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주알 고주알/미디어와 언론

조선일보는 이 이상한 소송을 포기하는게 낫다

9일 밤 MBC '100분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이종걸 의원의 국회내 발언을 여러차례 언급했었기 때문에 조선일보의 반응이 궁금해서 10일 조선닷컴을 자주 들여다 봤었다. 토론마당에 올려져 있는 '이종걸의원, 당신도 성접대? 받았잖소?'라는 제목의 글이 이종걸의원의 사진과 함께 메인에 올라와 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아래엔 "(잠입르포) '여성전용 노래바' 남성도우미, 일당 24만원에…"란 기사가 눈의 띄었는데 이 기사는 네이버 뉴스캐스트에도 올라 있었다. 뉴스캐스트 헤드라인엔 12개의 기사 제목을 올려놓을 수 있는건데 이 기사가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트래픽 폭탄'을 기대한 미끼용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눈총도 총'이라고 '트래픽 폭탄도 폭탄'일진대.

조선일보가 이종걸, 이정희 두 의원을 고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11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조선일보 토론마당에 올려져 있던 '이종걸의원, 당신도 성접대? 받았잖소?'라는 제목의 글이 삭제되었다. 게다가 해당 글의 게시자를 불량이용자로 분류해 버린 모양이다. 그 글이 왜 삭제가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해당 글이 조선일보의 공식입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으나 그것은 토론마당에 올려진 글이다. 조선닷컴 운영자가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사이에 해당 글의 조회수가 높아서 메인에 걸렸을수도 있는 경우라면 해당 글을 메인에서 내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메인엔 이종걸 의원의 사진까지 곁들여져 있었던걸로 봐서는 운영자가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게다가 불량이용자로 분류까지 해버린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할 지도 모르지만 설마'했었는데 조선일보가 '조선일보와 특정 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종걸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인터넷 매체인 '서프라이즈'의 신상철 대표이사를 10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그런데 이게 명예훼손이 성립되는지가 좀 이상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이종걸 의원은 지난 6일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장자연 리스트' 내용을 언급하면서 '조선일보 특정 임원'을 언급했고 이정희 의원은 MBC '100분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조선일보 특정 임원'을 수차례 언급했다. 그러나 두 의원의 발언은 이종걸 의원은 국회내에서 언급한 것이고 이정희 의원은 국회외에서 언급한 것이란 차이가 있다. 이종걸 의원이나 이정희 의원 모두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면책특권을 갖는다. 이정희 의원의 경우 국회외에서의 발언이라고는 하나 국회내 속기록에도 기재되어 있고 국회방송 홈페이지 동영상으로도 올려져 있으며 생중계가 되기도 했던 것이기 때문에 면책특권이 제한되지는 않는 것 같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사적인 신상에 관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조선일보 특정 임원'의 지위라면 명예훼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조선일보 특정 임원' 정도의 지위라면 이런 정도의 특권(?)은 누려야 되지 않겠는가. '100분 토론'에서 박영선 의원이 사적인 경우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조선일보 특정 임원'을 두둔하고 나섰던 것은 '조선일보 특정 임원'의 지위를 너무 과소평가했던데서 나온 발언이 아니었나 하는게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장자연 문건에 '조선일보 특정 임원'이 기재되어 있다면 '조선일보 특정 임원'이 관련이 없는 허위의 사실로 밝혀진다해도 '조선일보 특정 임원'을 언급했다해서 명예훼손이 성립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조선일보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하는 것은 이상하고 웃기는 일이다. 이참에 조선일보의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국회의원과 국민들의 입을 막으며 더 나아가 국회의원 면책특권의 제한을 강화하는 궤변이라도 주장하고 싶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소송은 조선일보에 실익이 별로 없다. 오히려 'OO일보 O사장'나 '해당언론사' 등으로 불리기를 원하던 조선일보가 스스로 커밍아웃하고 나서는 우스운 모양새가 되버렸고 장자연 문건과 관련한 '조선일보 특정 임원'의 의혹만 부풀릴 뿐이다. '호형호부'도 할 수 없고 소송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마치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앓이하는 조선일보의 속사정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무리봐도 조선일보는 이번 소송을 포기하는게 차라리 낫다. 기사만으로도 충분히 자기방어능력을 보유한 거대한 언론사인 조선일보의 이번 소송은 별다른 실익도 없이 조선일보나 '조선일보 특정 임원'의 위상과 명예만 실추시킬 뿐이다. 조선일보나 '조선일보 특정 임원'의 위상을 생각해서라도 소송을 포기하고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장자연 문건의 진실을 밝혀내서 '조선일보 특정 임원'의 무고함을 증명해 보이는게 훨씬 더 현명해 보인다. 민사소송을 같이 해서 당사자들을 얼마정도 귀찮게 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댓가는 더 혹독하게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언론사나 방송사 기자들이다. '허용된 위험의 법리'의 적용을 받는 언론사나 방송사 기자들이 이미 국회에서 언급되었고 국회 속기록에도 기재되어 있는 사실임에도 조선일보의 요청을 받아들여 'OO일보 O사장'나 '해당언론사' 등으로 기재를 해왔다는 사실이 수치스럽지 않은가? 물론 언론이나 방송의 오보는 '인격살인'이라고 할 만큼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보도는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언론사나 방송사 기자들 스스로가 조선일보의 위협에 굴복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 한국의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는 '君不君臣不臣父不父子不子'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자는 직함이 기자라서 기자가 아니라 기자다워야 기자다. 기자가 기자다워지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패와 부도덕을 몰아내는 시기를 훨씬 더 앞당길 수 있지 않겠나.



*** 이 글에서 사용한 '조선일보 특정 임원'은 '조선닷컴'에 기재된 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2009.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