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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스타' 이진아를 지켜낸 대중의 위대한 힘

 

 

'K팝스타' 세미 파이널은 미리 뻔한 시나리오를 워낙 노골적으로 홍보해버렸기에 긴장감이나 기대감이 전혀 없었고 시간을 내 그걸 확인하는 정도의 소모적인 일일 뿐인지라 방송을 시청하지 않았고 포탈 헤드라인으로 결과만 확인했다. 예상했던 시나리오 그대로 진행됐는데 콜라보 순서 조정이라는 조잡하고 유치한 짓까지 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는 것만 달랐을 뿐이다.

이런 데 시간을 소비하느니 솔지('복면가왕'을 통해 더 널리 알려졌지만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간다' 영상을 보고 홀딱 반했기에 복면가왕이 솔지란 걸 알았을 때는 "솔지, 역시!"였고, 눈물 흘리는 하니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는 정도의 감상이었다)의 마리아를 보고, '앙칼진 백고양이'를 보는 게 훨씬 낫다.

차라리 그 전날 방송된 박지민, 백예린의 무대를 다시 돌려보는 게 더 생산적이다. 박지민이야 이미 공개적으로 검증이 된 터라 예견이 가능하기에 특별히 더 놀라울 건 없었지만 나로선 처음 들어본 백예린은 정말 단 한 방으로 듣는 사람을 넉아웃시켜버렸으니 말 그대로 '톤 깡패'다. 이런 무시무시한 어린 두 깡패가 대중의 인지도를 넓히지 못하고 묻혀버리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쓸데없이 이런 걸 언급하는 이유는 'K팝스타'가 프로그램의 흥행과 그 후의 프로듀싱의 편의를 위해 의도적으로 터무니없이 상황을 조장해 나가는 것은 결국 다른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될 거라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K팝스타' 주최측이 현재의 태도와 수준을 견지한다면 'K팝스타' 시즌5는 필시 방송 편성 시간대 변경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미 대중은 오래 전부터 경고 사인을 보내고 있는데도 그 교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어쩌면 프로그램 폐지까지도 고려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지도 모를 것이다.

이진아의 음악성? 알 바 아니다.

이진아라는 걸출한 뮤지션의 출현을 놓고 워낙 큰 논란이 일었던 터라 한 음악 소비자로서의 감상, 이진아는 전문 음악인이라도 어떤 평가를 할 만한 클래스는 아닌 것 같은데 음악 소비자가 음악성에 대해 평가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음악을 들은 감상(感想)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이진아의 음악성이 얼마나 빼어난지는 사실 잘 알지 못하지만 이진아를 깎아내리고 폄하하는 자들이 이진아의 음악성에 대해서만큼은 언급을 삼가하는 것 같다. 서 푼 어치 지식으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 듯 날뛰는 자들이 이진아의 음악성에 대해서는 함부로 껄떡대지 못 하는 것을 보면 이진아의 음악성이 빼어나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없는 사실인 모양이다.

그런데 음악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뮤지션의 음악성이 어떠한가는 별로 의미가 없다. 뮤지션이 major를 때리고 나오든, add9을 때리고 나오든, sus4를 때리고 나오든, 코드 전개를 어떻게 하든, 화성과 대위법을 어떻게 사용하든, 알 바도 아니고 알 필요도 없고 알지도 못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 들었을 때 좋으면 지갑을 여는 것이고 별로이면 그냥 돌아서버리면 그만이다. 음악을 힘들게 만들었을 뮤지션에겐 냉정하고 가혹하겠지만 음악 소비자로서의 선택은 단순하고 간단하다.

이진아의 음악은 복합적인 감성을 갖는 듯하다. 아마 이 부분에서 짧은 몇 마디의 인상적인 후렴구만으로 끌어가는 기존 대중가요('아줌마', '좋아'만 갖고 3분여를 끌어가는 노래도 있다ㅋ)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생경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진아의 '시간아 천천히'를 들었을 때만 해도 심사원들이 과하게 오버한다고 느껴져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후 '마음대로'는 처음 건반을 때리면서부터 박진영의 표현을 빌자면 '정신을 잃었다'. 이런 음악을 오디션 프로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라는 감정은 이내 음악의 제작, 홍보, 유통을 움켜쥐고 있는 주류의 횡포에 대한 강한 반감에 밀려나버렸다.

"망해도 좋아, 돈 못 벌어도 좋아, 그래도 데려가고 싶다, 이런 거다. 나 들으려고. 그런 레벨이다." 그 이전의 '시간아 천천히'를 듣고 난 박진영이 했었던 저 엄청난 평가에 비로소 공감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박진영의 그 말이 주류의 비루한 변명인 것처럼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왔다.

EXID 솔지, 이미지 출처 ; 경인일보

이진아의 음악을 들으면 '어린 왕자'를 보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파우스트가 등장한다. 이진아가 마치 그 치열한 파우스트인 것처럼 보였는데 내가 파우스트였고 이진아는 나를 신들에게 인도하는 천사가 되어 있다. 그러다가 싱클레어가 나타나 갇힌 한정된 세계를 파괴하고 아프락사스에게 인도하는 듯했는데 갑자기 또 온갖 악천후를 무릅쓰고 '야간비행'을 하고 있는 파비앙이 나타난다.

이진아는 건반만 두드리고 있음이 분명한데 갑자기 그 뒤에서 엄청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가 밀려오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박진영의 발언 중에 '흑인 바하'란 말에 내가 무릎을 탁 쳤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미 전파를 탐으로써 걸러졌을 텐데도 이러하다면 현장에서 들었을 때는 엄청날 것 같다. 독립적인 것들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낸 이진아의 음악이 공간을 타고 마치 쓰나미처럼 밀려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 딱히 뭐라고 꼬집어 표현하기는 어려운 그런 감동을 준다.

이진아가 들려주는 음악은 참 쉽고 간단하지만 그걸 통해서 내가 느끼는 감성은 굉장히 복합적이고 변화무쌍하다. 또한 이진아도 조용히 피아노 건반만 두드리고 있음에도 Puritan 같기도 하고 광야에 서 있는 선구자 같기도 하고 하얀 눈 속에서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는 구도자 같기도 하고 매우 복합적인 감상을 갖게 한다. 이진아는 너무나도 쉽고 편안하게 노래를 만들고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왠지 그 모습이 매우 치열하게 느껴진다.

나는 아마 '권저씨'였던 모양이다

이진아는 그 음악이 궁금해지는 오디션 참가자다. '음악이 궁금해진다' 함은 기성 뮤지션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보통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다음 무대가 기대되는 참가자들은 많지만 음악이 궁금해지는 참가자는 셋 정도로서 'K팝스타'에 둘인데 지난 시즌 권진아와 이번 시즌의 이진아다.

권진아는 이번 시즌의 케이티김과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실력을 가졌음에도 첫 라운드가 통편집됐다. 그로 인해 이미 형성되어 있던 팬덤의 견제를 받으며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다가 서서히 그 실력을 인정받으며 대중들의 지지도 넓어지게 됐다.

나 역시도 권진아가 가장 낫지 않느냐는 의견이었는데 그 즈음에 포탈을 검색하다가 눈에 띄어 빵 터졌던 말이 있는데 "권저씨 vs 버줌마"라는 거였다. 당시 내가 권진아에 대해 어떤 의견을 피력했다면 나는 꼼짝없이 '권저씨'로 몰려 '버줌마'들의 맹목적인 맹공을 받았을 테니 아찔하다.

그런데 이번 시즌엔 주류가 워낙 적나라하게 저급한 속내를 드러냈던 터라 정승환이 보완을 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써서 발행했고, 간략하게 케이티김과 이진아에 대한 소감을 첨부했다. 그랬더니 뜬금없이 이진아 팬으로 몰려버렸다. 나는 오히려 케이티김에 대해서 더 호의적으로 기술했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이진아 팬으로 몰린 건 아마도 정승환 팬들이 가장 경계하는 후보자가 이진아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볼 뿐이다.

백예린, 박지민, 이미지 출처 ; 경인일보

그런데 나는 '권저씨'도 아니고 이진아 팬도 아니다. 기성 가수 중에서도 음반을 내면 일단 소비하고 보는 가수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도 안 된다. 그런데 무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누구의 팬이 되겠나. 나는 그런 맹목적 우상 숭배 유전자는 없고,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누굴 응원하기 위해 휴대전화 요금을 낭비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자본의 천박한 상술에 놀아날 이유가 없다.

이진아는 심사가 아닌 소비(how much)의 대상

박진영이 이진아의 산울림 회상 무대에서 100 점을 눌렀듯이 이진아는 어떤 평가나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 그 음악을 소비할까 말까만 결정하면 되는 소비의 대상이다. 즉 기성 뮤지션이 음악을 발표했다면 거기에 대해서 어떤 점수를 매기는 것은 무의미하고 지갑을 열까 말까만 결정하면 되는 것과 같다.

이진아가 음악성을 두루 갖춘 아티스트로 평가받음으로써 저평가받고 있지만 이진아는 보컬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속된 말로 '혀 짧은 소리', 상당수가 거부감을 갖게 만드는 목소리라는 보컬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는 단점을 가졌기에 보컬에 대한 비난이 힘을 얻고 있지만. 사실은 나 역시도 이런 목소리에 거부감을 갖는 축에 속하고 아마 현실에서 만났다면 결코 쉽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왠걸, 어쩐 일인지 이진아의 보컬은 그 음악성과는 상관없이 정말 매력적으로 들린다. 꾸미지 않은 그 소박하고 담백하고 깨끗함이 나는 참 좋고 편안하다.

그 보컬이 빛을 발한 게 산울림 '회상'이고, 연이어 정승환과 함께한 '벌써일년'에서도 도드라졌다. 산울림의 회상은 엄청나다. 현장에서도 박수갈채가 터져나오던데 피아노 칠 때는 온 몸이 뒤틀리는 것 같고 진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고개는 까딱거리고 있고.

산울림의 회상에 대해 갖는 내 감성은 쓸쓸함 보다는 그 쓸쓸함 뒤에 타고 흐르는 따뜻함이다. 김창완의 보컬 톤이 마치 산 속에 흘러가는 개울 소리같이 맑은데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쓸쓸함이 따뜻함으로 받아들여진다. 근래에 김창완이 불렀던 회상을 들어보면 예의 그 따뜻함 보다는 아주 차갑고 진한 고독과 쓸쓸함으로 풀어내고 있는 듯하다.

이진아의 회상도 쓸쓸함을 따뜻하게 풀어내고 있는 듯이 받아들여졌는데 여자의 감성으로 바뀌어서인지는 몰라도 기본 멜로디 라인은 그대로 가져갔음에도 마치 새로운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노래가 맞는데, 내가 알고 있는 그 노래가 맞나 하는 신기함이랄까.

'벌써일년'은 오롯이 정승환에게 맞춰 정승환의 보컬이 돋보이게 편곡을 했던 것 같다. 다만 정승환이 그 곡의 감성을 제대로 소화해서 표현할 수 있느냐만 불안요소였다. 그런데 먼저 이진아가 자연스럽게 리드를 해 나감으로써 해결을 해냈는데 그 곡의 감성을 소화하고 멋있게 표현해낸 것은 역시 정승환의 능력이다.

이진아는 '벌써일년'을 이진아의 기본 스타일과는 약간 다르게 접근한 것 같다. 이진아의 음악은 각각의 독립적인 것들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내는데 '벌써일년'의 경우에는 정승환의 보컬을 보조함으로써 정승환의 보컬이 더욱 더 돋보이게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것은 대중에게 익숙한 대중가요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자기의 스타일도 조금씩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이진아, 산울림 회상

양현석이 방송 말미에 '벌써일년' 콜라보 무대를 언급하며 재차 정승환의 보컬을 칭찬하는데 그게 바로 이진아의 이러한 음악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양현석이 그렇게 몰아간 것은 설마 양현석이 그걸 몰랐을 리는 없고(진짜 몰랐다면 답이 없고)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을 거다. 그런 식으로 대중의 간을 보는 그 가증스러움이 바로 양현석이 최고의 프로듀서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그런데 권진아와의 콜라보 영상을 보면 또 다른데 이진아는 양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클래스인 것 같고 단순한 음악 소비자인 내가 이진아의 음악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확실히 능력 밖의 일이다. 하여튼 이런 탁월한 클래스인 뮤지션의 음악을 다른 곳도 아니고 오디션 프로에서 들어야 한다는 한국 음악시장의 현실은 몹시 슬픈 일이다.

이진아를 지켜낸 대중의 위대한 힘

이진아는 TOP4 결정전에서 탈락할 줄 알았다. 사실 방송 초기부터 워낙 집요하게 이진아를 깎아내리고 폄하해 왔기에 TOP10에 든 것만으로도 굉장히 유의미한 결과를 냈다고 봤다. 주최측에서 어찌할 수 없는 약간의 대진운도 있었지만 TOP6는 완전 센세이셔널한 일대 사건인 것이다.

당시 탈락한 박윤하, 에스더김은 주류의 든든한 지원사격을 받던 후보자들이었다. 특히 박윤하는 케이티김과 더불어 첫 음을 때리면서부터 듣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고, 정승환과 함께 주류의 지분을 양분하며 큰 반향을 일으키던 그런 후보자였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이진아가 탈락하는 줄 알았다. 심사원들이 애매하게 점수를 준 것도 그런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서로 찾아낸 타협점이라고 봤다. 그런데 이진아가 이기는, 다른 누구보다 심사원들을 가장 당황시키고 놀라게 만들어버린, 결과가 나와버렸다. "이뭣꼬?"

이진아가 이겼다. 아니 이진아를 응원하는 대중의 위대한 힘이 심사원들의 잔머리를 이겼다. 누구보다 놀란 건 상기한 가증스러운, 좋게 표현하면 대중의 니즈를 잘 파악하는, 양현석이었을 거다. 대중의 전화투표가 주류의 의도와 다르게 반응하며 경고를 한 지는 꽤 됐다. 그런데 이진아가 전화 투표에서 박윤하를 눌러버릴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았다. 이진아의 팬덤이 그렇게 단단해 보이지는 않았고, 보컬이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고 있었기에 예상을 전혀 못했는데 그러한 결과가 나와버렸다.

이진아가 TOP3까지 올라간 엄청난 사건과 함께 이번 시즌에서 가장 의미있는 사건은 조용히 이성적으로 움직인 대중이 그 위대한 힘으로 심사원들을 잔뜩 긴장시키고 얼어붙게 만든 것이었다고 본다.

이진아의 음악은 담백하고 밝고 따뜻하다. 피아노를 아주 매혹적으로 치지만 자기 실력을 과시하려는 교만함이 없고 아주 겸손해서 불편하지 않다. 전문가들도 함부로 평가하기를 꺼려하는 그 어려운 음악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만들어내서 아주 쉽게 들려주는 음악 소비자에 대한 그 따뜻한 배려심이 또 좋다. 베토벤은 특권층이나 '보통 사람을 무시하고 찍어누르는 대중'을 위한 음악이 아닌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데 나는 이진아의 음악에서 이런 치밀함과 치열함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진아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주류와 그들의 맹목적인 대중에게 상처받거나 좌절하지 않고 계속 '노래 만들고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는 가수'로서 그의 좋은 음악을 계속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첨) 텐아시아 접속 주의, 뭔가 불안 요소가 있는 듯, 텐아시아는 사이트 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