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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딸 서영이' 늘어지게 팔자 좋은 차지선 여사

 
 
 
'내딸 서영이'에는 다섯 명의 어머니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중에서 가장 팔자 좋은 어머니는 차지선이다. 한데 이렇게 팔자 좋은 차지선이 또 시청자들로부터 지대한 동정과 공감을 받고 있는 듯하다. 다들 차지선 만큼의 호사를 누리고 살아가는 로얄패밀리들이어서일까, 아니면 그 늘어지게 팔자 좋은 로얄패밀리들에 대한 동경일까. 단지 작가 느님의 역량으로만 치부하기엔 이러한 이상 현상을 보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영 껄쩍지근하다.
 
차지선이 이처럼 동정을 받는 데는 강성재라는 캐릭터가 안고 있는 출생의 비밀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듯하다. 차지선을 면박주기 십상인 강기범이 안 그래도 꼴 보기 싫던 차에 급기야 혼외자를 집안에 들이기까지 했었고, 그런 혼외자인 강성재를 친자식 이상으로 금이야 옥이야 키워냈던 차지선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으니, 어찌된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야 뒷전이고 오로지 강기범만이 만인의 공적이 되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당연시되는 게 인간세상 아니던가.
 
차지선을 제외한 네 명의 어머니들의 행실머리 혹은 행적을 좀 보자. 차지선의 여고 동창생으로서 여상을 졸업한 학력으로 명문대 출신에다가 훤칠한 외모에다가 안정적 직업까지 가진 최민석을 만나 일곱 살 난 전처 자식을 키우고 살아도 언감생심 넘볼 수 없을 인생 최고의 행운을 잡았다고 기뻐하며 결혼해 악착을 떨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운 좋게 재테크에 성공해 돈푼 깨나 만지게 되자 남편 닦달하며 주눅들게 하고 전처 자식은 소 닭 보듯 외면하며 집에서 내쫓을 궁리나 하는 김강순.
 
자기가 다니는 회사 사장이자 유부남인 강기범이 만취해 인사불성인 틈을 타 다짜고짜 덮쳐서 생겨난 아이를 강기범의 집에 몰래 넣어 놓고, 그것도 사모님인 차지선이 집에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들어와 강기범을 덮쳐서 임신까지 해놓고는 강기범의 아이라고 당당하게 큰소리치고 이제 모든 사실이 드러났으니 자기가 데려가 엄마 노릇하겠다고 뻔뻔하게 막무가내로 우기는 윤소미.
 
남편인 이삼재가 실직한 후 허황한 재기를 노리며 빌려 쓴 사채 때문에 찾아온 빚쟁이들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공부 잘하고 똑똑한 두 아이들을 뒷바라지했고, 이서영이 학교를 자퇴하고 배달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억장이 무너지지만 차마 서영의 뜻을 꺾을 수 없어 혼자 속앓이를 하기도 하는 등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려왔으나 갑작스런 심장병으로 입원해 남편이 경마장에서 도박하는 동안 수술 도중 외롭게 사망해버린 이상우와 서영의 어머니.
 
30대 중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남편이 하던 목공 가구점을 운영하며 아들 하나 죽자 살자 키워 유학까지 보내놓고, 점점 장사가 안 돼 형편이 어려워지자 유학 비용에 보태기 위해 홀로 10 년 간이나 살았던 정든 안채를 이상우네 식구에게 세놓고 뒷방으로 물러나 살고, 늘 남자들이나 입는 군복 차림에 모자 하나 눌러쓰고 기 센 척하며 살아가는 어머니 방심덕.
 

 

 

 
이 어머니들을 다 제치고 시청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감과 동정을 받고 있으니 하여튼 차지선 여사는 이래저래 참 늘어지게 팔자 좋은 캐릭터다. 그런데 비록 정신은 안드로메다에 가 있을지언정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돈 아쉬운 것 모르고 펑펑 써가며 속 편하게 살고 있음에도 차지선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공감을 받고 강기범은 만인의 공적으로 몰려야 마땅할까?

 
일전에 강기범에 대해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재력에 무릎 꿇을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평한 기사를 읽었다. 개개인의 평가야 다르다고 전제하더라도 그 기자는 뭘 잘 모르든가 아니면 차지선의 처지에 공감할 만큼의 좋은 팔자든가 뭐 그런 단순한 관점에서 쓴 기사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황색 언론 기사들의 뻔한 수준 탓으로 치부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젠 체하기 좋아하는 자들은 특히 자칭 멘토라고 떠벌이고 다니는 군상들은 참 쉽고 무책임한 말들을 내뱉고 다닌다. '돈이 학벌이 스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등등의 입에 발린 소리들을 그럴싸하게 떠벌이고 다니는데 이 자들 참 솔직하지 못하고 비겁하다. 자칭 멘토라고 떠벌이고 다니는 군상들도 결국은 다 뒤로는 자기네 돈 벌어먹기 위한 꿍꿍이셈이 있어서 그러고 돌아다니는 것 아니던가.
 
뒤에서는 하다못해 거마비라도 한 푼이라도 더 올려받으려고 인상 찌푸리며 꿈쩍도 안 하는 자들이 막상 돈을 받고 나서는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떠들고 다니고, 학벌과 스펙 덕에 돈 벌고 돌아다니는 주제에 공부가 스펙이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등의 뜬구름 잡는 말들을 잘도 떠들고 돌아다니고, 많은 돈을 제시하면 만사 제치고 달려와 먼저 고개 숙이며 복종하던 자들이 무대 위에 서면 '사람들은 돈의 권위에 복종할 뿐이다'라고 떠들고 다니니 참으로 웃기지 않은가.
 
각설하고, 강기범은 단지 돈의 권위만을 앞세워 우악스럽게 타인들을 굴복시켜 부려먹는 무지막지한 캐릭터가 아니다. 강기범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현재의 부를 이루어낸 것이지 사회적 약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등의 부정한 수단 방법을 동원해 축적한 게 아니다. 사람들은 단지 강기범이 가진 돈의 권위에 무릎 꿇고 복종하는 게 아니라 강기범의 유능하고 책임감 강한 기업가로서의 면모에 사람들은 강기범을 존경하고 신뢰하며 따르는 것이다.
 
 

 
강기범은 자신의 어깨에 올라앉은 직원이 만 명이 넘어 혼자만의 몸이 아니라는 강한 책임감을 갖고 기업을 운영한다. 그 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야근수당 하나라도 제때에 정상적으로 지급될 수 있게 일일이 챙기고 협력업체까지도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사장이다. 강기범은 만 명이 넘는 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많은 협력업체 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감을 갖는 존경받아야 할 기업인인 것이다. 물론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기업인이겠지만 말이다.

 
반면에 차지선은 저런 여자에게 과연 걱정거리란 게 있을까 의문이 드는 부잣집 마나님이다. 차지선은 집안에서 가정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게 전혀 없어보인다. 잡다한 가사는 입주 가사도우미가 다 떠맡아서 하고, 자식들 모두 큰 말썽 없이 잘 커줬고, 밖에 나가면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대우 받고, 시집살이 시키는 시부모나 시누이도 없고... 차지선은 한마디로 세상에서 이보다 더 속편한 팔자가 있을까 싶은 여자로서 맨말 사랑타령이나 하고 사이좋은 아들 며느리 질투나 하고 사는 단순한 여자다.
 
너른 정원에 우아하게 앉아 가사 도우미가 내다주는 차를 마시고, 친구 김강순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라고 속으로 비웃을 정도로 만날 때마다 남편과 며느리 흉보고, 생일날 수많은 풍선으로 장식된 거실에 앉아 강성재가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도 듣고, 거실에 우아하게 앉아 책을 읽으며 가사 도우미에게 지시만 하면 되고, 한낮에 쇼파에 누워 늘어지게 자고, 저녁 열 시도 안된 시간에 거실에서 자다가 아들 며느리가 들어오면 잠을 깨웠다고 투덜거리고...... 이렇게나 속편하게 호사를 누리며 살고 있는 차지선이 불평 불만 그것도 사랑타령이나 늘어놓는다는 건 참 배부른 소리고 양심 없는 짓 아닌가.
 
돈과 권력의 권위의 혜택을 만끽하며 사는 것은 차지선
 
차지선이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고 말한다면 웃기는 일이다. 차지선이야말로 강기범이 가진 돈의 권위 덕을 톡톡히 보고 사는 캐릭터 아닌가? 아버지 잘 둔 덕에 아쉬운 것 없이 공주처럼 자라 돈 많은 강기범에게 시집 와 사모님 대접 받으며 살아왔다. 아버지의 권력과 남편의 돈이 만들어내는 권위의 혜택을 만끽하면서 살고 있는 건 차지선이다. 차지선에게 고개 숙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차지선이 아니라 차지선의 배후에 있는 돈과 권력의 권위에 무릎 꿇을 뿐이라는 말이다.
 
 

 
솔직히 차지선이 이혼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도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강기범에게서 두둑하게 받아낼 위자료와 분할할 재산이 있다는 든든하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 아닌가? 강기범에게 돈이 없었으면 차지선이 과연 강기범의 외모만 보고 다짜고짜 결혼하려고 했을까? 만약 강기범이 어려운 형편이었고 마누라만 쳐다보고 살았다 한들 차지선은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연명하며 가정을 지켜냈을까? 안드로메다에 정신줄 놓고 온 차지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럼 강기범의 자식들은 또 어떤가? 강기범이 돈 많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강우재는 굴지의 기업에서 부사장에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윤소미는 유부남 강기범이 만취한 틈을 타 덮쳐 강성재를 낳고 강기범의 집으로 들여보내 키우려고 했을까? 강성재는 마음고생 없이 호의호식하고 부잣집 도련님으로 대우받고 제 잘난 멋에 취해 우쭐대며 서은수에게 상처주고 살아올 수 있었을까? 만약 강기범이 어려운 형편이었다면 이 집 삼남매는 과연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차지선이 사랑 없는 정략결혼을 했으니 돈이 전부가 아니고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혼하겠다고 큰소리 뻥뻥 쳐봐야 아버지한테 알리지도 못하고 친정으로는 들어갈 생각도 못하는 주제가 차지선 아닌가? 정략 결혼의 문제와 그 책임은 왜 강기범한테만 있다며 따지고 드는지 황당한 일이다. 강기범에게 첫 눈에 반해 결혼을 선택했던 차지선 쪽에 오히려 정략 결혼의 문제와 책임이 더 크다고 봐야 될 듯한데 말이다. 평생 아버지의 권력과 남편의 돈이 가진 권위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살아왔기에 그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 차지선의 헛소리는 볼수록 참 아스트랄하다.
 
남편 강기범이 외도를 했던 건 사실인 듯하나 차지선과는 달리 밖에 나가 마누라 흉보는 짓은 하지 않았고 가정의 평온을 깨뜨리는 짓도 하지 않았다. 차지선의 고민은 사실 차지선 혼자 눈덩이처럼 부풀린 의심이 대부분이다. 강성재에 얽힌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기는 했으나 강성재의 출생은 강기범의 탓으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윤소미 혼자서 저지른 잘못된 선택이었고, 대문 앞에 버려둔 강성재를 경찰서에 연락해 돌려보내려고 했던 강기범의 의견을 묵살하고 직접 키우겠다며 고집부리고 우긴 건 차지선이었다.
 
차지선은 그렇게 강성재를 키우면서 강우재와 강미경을 다 키워놓고 생긴 공허함을 메우고 이런 저런 스트레스도 풀며 행복하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모든 책임을 강기범에게 돌려서 불평하며 20년 넘게 강기범 아들 강우재를 키우느라 봉사했다고 닦달하고, 그래도 엄마가 받아주기를 바라며 품 안으로 들어오려는 강성재에게 독기 어린 말로 내쳐버린 차지선이 남 탓하고 욕할 만한 처지는 아닌 듯하다.
 
작가는 강기범 차지선 부부가 티격태격 싸우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꽤 비중있게 등장시킨다. 아마도 두 캐릭터를 통해 남녀 간의 어법 차이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 말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강기범의 직설적인 어법이 다소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나 사리에 어긋난 틀린 말을 한 적은 없다. 예를 들면 강우재가 산책을 나갔다가 차에 치일 뻔한 일이 있었을 때 차지선이 '너도 굴렀다면서 그깟 회의 취소하고 오늘 쉬라'고 하자 강기범이 '그깟 구른 거 갖고 하루 쉬면서 회사 경영하면 차 여사도 CEO 해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거나, 강기범이 하도 코 골고 들썩들썩 못자게 한다며 차지선이 밤마다 침대 끝에 매달려 부스럭대다가 툭하면 떨어지니까 침대를 하나 들인다거나, 대개 그런 식이다.
 
 

 
반면 차지선의 어법은 워낙 횡설수설하며 희한하게 비약시키는지라 슬그머니 짜증이 날 때가 많다. 아마도 차지선의 캐릭터가 워낙 황당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강기범 차지선 부부가 티격태격 싸우는 에피소드를 보면 참 재밌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강기범과 차지선의 어법 차이를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을 만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본다.

 
최민석이 회사를 그만 두고 강기범과 차지선이 한바탕 싸운다. 최민석의 퇴사 사실을 안 김강순이 차지선을 찾아와 따지고 간 불똥이 강기범에게 튄 것이다. 차지선은 퇴근하고 현관문 열고 들어서는 강기범을 붙잡고 왜 한마디 상의도 귀띔도 안해줄 수가 있냐는 거고 그 때문에 김강순 앞에서 면목이 없었기에 기분 나쁘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따진다. 강기범은 말했으면 사표 말릴 수 있었냐고 대꾸하는데 차지선은 사춘기 단짝인데 그 정도도 못 막아주냐고 얘기를 비약한다.
 
강기범은 자릴 피해 방으로 들어가지만 차지선이 따라들어와 왜 말 안 해줬냐고 또 따진다. 강기범은 친구 민석이의 부탁이었는데 어떻게 말을 하냐고 대꾸하는데 차지선은 또 "그러니까 지금 마누라보다 당신 친구가 귀하다 이거냐"며 또 얘기를 비약시킨다. 그리고는 강기범에게 절교니까 앞으로는 말 걸지 말라고 쏘아붙이고 거실로 나간다. 혼자남은 강기범은 부부사이에는 절교가 아니라 이혼하자고 해야 되는 거라고 혀를 차며 못마땅해한다.
 
3년 넘게 여자가 우주인 남자는 없다며 마누라에게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집 밖에서 풀려고 하지만 남한테 마누라 흉보지 않고 잠은 반드시 집에 들어와서 자는 등 가정의 평온을 지키려 애쓰는 강기범, 한눈에 반해 정략결혼을 선택해놓고 각종 기념일 챙겨라 선물 챙겨라 이벤트 챙겨라 등등의 사랑타령이나 하면서 남편 들들 볶으며 사는 차지선, 둘 간에 숙명적으로 벌어지는 사랑과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
 
프랑스의 한 유명한 작가는 "사랑하는 여자와 갈등이 생겼을 때 여자를 이치로 따져 설득할 수는 없다. 남자가 위로해 주면 된다. 침묵을 지키면 된다. 참으면 된다."고 했단다. 그런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게 아닌가 싶다. 이치로 따져 설득할 수 없다는 맞으나 침묵을 지키고 참으면 된다는 틀렸다. 침묵하고 참아도 문제고 말을 하고 안 참아도 문제고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다. 강기범은 이치를 들어 따지는데다가 침묵하지 않고 참지 않으니 종국엔 차지선에게 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차지선이 마술사에게 속아 간통에 불륜으로 경찰서에 연행되었을 때 강기범은 이서영을 불렀다. 차지선은 어떻게 이서영을 부를 수 있느냐고 투덜거리지만 강기범이 그 짧은 순간에 이서영을 떠올리고 불렀던 것은 그만큼 이서영을 신뢰하고 있다는 얘기다. 강기범이 이서영을 며느리로 받아들인 것도 장삿속이었다고 비난받지만 실은 아들인 강우재를 믿었고 그 아들이 인생을 올인할 정도의 여자라면 뒷조사고 뭐고 필요없이 믿고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거였다.
 
반면 차지선은 30 년을 살고도 강기범의 신뢰를 못 얻었다. 차지선이 간통에 불륜으로 경찰서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강기범은 먼저 위너스 사모라고 얘기했냐고부터 물어본다. 마누라가 얼마나 미덥지 못했으면 저럴까 싶지만 차지선의 황당한 행실머리를 보면 전적으로 강기범의 입장이 이해된다. 차지선이 간통 혐의로 경찰서에 갔다는 소문만으로도 위너스의 기업 이미지는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차지선의 혐의가 무고하다고 밝혀져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적으로 막아야 할 것은 차지선의 입이고 다음은 사기꾼들의 입이고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그 다음이다.
 
 

 
차지선이 농락당한 배영택 부부는 신참 새끼 변호사 수준의 이서영이 던진 미끼란 미끼는 알아서 척척 물고 술술 털어놓는데 사기꾼이라고 하기에도 머쓱할 정도로 어설프다. 사건이 정리된 후 그런 얼치기한테서 전화가 오자 차지선이 또 나가서 만난다는 것도 우습지만 배영택이 강기범에게 '사장님은 우습고, 사모님은 존경스럽습니다'라고 헛소리하는 장면은 실소를 참을 수가 없다. 차지선이 배영택을 봐줬다는데 차지선은 뭘 봐주고 말고 할 게 전혀 없다. 또한 진짜 재벌에게 걸려서 변호사들이 도열해 있는 지하실에 끌려가 야구방망이로 피터지게 맞아봐야 비로소 강기범이 존경스럽게 보이려나?

 
또 황당한 건 위너스 협력업체 사장이 악감정을 품고 배영택 부부를 사주했다는 것과 그럼에도 강우재는 그걸 또 봐준다는 거다. 이 협력업체 안 사장은 2 년 전에도 소재 원단을 속여 위너스 상품을 쓰레기로 만들었으나 문제 삼지 않고 봐줬다. 그랬는데 얼마전엔 또 회사 디자인을 다른 업체에 팔아넘겼지만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고 덮어줬다. 강기범은 그 협력업체에게 충분히 편의를 봐줬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사장 부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고 했다. 이런 자를 봐주는 건 잘한 일도 아니고 강우재가 이삼재의 말을 떠올려 두 경우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가당치도 않다.
 
강우재도 꽤 황당한 캐릭터로 변질되었다. 셔터문만 내리면 되는 구멍가게도 아니고 직원 만 명이 넘는 기업의 부사장이란 자가 이혼한 전처가 등산한다는 전화 한 통 받고는 뒤따라 나서서 종일을 보낸다니 어처구니없다. 구두 신고 눈 덮힌 산을 오르고, 숨어서 한 시간여를 기다리고, 하산하는 이서영에게 억지로 추근대는 찌질이들이나 그걸 또 경계하는 이서영이나, '어디선가 이서영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강우재'란 장면을 위해 너무 많은 희생과 낭비를 했다. 이 터무니없는 장면이 드라마가 산으로 가고 있는 현재 수준을 상징한다 하겠다.
 
차지선의 아버지는 친정에 들른 차지선에게 '늘어지게 팔자 좋은 인간 세상에 없다'는 한마디로 차지선을 돌려보냈지만 차지선 만큼 늘어지게 팔자 좋은 인간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싶다. 이제 절에 가서까지 빌 정도로 온통 머릿속에 들어찬 강기범을 찍어누를 수 있는 힘까지 얻게 된다면 차지선은 인간세상에서의 삶을 접고 신선계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강기범이 차지선에게 바라는 건 별 것 아니라 집안일이든 바깥일이든 그저 독립적으로 알아서 행동하길 바랄 뿐이다. 이서영이 이혼을 통보하고 집을 나갔을 때 차지선이 강우재를 불렀다는 얘기를 듣고 감격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평생 그럴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김강순의 집에 쳐들어가 속사정 뻔히 알면서도 배려는 커녕 심기를 건드리는 말만 마음대로 뱉어내고 애들처럼 귀찮게 굴어대며 짜증을 돋운다. 강기범에게서 위자료 두둑하게 받아내서 집 장만할 궁리에 취해 있고 시키지도 않은 청소기 잠깐 돌리다가 힘들다며 나가서 로봇청소기를 사와서 "청소!" 하는 유치한 수준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 솔직히 차지선과 30 년이나 살아준 강기범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런 차지선이 사람들의 공감과 동정을 끌어내는 것은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매우 식상한 슬로건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것은 페이크로서 차지선은 공감하고 동정할 만한 캐릭터가 아니다. 강기범은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해왔지만 차지선은 봉사한답시고 일 년에 두어 번 얼굴만 비췄다. 아무런 배경 없는 이서영을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데 결사적으로 반대했고 이서영이 자기네 가문 면 세워준 딱 하나가 판사 된 거라며 거들먹거리는 특권의식과 허영으로 가득찬 골 빈 로얄패밀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차지선을 동정하려고 한다면 차지선은 이렇게 말하며 개무시할 것이다. "얘! 너랑 나랑은 출신성분이 달라. 너 왜 그렇게 주제넘게 나대니? 너 그거 진짜 교양 없는 짓이야." 정략 결혼은 로얄패밀리들만의 사랑 방정식일 뿐으로서 일반인이 공감할수도 없거니와 동정하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