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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성범죄 루머(강용석과 방송국 기자)를 대하는 이중적 태도




십수일 전에 모 포탈 사이트의 게시판에 어떤 여대생이 모 방송국 기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던 적이 있다. 해당 글을 읽어 보았는데 진실한 사실이라고 판단할 만할 정도로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짧지 않은 이 글을 끝까지 읽어 보게 된 이유는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이 처한 참담한 심정과 처지 그리고 그들의 차마 꺼내지 못하는 소리없는 절규 등이 잘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당 글은 일시적으로 이슈화되는 듯했으나 소위 '법대로'의 수단을 동원한 방송사의 발빠른 대응으로 인해 관련 글들까지 순식간에 차단되며 완벽하게 봉쇄되었다. 이렇듯 신출귀몰하고 조직적인 대응을 했다면 해당 방송사에서도 사건의 내막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도 그 이후 추이를 지켜봤으나 방송사에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알 길은 없다.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보다는 소수의 권력자들의 특권을 위해서 시스템이 일사불란하고 용의주도하게 방어기제를 작동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거북살스럽고 불편하기만 하다.

한국은 저열한 정치꾼들과 그들의 맹종자들을 필두로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까지 법원의 판결에 맡기고 그 결과에 따라 냉온탕을 넘나드는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희한한 '법대로'의 시대를 만들고 있다. 여하튼 이러한 법리론에 따른다면 포탈 게시판에 등록되었던 글은 거기에 익명으로 적시된 방송국 기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봐야 되고 그 기자의 명예도 보호받아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포탈에 해당 게시글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고 요청을 받은 포탈은 삭제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당 글의 진위여부를 대중이 확인할 수도 없는 상태로서 적시된 기자가 애꿎은 피해자가 될 여지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당사자의 요청에 의해 삭제된 것이었다면 그에 대해서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피해자라며 써내려간 글에서 보았던 소리 없는 처절한 절규가 머릿속에 맴돌아 씁쓸함은 가시지 않는다. 직위와 영향력을 이용해서 저지르는 범죄행위가 가장 악성에 속할 것인데 이 사건이 사실이라면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공중파를 이용하는 방송사의 소속원이 직위와 영향력을 이용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임에도 그에 대한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제 식구 감싸기를 위해서 방어능력을 총동원하는 모양새를 보는 것도 꽤나 불편하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별다른 이유나 설명도 없이 3개월이 넘도록 피의자 조사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선택한 수단이 자기의 치부를 공개하는 것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절규마저도 저급한 '법대로'의 논리를 동원해서 막아버린다면 사회적 약자인 다수의 대중들은 어디에 하소연해서 권익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방송사와 그 소속원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오늘날 방송권력이라 불러도 될 만큼 커졌다. 성범죄를 비롯한 여러 사회적 어두운 면이나 부조리 등을 고발하고 재조명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적절한 대책을 끌어내는 등의 영향력을 행사하는게 방송사다. 이러한 방송사 소속원이 성범죄 의혹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라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보아 허용되어야 한다. 방송사가 외부 인사들의 성범죄는 폭로하면서 제 식구의 의혹은 눈감는 위선적인 태도도 비난받아야 한다. 애꿎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의 방송통신망법은 대중의 언로를 봉쇄하고 도리어 애꿎은 역피해자를 만드는 악법으로 보이고 그 절차와 요건을 제한하도록 개정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성범죄를 대하는 방송사 아나운서와 기자들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에 대해서 언급할 생각이었는데 쓰다 보니 의도와는 달리 좀 장황해졌다.

국회의원 강용석은 사석에서 여자 아나운서에 대한 성희롱에 가까운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가 소속당에서 퇴출되고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강용석의 발언을 전해 들은 아나운서들은 가능한 모든 채널을 총동원해 한목소리로 강용석을 비난하며 집단적 대응에 나섰다. 심지어 백여명의 여자 아나운서들은 강용석의 발언으로 모욕을 당했다며 강용석을 고소했고 법원에서는 초유의 집단모욕죄를 인정해 항소심까지 유죄를 선고했으며 상고심만을 남겨둔 상태다.

이처럼 강용석을 한목소리로 비난했던 아나운서와 기자들이 방송사 소속 기자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 강용석의 발언이 부적절했던 것은 사실이나 직접 성추행을 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과민하게 반응했던 방송사 아나운서와 기자들이 직접 성추행에 연루되었다는 구체적인 의혹을 받고 있는 소속원에 대해서는 오히려 침묵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더 가혹하게 비난받아야 할 대상도 강용석이 아니지 않은가.

강용석의 발언은 도덕성의 문제로 봐야 되고 법원의 판결에 의해서 도덕성의 판단기준이 결정되게 만든 것은 넌센스다. 부적절한 발언으로 도덕성을 비난받아야 할 강용석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국면으로 만든 것은 이처럼 아나운서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다. 아나운서 집단이 강용석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지만 법정으로 문제를 가져간 것은 과민했고 적절치 못한 대응이었다는게 내 생각이다.

강용석은 '법원의 판결은 대상이 누구든지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의 지향점이 대중들의 권익보호에 있거나 그럴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강용석에게 집단모욕죄를 인정한 판결은 상고심에서 바뀌어야 된다. 이것은 강용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반 네티즌들의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즉 강용석의 발언이 적절했느냐의 여부와는 별개로서 강용석의 부적절했던 발언을 한번의 실수쯤으로 봐주고 싶지는 않고 그에 상응한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이렇듯 강용석의 발언은 그의 도덕성을 비난함으로써 끝내야 했을 사건이었다. 이미 그 정도에서도 정치 생명은 다했다고 보여졌는데 아나운서들이 고소를 함으로써 사건의 성격이 한 국회의원의 도덕성의 문제에서 집단모욕죄의 성립여부의 문제로 바뀌어버렸다. 그렇게 됨으로써 강용석에게도 재기할 기회가 생겼고 강용석은 홀로 치열하게 싸우면서 어느 정도 재기할 여건을 조성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한나라당에게도 간단치 않은 고민거리이기도 하고 어떤 구도가 형성되더라도 강용석이 살아나게 될 가능성은 낙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이 여인은 아나운서 특권층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보편적인 문제라고 절규하고 있다.)

아나운서들이 강용석의 발언에 모욕을 받았다는 것이나 도덕성의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간 것이나 이런 것들은 아나운서들의 시대착오적인 낡은 발상이었다. 만약에 강용석이 언급한 집단군이 아나운서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이슈화가 되고, 검찰이 독일과 일본의 판례를 동원하면서까지 기소를 하고, 법원 또한 그러한 판결을 했을지 회의적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을 상대로 방송사 아나운서들이 집단적으로 대응하고 나선 것은 방송 권력의 힘을 과시하는 듯한 대단히 오만한 태도로 보이는 등 여러 면에서 바람직한 것이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여자 아나운서들이 정말로 모욕을 느껴야 한다면 다대수의 대중들이 비난하는 강용석의 발언이 아니라 다음의 것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필리핀 오지 정글로 날아간 아나운서가 원주민 어린애들과 유치한 짝짓기나 하면서 순진하고 순수한 어린애들의 진심을 희롱하고 노닥거린다든가, 심심찮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노출이라는 것으로 포탈 검색어를 휩쓴다든가 이런 것들 말이다. 성을 상품화하는 사회의 바람직하지 않은 분위기를 비판해야 할 아나운서들이 자진해서 성 상품화의 아이콘으로 나서는 그것보다 더 모욕적인 것이 있을까 싶은데 당사자들의 생각은 또 다른가?

국회의원의 발언에 모욕을 받았다고 사실을 보도하며 비난했던 아나운서나 기자들에겐 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해야 맞을 것이다. 아나운서와 기자들이 그러한 수준의 도덕성은 차치하고라도 일반인 수준의 도덕성 정도도 충족하지 못하는 소속원의 부도덕한 행위에는 침묵하거나 감싸면서 타인의 성범죄를 폭로하고 비난하는 데는 앞장선다면 주제 넘고 꽤나 눈꼴사납게 보일 것이다. 방송사 아나운서와 기자들은 강용석의 발언을 비난했던 것처럼 그들 조직 내에서의 부조리나 구성원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서도 동일한 태도를 취하는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첨(添) ; 2012. 01.30. 19 : 10

"대법원으로 간 서울대 성폭행 사건, 전말은…" 지난 1월 27일 프레시안에 이런 기사가 올라 있어서 첨부한다. 직위와 영향력을 이용해서 저지르는 성범죄가 악성이기도 하지만 그 범죄행위의 패턴과 피해의 유형도 굉장히 유사하다. 여자 아나운서들이 성 상품화의 아이콘으로 나서기보다 성을 대하는 남성 중심의 사고를 비판하는 프런티어에 위치해서 조직 내의 부도덕성에 대해 더 엄격한 잣대로 감시 및 비판해야 할 것이다. 성범죄를 아나운서라는 특권층에 국한되는 문제로만 한정하는 듯한 아나운서들의 인식은 잘못되었고 여성의 보편적인 문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