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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SPORTS

축구 브라질전 완패 원인은 병역과 데자뷰

 
 
 
"Epic Fail..... Hahaha!!!!"
한국이 영국 단일 대표팀(Great Britain, GB)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영국인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조롱 섞인 이 한마디로 축약해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피어스 감독과 몸값만 비싼 프리미어 선수들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주를 이루며 간혹 한국팀이 경기를 지배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국팀에 대해서는 특별한 내용은 없는데 애써 한국 축구는 평가절하한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러한 반응은 축구 종가로서의 영국인들의 자존심이 그런 식으로 함축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과 영국이 축구 경기를 하던 날 BBCsport 트윗은 매우 고무되어 있었는데 "1908년 이래 처음으로 하루에 금메달 5개를 획득한 영국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날"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 후 축구가 한국에 지던 시간쯤에 금메달 하나를 더 추가해서 하루에 금메달 6개를 획득해서 들썩거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축구가 한국에 패배함으로써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한국 대 영국 경기 결과를 전하는 기사 첫 문장에 "영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날 중에 하나가 익숙한 4강 승부차기 탈락으로 슬프게 끝났다"고 보도했다. 영국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하루에 금메달 6개를 획득한 최고의 날이었는데 축구가 익숙한 4강 승부차기로 탈락하게 됨으로써 슬프게 끝났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국 올림픽 역사상 신기록을 세웠지만 축구는 승부차기 탈락에서 벗어나는 기록을 세우지는 못했다는 탄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 브라질전은 패배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점치고 있었지만 결과는 완패였다.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 탓도 있었지만 골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한번의 역습에 쉽게 골을 내준 한국팀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개인적으로 한국이 브라질에 완패한 이유는 대략 세가지 정도로 본다. 박주영을 선발에서 제외한 것과 선수들의 병역 혜택 그리고 익숙한 데자뷰다.
 
박주영이 경기를 치르면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큰 경기 경험이 많고 상대적으로 이름이 더 많이 알려졌으므로 상대방이 받는 부담감도 그만큼 클 것이다. 하다못해 상대 수비수를 끌고 다니는 역할을 하더라도 박주영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스트라이커는 상대 수비에 막혀 90분을 이렇다 할 만한 활약을 못하더라도 한번의 골 찬스를 놓치지 않고 골로 성공시켜 준다면 제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하나 이는 선발은 감독이 결정하는 것이고 예상 외로 투입한 김현성이 변칙작전을 수행할 만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는 결과론적인 것이므로 큰 의미는 없다.
 
선수들의 병역 혜택 문제는 국내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다보니 선수들이 받는 부담감이 생각보다 큰 것 같다는 인상이 든다. 경기를 앞두고 브라질 기자들이 병역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그들 나름대로 분석한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만큼 브라질도 한국과의 경기에 부담을 가졌다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국 선수들도 병역 혜택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대응책을 나름대로 대비했겠지만 그러한 문제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4강전 UAE 결승골 장면)
 
한데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병역 혜택이 경기에 뛴 선수들에게만 국한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똑같이 국가대표에 차출되어서 같은 기간 훈련하고 대회에 참가해서 메달도 같이 받는다. 그런데 경기에 뛰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병역혜택에서는 제외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경기에서의 활약도에 따라 포상금에서 차등을 두는 것은 모르겠으나 병역혜택을 달리 하는 것은 형평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뛴 선수는 물론 단 1분을 뛴 선수는 병역 혜택을 받고 1분도 못 뛴 선수는 병역 혜택을 못 받는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프로선수들의 병역 혜택 제도는 원론적인 관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하는 경우 만약 메달권에 들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감독은 선수를 운용하는 데에서도 부담을 가질 수도 있고,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는 감독에게 불만을 가질 수도 있고, 경기에 한차례라도 뛰었던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들간에 알력이 생길 수도 있고, 메달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선수들이 거기에 부담을 가질수록 선수들끼리도 민감해지고 최상의 경기력을 보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국이 영국에 승리하자 한국 언론은 일제히 2002 월드컵 4강 데자뷰라며 설레발을 쳤다. 그런데 그렇게 설레발 친 데자뷰가 브라질전 패배에서는 또다른 데자뷰로 돌아오고 말았다. 다름아닌 광저우 아시안 게임 4강전에서 쿠웨이트에 1골을 내주고 패배했던 그 데자뷰 말이다. 골키퍼는 이범영이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 패스를 이범영의 가랑이 사이로 밀어넣었던 상황도 그때와 판박이다. 기자들이 그토록 설레발을 쳤던 데자뷰가 결국 4강전 패배의 데자뷰로 현실화되었으니 웃기는 일이다.
 
브라질전에서 패하자 한국 언론은 이번엔 4강 징크스라며 설레발 친다. 4강 징크스라, 대체 한국 축구가 언제부터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4강 징크스를 갖게 되었나?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전에서 패배한 적이 있지만 그건 징크스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센세이셔널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올림픽 4강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 패배를 징크스라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한국 발기자들의 과도한 호들갑과 설레발, 그게 브라질전에서의 완패보다 더 불편하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4강 징크스라면 이건 아시안 게임에 국한되어야 한다. 아시안 게임에서의 4강전 패배의 역사는 잔혹하다. 86년 우승 이후 한번도 4강 문턱을 넘어선 적이 없다. 매번 우승을 장담하고 시끌벅적하게 출정식을 가졌지만 언제나 4강전에서 어이없게 패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 축구의 아시안 게임 패배 역사 중에서 가장 어처구니 없는 패배는 방콕 아시안 게임(1988) 8강 탈락이었다. 당시 태국은 2명의 선수가 퇴장당한 상황이었지만 한국은 태국 선수의 장거리 슛을 막아내지 못해 졌다.
 
런던 올림픽 4강전에서 브라질에 완패한 것에는 심판의 판정 탓도 있었다. 전반 초반에 브라질 수비수가 지동원의 머리에 발을 갖다 댔을 때 심판은 바로 앞에서 보고도 무시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그 외에도 몇차례 더 나왔는데 결정적으로는 후반 초반에 페널티킥 상황을 외면한 것이다. 왠만하면 심판의 판정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말하는 KBS 이용수 해설위원조차도 "명백한 페널티킥"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을 했을 정도로 오심을 가장한 의도적인 편파판정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런던 올림픽 4강전 브라질 첫 골 장면)
 
이범영과 브라질 선수가 충돌했을 때도 브라질 선수가 이범영의 무릎을 밟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건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고 본다. 다행히 경기를 뛸 수 없을 정도의 큰 부상은 아니었던 듯하나 브라질 선수의 행동은 굉장히 몰매너한 것이었다. 이범영이 이날 전체적으로 판단이 느렸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게 결국 부상 당하는 계기가 됐고 그로 인해 첫골을 내주고 말았다. 물론 그런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한번의 기회를 골로 성공시키는게 강팀과 약팀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하겠다.

 
만약 후반 초반에 페널티킥이 선언되고 성공해서 동점 상황으로 만들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 완벽한 패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심판의 판정은 어쩔 수 없는 경기의 일부분이라 본다면 역시 전반 초반에 있었던 기회를 골로 연결시키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고 하겠다. 골 찬스를 골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그게 현재 올림픽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근래의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경기를 보면서 가장 놀라게 되는 선수는 구자철이다. 분데스리가에서 구자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축구실력은 괜찮으나 나약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구자철이 갑자기 터미네이터로 변신해서 나타난 듯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매 경기를 볼 때마다 놀라게 된다.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감과 투지가 넘치고 쉼없이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체력과 경기장 전체를 보는 눈 그리고 무엇보다 볼 키핑력이 예전의 구자철에 비하면 완전히 달라졌다.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인 한일전의 결과는 위에서 언급한 데자뷰를 빌어 예상해보려고 한다. 한일전이면 결국 아시안 게임의 상황으로 치환시켜서 생각할 수도 있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은 4강전에서 아랍에미리트에 졌지만 이란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동메달을 땄다. 그러한 극적인 역전승의 데자뷰가 올림픽 무대에서 재현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선취골을 어느 쪽에서 넣느냐에 따라 다르겠으나 한국이 선취골을 허용하더라도 후반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일본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 수 있다고 예상해본다. 2:1 혹은 3:1 한국 승.
 
다만 동메달 결정전이어서 병역 혜택의 문제가 직결되므로 한국 선수들이 그에 대한 부담감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하는 변수가 있다. 한일전은 정신력에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병역 혜택을 둘러싼 감독의 선수 기용 문제라든가 선수들의 부담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브라질전과 마찬가지로 완패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