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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선덕여왕, 미실을 위해 춘추를 멍청한 잡놈으로 희화화

드라마 선덕여왕이 갈수록 막장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젠 제작진들에게 '도대체 어디까지 막나갈 생각인지'를 대놓고 물어보고 싶다. 게다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12회 연장 방영은 확정적이고 그보다 더 연장하는 것까지 논의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는데 이 드라마는 연장이 아니라 이쯤에서 손떼고 끝내는게 낫다. 이 드라마 작가들이 시청률에 편승해서 대본을 계속 쓴다한들 그들에게 무엇이 남을까? '막장드라마'의 새로운 교본 하나를 써냈다는 성취감은 남게 될까?

춘추가 덕만과 왕위 경쟁을 한다? 춘추가 세치 혀로 미실을 역이용한다? 미실 세력을 분열시켰다고 의기양양해하며 아직 현실화되지도 않은 성취감에 취해 적들을 협박하고 야망을 드러낸다? 그러자 이번엔 미실이 의식을 바꿔 덕만과 왕위 경쟁을 시작하겠다? 한주간의 방송분만 놓고 보더라도 도대체 상식적으로 납득할만한 곳이 하나도 없다. 고작 미실이 덕만과 왕위경쟁을 한다는 설정을 위해서 얼토당토않은 얘기들로만 한주간의 방송분량을 채워놓은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일단 미뤄두더라도 춘추가 드라마속에서처럼 했다면 살아남아서 훗날 태종 무열왕에 오를 수 있을까? 출생하자마자 수나라로 건너가서 성장했고 서라벌로 돌아온지 얼마되지도 않았으며 돌아와서는 음주, 도박, 여색에 빠져 살던 춘추가 미실을 이용하겠다며 보종의 딸 보량을 납치해서 세종과 설원을 분열시키려 한다. 춘추는 현실화하지도 않은 세종과 설원의 분열을 기정사실화한채 함께 교유하던 미생에게 그 정체와 야심을 완전히 드러낸다. 천명공주의 딸이라는 것외엔 서라벌에 아무런 지지기반도 없는 춘추는 이러고도 왕위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왕위경쟁은 고사하고 그 목숨이나 온전히 보전할 수 있을까?



본시 왕위경쟁이라는건 왕위를 경쟁하는 당사자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그 추종세력들에 의해서라도 왕위 경쟁의 싹수가 있다면 제거되는게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오직 미실의 뜻에 추종세력들은 절대복종하고 있으며 그 미실은 이미 드라마속에서 멋대로 진지왕을 옹립했다가 폐위시키고 천명과 혼인한 용수가 위협세력으로 성장하려고 하자 전장으로 내몰아 제거하지 않았던가. 헌데 그 아들 춘추가 자기 세력을 분열시키며 위협세력이 되려한다면, 자기가 낳은 자식까지도 버렸던 미실이 춘추가 보량을 납치해서 혼인했다하나 과연 춘추를 살려두었을까?

김춘추는 정치적, 외교적으로 타고난 역량이 있었고 이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다른 진골 출신들을 제치고 왕위에까지 올랐는데 여기에는 김춘추의 수완과 김유신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춘추는 '미실보다 오래 살거라'고 공언하고 화백회의에 나가 '골품제는 천한 제도'라고 으름짱을 놓으며 교유하던 미생에게는 보량을 납치한 의도를 보여주고 협박하기까지 한다. 아무런 지지기반도 갖지 못한 춘추가 이렇게 했다면 왕위가 아니라 목숨 보존을 먼저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드라마 제작진들은 시청률을 위해서 춘추를 천하에 멍청한 잡놈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등장인물들의 나이만 들이대도 얼마나 엉터리인지는 금방 드러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춘추는 어렸을 때 어머니 천명공주에 의해 수나라로 보내지고 거기서 약 10년을 머물다 천명공주가 불의의 사고로 서거하자 미실이 먼저 손을 써서 귀국시킨다. 춘추의 나이를 대략 추정해보면 열서너살 전후일 것인데 이런 춘추가 미생과 교유하면서 음주, 도박, 여색에 빠져 지낸다. 그러면서 미실과 덕만의 세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자기 입지를 구축하고 덕만과 왕위경쟁을 한다니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물론 춘추가 수나라로 가 성장했다는 기록도 없지만 덕만과 왕위경쟁을 할 처지도 아니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왜곡이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거나 비문의 글자 몇 개를 지우는 것만이 역사왜곡이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야말로 역사를 가장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물론 이건 드라마이기에 작가의 상상이 가미되고 작가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내놓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역사적 상식에 바탕했을때 가능한 것이지 이 드라마처럼 얼토당토않은 내용으로 역사적 상식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이건 재해석이 아니라 역사 왜곡에 해당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가 "가능하면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인터뷰를 했었다는데 참 해괴하고 무책임한 소리다.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마저도 완전히 무시해버린 장본인이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니 '농담따먹기'라도 하자는건가?

이 드라마는 향후 해외로 수출되어 외국인들에게도 보여질 것인데 그것을 본 외국인들이 한국 역사를 왜곡해서 생각하게 된다면 그들에게도 한국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할 것인가? 외국인들은 그냥 판타지 드라마로만 시청하게 될 것이고 한국역사에 대해서 왜곡된 인식을 갖지는 않을거라고 강변하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비재'라든가 '낭장결의'라든가 '어출쌍생성골남진'이라든가 작가의 신선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상식을 완전히 무시해버린 지금에 와서는 이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우물에서 피가 나오고 커다란 돌부처나 비석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갖가지 조잡한 설정들을 등장시켜 희화화시키는 것들은 다 좋다. 궁궐앞에 그 큰 돌부처와 비석을 파묻으려면 엄청난 공사가 진행되었을텐데 이를 왕이나 왕족들도 전혀 모르고 당시에 백성들은 왕궁앞에 얼씬도 못했는지 백성들중 아무도 이런 대공사를 전혀 보지도 못했고 몰랐을수도 있다고 해두자.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설정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최소한의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역사는 무시하거나 바꾸지 말아야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내용을 요구하는 정도도 아니고 최소한의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완전히 엉뚱한 방향에서 역사를 왜곡시켜 그려내면서 이를 판타지 드라마로 봐달라고 억지부리지 말라는 말이다. 지금 현재의 드라마 선덕여왕은 사극의 새로운 시도라 봐줄수도 없으며 역사왜곡의 첨병 역할을 하는 드라마일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들은 연장방영을 고민할게 아니라 서둘러 봉합하고 끝내는게 답이다. 향후 사극을 제작할 때 작가적 관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건 좋지만 역사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 왜곡하는 짓은 지양되어야 한다. 판타지 드라마라고 하려면 역사에 존재하는 실존인물들을 등장시키지 말아야하고 그 시대를 추정할 수 있는 설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