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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 대비되는 시대의 아픔 눈물난다

지붕 뚫고 하이킥, 이 시트콤을 한 주에 두어번 보는데 난 볼때마다 눈물이 난다. 웃어야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웃고 있는데 난 자꾸만 눈물이 난다. 이 시트콤을 만들면서 낄낄대는 사람들은 아마도 개구리 뒷다리에 핀을 꽂고 버둥대는 모양새를 관찰하면서 박장대소할 정도로 꽤 잔인할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물론 이건 지나친 비약일 것이고 그들 모두가 실제로도 그렇겠는가? 그들도 그저 시청률 잘 나오는 시트콤을 만들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그저 그런 사람들일테지.

지붕 뚫고 하이킥.

이 시트콤은 30여년 전과 현재가 공존하고 있으며 30여년 전의 상황을 현재에 끌어내서 웃음의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시트콤의 주축인 세경과 신애 두 자매가 30여년 전이라면 나머지는 현재다.

현재 세경과 신애 두 자매는 순재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가정부다. 아니 가정부라기보다는 식모라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이 두 자매가 순재의 집에서 식모살이하는 것도 그렇지만 순재의 집으로 흘러들어온 사연은 눈물겹다. 두 자매가 엄마와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헤어지는 장면은 봤다.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이 외진 산골에 평화롭게 숨어 살던 두 자매를 아버지와 헤어지게 만들었고 천지간에 아는 곳,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궁지로 내몰아버렸다.



서울로 상경한 두 자매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서울의 모습에 어리둥절할 뿐이지만 여기에 적응할 새도 없이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되는 절박한 처지다. 세경은 신애와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고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되고 주유소에서 일을 할 기회를 얻게 되지만 주유하는 법을 잘 몰라서 번번이 실수한다. 그러다가 자동세차장에까지 들어가서 자동세차(?)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다가 결국 해고된다.

세경은 신애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 일자리를 구하려는데 무심결에 한눈을 팔다가 위치를 벗어나버린 신애를 잃어버리게 되고 신애를 찾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헤매게 된다. 혼자가 된 신애는 울면서 남의 집에 배달된 우유를 마시기도 하고 남이 먹다가 남기고 간 컵라면을 먹기도 하면서 세경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다행히도 그 둘은 헤어지지 않고 아버지와 헤어지면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던 남산에서 만나게 된다.

두 자매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순재의 집에 들어가 식모살이를 하게 되는데 신애는 순재의 외손녀 해리에게 온갖 수모를 겪어야 한다. 공주방처럼 꾸며진 해리방에 들어갔다가, 갈비를 두 개 먹었다가, 우유를 마셨다가 번번히 해리에게 뺨을 맞기도 하고 버려진 것이었음에도 도로 빼앗기고 머리털을 다 뽑아버리겠다는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세경은 가전제품의 사용법도 몰라 헤매게 되고 해리에게 청소기 사용법을 물어보다가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믹서기 사용법을 몰라 맷돌로 콩을 갈기도 한다. 밤을 새워 사용 설명서를 외우고 사용법을 익히며 적응해간다. 전입 신고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신애를 학교에 보내려하는 세경은 현재의 모든 것들이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저 먹고 잘 수 있게만 해준다면 식모살이라도 해야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잠깐 사이에 아이를 잃어버리고 온 동네를 종종걸음으로 찾아 헤매다 결국 찾지 못한채 평생을 눈물속에서 살아야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전입신고부터 하고 양쪽 학교에 알리고 전학해야 즉시 등교할 수 있다는 것을 몰라 전학을 하고도 등교하라는 통지서를 기다리면서 몇 달이나 놀다가 학교에 가야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많이 딸리면 방을 얻기도 힘들고 조금이라도 떠들면 쫓겨나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은 쥐죽은듯이 살아야만 했고 또래의 집주인 아이들의 온갖 괴롭힘을 참고 혼자 견뎌내야만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불과 30여년 전에 겪어야했던 시대적인 아픔. 숱한 오욕을 참으면서 힘겨운 삶을 꿋꿋이 살아온 앞선 세대들의 눈물과 한숨들이 이젠 고작 웃음의 소재로 전락해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우스운가? 난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난다.

세경과 신애가 30여년 전의 아픔이라면 현재의 아픔은 보석과 해리에게서 찾을 수 있는데 정음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보석은 장인 회사의 부사장이고 장인 집에 얹혀 살며 머리가 나쁘고 무능하다는 설정이지만 오늘날 아버지들의 아픔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회사에 가서는 상사나 후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시달리고 집에 와서는 자상하고 다정한 아빠와 남편이 되어주려고 애써야하지만 늘 무시당하고 구박 받기만 하다보니 서서히 주눅들어 간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워보려고 하지만 마누라 얼굴엔 호랑이가 장인의 얼굴엔 사자가 오버랩되어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만다.

순재의 손녀딸 해리, 사사건건 신애를 괴롭혀서 밉상이긴 하지만 알고 보면 해리가 가장 불쌍하다. 보석의 외동딸로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없지만 놀아줄 사람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는 참 외로운 아이다. 세경과 신애가 버려진 박스를 가져다가, 뽁뽁이를 터뜨리며, 갈비뼈로 윷을 만들어서 재밌게 노는 것을 보자 해리는 자기것이라고 모두 뺏어가서 식구들과 놀려고 하지만 아무도 놀아주지도 않고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다. 해리는 이 시대 어린아이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해변 떡실신' 사진 한 장으로 전국민의 웃음거리가 되버리고 학벌을 속이며 과외를 하면서도 겉치장에는 아낌없이 돈을 들이는 정음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아픔일수도 있다. 어쩌면 문명이 만들어낸 이기인 인터넷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모순이고 아픔의 결정판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강산이 몇 번 더 변하고난 후의 세대는 앞선 세대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까? 또 그들은 어떤 시대적인 아픔을 겪게 될까? '지붕 뚫고 하이킥' 이 시트콤을 웃기다 안웃기다로만 평가할 수 없고 이 시트콤을 보면서 눈물이 나는 또 한가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