만한데도 안타깝게 왕위에는 오르지 못했다는 이런 드라마를 본 외국인들은 한국 역사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갖게 될까.

어떤 자들은 드라마 선덕여왕이 과거 사실을 현재적 의미로 승화시켰다고 말한다. 드라마속 미실은 한국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죽는 순간까지 늙지도 않는 완벽한 미모,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문란한 성생활은 어느새 성적 매력으로 교묘하게 둔갑되어 버렸으며 출중한 무예와 지략을 겸비했고 강력한 정치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희대의 여걸이자 영웅이다. 도무지 미실을 성을 무기로 권력을 얻은 여인이라고 볼 수가 없다. 드라마속 미실은 강한데 명분과 대의를 추구하기까지 한다. 의로움을 무기로 여왕이 되어야 할 덕만은 오히려 나약하고 답답하며 대의에서마저도 미실에게 밀리고 있다. 도대체 덕만이 왕이 되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여기서 어떤 현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