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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김하늘 판사의 사법부 독재하자는 오만한 발상




김하늘 판사가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 한미 FTA 문제를 끄집어내서 사회의 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 검사가 끼어들면서 자칫 국가 기관간의 갈등으로 번지는 듯한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양상으로 번질 개연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려진 글을 언론이 공개함으로써 이용되어 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김판사가 의도했든 안했든 그의 행위로 인해 생겨나는 사회적인 갈등과 분열에 대한 책임은 김판사와 그에 동조한 일부의 판사들에게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은배, 이정렬 판사로 인해 야기된 논란과 연이어 나온 김하늘 판사의 글은 현직 판사들의 부주의한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최은배, 이정렬 판사는 SNS에 올려진 글로써 논란을 야기했다면 김하늘 판사는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로 논란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은 현직 판사들의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정치 행위로 봐야 한다고 판단된다. 특히 김하늘 판사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언급한 것은 앞서의 두 판사의 경우에서처럼 정치적 성향으로 인한 논란을 비껴가면서 한미 FTA의 논란을 이어가려는 꼼수가 아닌가 보여진다.

SNS를 과연 사적 영역으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진행중인 단계이므로 단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도 있다. SNS를 단순히 형식적인 의미에서만 본다면 사적 영역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 단순 팔로워 숫자만 수십만이 넘어가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실시간으로 언론에 공개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언론의 보도에 맞대응을 하는 등의 목적으로 SNS를 이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면 단순히 사적인 목적으로만 SNS를 이용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SNS는 단순히 사적 영역이니까 문제가 없다고 넘어가려는 것은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다. 특히 최은배, 이정렬 판사의 경우 그로 인해 방송에까지 출연했다면 단순히 사적 영역에 표출하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국한하는 목적으로만 이용하려 했던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차라리 얼굴마담이 낫다'는 이유로 나경원에게 투표를 했으니 자신은 보수주의자라는 김하늘 판사의 글은 고소를 금할 수 없게 한다. 김하늘 판사가 나경원에게 투표를 했든 안했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저러한 이유로 나경원에게 투표를 했다면 그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합리적 진보주의자도 아니며 단지 무책임하고 대책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굳이 이러한 본인의 성향을 언급하는 무리수를 둔 것은 한미FTA를 찬성하면 수꼴이고 반대하면 좌빨이라는 단편적인 인식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으로서 그의 글은 이미 서두에서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김하늘 판사가 장문의 글에서 한미FTA의 문제점을 합리적으로 언급했다고 치장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미FTA 반대론자들의 논거를 재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김판사의 글 전문의 토대가 된 것은 한미FTA 협정문이 아니라 '을사조약이 쪽팔려서'라는 기획토론프로그램이다. 이 토론프로그램은 이정희, 정동영, 천정배, 이종걸, 이해영, 한홍구가 참여한 것으로 김판사도 언급했듯이 토론이 아니라 일방적인 한미FTA 성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사법부가 한미F TA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해영과 이정희가 국내에서 한미 FTA에 정통한 인사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해영은 법 논리적인 부분에서 취약점을 드러낼 때가 있고 이정희는 논거의 시작과 끝이 한미 FTA 자체의 반대에 있는데 대체적으로 FTA와 같은 국가간의 통상 조약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논거로 본다면 타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를테면 만약에 한미 FTA 뿐만 아니라 통상 조약을 추진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본질이라면 이들의 논거는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지만 오로지 한미 FTA만을 반대하기 위한 논거로 삼으려고 한다면 곳곳에 모순과 오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하늘 판사가 한미 FTA 협정문이 아니라 반대론자들의 일방적인 토론프로그램만을 보고 한미 FTA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것이라 생각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판사들이 보게 될 것은 국내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지니게 될 한미 FTA 협정문이지 반대론자들의 논거가 아니다. 김하늘 판사가 이미 수차례 논의가 되어 왔고 일반인들도 언론, 방송 등을 통해 익히 듣고 봐 왔던 반대론자들의 논거만을 반복해 가면서 한미 FTA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균형적인 시각에서 판결을 해야 할 위치에 있는 법관이 취할 적절한 태도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김하늘 판사가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한 TFT 구성을 통해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겠다는 것은 사법부가 월권행위를 하겠다는 것이다. 한미 FTA는 국가의 통상정책으로서 이러한 통상 교섭 및 조약 체결과 비준에 관한 권한은 행정부에 있다. 조약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비준안에 대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함으로써 행정부의 권한은 입법부에 의한 견제를 받게 되어 있다. 사법부가 통상 정책 전반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겠다는 것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에 도전하는 것인데 이것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면 뭐라는 말인지 일부 판사들의 주장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더 나아가서 '어떠한 계약이 불공정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법원의 전문 영역'이라면서 한미 FTA의 불공정한 문제를 따지고 그에 따라 나온 사법부의 결론을 협상 테이블에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법원 내부에서 연구의 목적으로 한미 FTA 협정문을 검토하겠다는 정도를 넘어서는 이러한 주장은 명백히 사법부가 월권행위를 하겠다는 것으로 비쳐지기에 충분하다. 또한 당사자간에 유효하게 성립하거나 성립할 모든 계약에 대해서 사법부가 일일이 개입해서 판단하겠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다.



일부의 판사들이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 한미 FTA의 전반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지 나로서는 그게 궁금하다. 김하늘 판사가 반대론자들의 주장만을 인용해서 불평등 조약이라고 하는 미국 이행법 102조의 경우를 보자. 이건 현재의 한미 FTA에서 갑자기 문제된 게 아니다. 이 규정은 1994년 WTO 출범 이후 미국이 제정한 '우루과이라운드 이행법(URAA)' 102조에도 그대로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김하늘 판사가 언급하고 있는 이해영의 경우 이미 수년전에 한국도 이러한 입법을 해야 된다고 주장했었다.

또한 한미 FTA 이행법 102조의 규정이 한국과의 FTA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규정도 아니다. 미국은 자기집행력이 없는 국제협정(non-self-executing treaty)의 이행법률에는 이 조항을 포함시켜 놓고 있다. 반대론자들이 모범 사례로 제시하는 호주-미국 FTA 이행법률에도 미국은 한미 FTA에서와 똑같은 조항을 포함시켜 놓았고 여타 국가들과 체결한 FTA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WTO 가입국들 뿐만 아니라 미국과 FTA를 체결한 여타의 국가들에서도 당연히 불평등 조약이라고 해야 하는데 한국 반대론자들을 제외하고는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ISD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미 FTA의 경우는 사실 한국이 사법주권을 스스로 부정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서의 사정을 알 수는 없겠으나 노무현 정부가 본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른바 4대 통상 현안을 미국측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협상을 시작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문제도 어쩌면 본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을지도 모른다는 소위 '억측'도 해보게 될 정도다. 한데 이 조항이 유독 미국과의 FTA에서만 특별히 문제삼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이미 ISD를 포함시킨 국가간의 통상 조약만도 90여개에 가까울 정도로 ISD의 그물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하늘 판사가 언급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는 수차례 반복해서 논란이 되어 왔고 한미 FTA와 관련해서만도 논의된 기간은 최소한 5~6년은 넘는다. 그동안 행정부가 통상정책을 추진하면서 수없이 사법주권을 포기해 오는 동안엔 사법부의 판사들은 이렇다 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가 유독 한미 FTA에서만 끝장을 보겠다고 판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정말로 궁금하다.



법원은 이미 통상협상과 지자체 규정의 충돌 사례에서 지자체 규정을 무력화시키는 판결을 했던 적이 있었다. 전북도의회가 학교급식에 국산 농산물 일정비율 의무사용을 법제화하는 '우리 농산물 의무 구매' 조례를 제정하였다.(2003년) 하지만 논란 끝에 소송이 제기되어 2005년 9월 대법원은 이 조례가 세계무역기구(WTO)/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내국민 대우를 위배한 것으로 판시했다. 이것 역시도 김하늘 판사가 언급한 이해영이 한미 FTA 반대 논거로 빠짐없이 사용하는 판결이기에 예시로 든다.

이처럼 수차례 문제가 제기되어 왔었고 판사들도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접했을 것임에도 김하늘 판사를 비롯한 일부의 판사들은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가이드 라인 제시의 필요성을 몰랐었다는 얘기인데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 집단행동을 하고 나서는지 희한한 일이다. 김하늘 판사의 글은 마치 한미 FTA를 추진했던 '당 대표이자 대선 후보였을 때는 몰랐다'고 어깃장을 부리는 야권 정치꾼들의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한미 FTA가 '을사늑약'에 준할 정도의 불평등 조약이라면서 그 때는 몰랐다는 정치꾼들이나 그냥 막연하게 한국과 미국 사이에 통상장벽을 해체하고 자유무역을 하자는 내용의 협약으로만 생각했었다는 판사들이나 일반인의 상식으로 볼 때 이게 도대체 말이 된다고 보나?

한미 FTA 반대자들을 보면 끔찍한 호러(horror)물을 보는 것 같다. '을사늑약'에 준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미 FTA가 만약에 이전 정권에서 통과되었다면 어떻게 할 뻔했는가 말이다. 한미 FTA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을 전혀 몰랐다는 정동영이 대권을 잡기라도 했다면 지금쯤은 얼마나 끔찍한 상황으로 변해 있었을지 가상한다면 정말이지 소름이 끼치도록 오싹하지 않은가?

'법원에서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한 TFT를 구성하여 여기서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면, 그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오던지 간에 국민들의 의구심과 사회적 갈등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김하늘 판사의 글은 사법부 만능주의에 빠진 대단히 오만한 발상이다. 더욱이 한미 FTA 전반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것은 사법부가 사회문제의 최종판단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서 이는 사법부가 독재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담당 판사의 이념과 성향에 따라 판결의 결과가 예견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에 대한 법관들의 가이드 라인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사법부가 이 문제를 사법부 내부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면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해소되기는 커녕 더욱 심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