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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왜곡되는 노무현의 한미FTA 재협상 주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무현)이 생전에 한미FTA 재협상을 주장했던 사실을 두고 트위터를 중심으로 노무현이 언급했던 재협상론의 본질이 왜곡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갑자기 다시 생겨난 원인을 추적하다 보니 한겨레 허제현 기자의 트윗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

근래 허제현의 트위터를 보면 그가 언론사 기자의 신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한겨레 데스크를 통과한 기사도 사실이 왜곡된 부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조중동을 비난하는 한겨레는 과연 조중동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더 이상은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노무현이 한미FTA 재협상을 주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서 특정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어 마치 노무현이 한미FTA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는 식으로 비약하고 왜곡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노무현이 한미FTA 재협상을 주장한 것은 2008년 11월 11일 자신이 그해 9월 개설한 웹사이트 '민주주의 2.0'에 '한미 FTA 비준, 과연 서둘러야 할 일일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였다. 노무현의 글은 정치하지 않고 감상적이면서도 왜곡될 여지를 거의 봉쇄하는 특출한 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글도 왜곡될 여지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노무현의 한미FTA 재협상론을 이해하려면 먼저 국내외 정세를 알아야 한다. 한국은 현 정부의 미국 쇠고기 졸속 협정으로 인해 야기되었던 커다란 소용돌이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한숨을 돌리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 당시에 노무현 정부에서 문제가 되었던 쌀 직불금 문제가 다시 불거져나와서 또다시 국민적 비난 여론이 비등하던 시점(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 글 '위키리크스 폭로면 김종훈은 무조건 매국노?'를 참조하면 되겠다)이었다.

이때 현 정부는 한미FTA 국회 비준을 서두르기 시작한다. 쇠고기 수입 협정으로 홍역을 치루느라 미루었던 것이기는 했으나 쌀 직불금 문제를 둘러싼 국면전환용이었을 거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한나라당이 한미FTA 국회 비준을 서두르기 위해서 내놓은 논리는 이러했다. 한국 국회에서 먼저 비준한 후 미국 정부를 압박해야 하며 미국 새 정부로부터의 재협상 요구를 거절하겠다. 이러한 얘기는 민주당 일각에서도 흘러나왔던 것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한미FTA를 의회에서 비준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는데 쇠고기 협정이 한국에서 홍역을 치르면서 다시 후퇴함으로써 미국의 축산업자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대선과 맞물리는 등 당시 미국의 국내사정이 복잡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11월 4일 예상대로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한미FTA 재협상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노무현이 한미FTA 재협상을 들고 나온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였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재협상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국회의 선비준을 통해 미국측의 재협상 요구를 차단하겠다고 주장하는 그러한 상황인 것이다.

노무현의 주장은 한미 FTA를 살려 갈 생각이 있다면 먼저 비준을 할 것이 아니라 재협상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노무현의 주장이 너무나도 타당하다. 한나라당식의 선비준 후에 미국측의 재협상 요구를 거절하겠다는 전략은 미국을 상대로 자해공갈 쇼를 벌이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미국이 한국의 자해공갈협박에 부담을 갖지도 않을 것이고 결국 미 의회는 비준을 거부할 것이므로 그렇게 되면 한미FTA는 폐기될 것이다. 해서 노무현은 한미FTA를 살려 갈 생각이라면 선 비준하고 재협상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불가피해 보이는 미국과의 재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것을 다른 관점으로 바꿔서 본다면 오바마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한미FTA 노무현 안은 재협상이 불가피하고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발효되기 어렵다는 것을 노무현도 인정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협상에서 한국의 입장을 관철하지 못하여 아쉬운 것들은 없었는지 등을 다시 검토해서 재협상을 철저히 준비하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무현이 덧붙인 부분은 얼마 전에 김종훈이 졸지에 매국노로 매도되었던 위키리크스 문서에 담긴 내용과는 상당한 온도차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본인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노무현은 '정치적인 이유로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양심선언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라고 사족을 단다.

하나 노무현은 '저의 입장은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본질이 왜곡될 여지를 차단해 버린다. 노무현이 당시 한미FTA 재협상을 주장했던 것은 한미FTA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라 한미FTA를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인 대응 측면에서 언급한 것이다. 노무현의 이러한 전략적 대응 측면에서의 판단은 틀리지 않기에 99% 동의한다. 한마디로 당시 한나라당의 선 비준 후에 미국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은 고려의 가치가 전혀 없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노무현의 이러한 재협상 주장에는 미국 쪽의 사정이 간단치가 않아서 미국 의회에서 한미FTA를 비준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전제가 들어 있다. 즉 미 의회에서 비준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니까 한국은 선 비준을 서두를 게 아니라 재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하면 한미FTA가 이미 미 의회의 비준을 끝냈고 한국 국회에서의 비준 절차만을 남겨놓은 상황이다. 노무현이 당시 주장했던 재협상론에서의 전제 즉 미 의회의 비준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 해소된 현재에는 노무현의 재협상론을 단순 적용해서 보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오히려 지금은 노무현이 주장했던 재협상이 이루어진 상황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한미FTA 반대논거로 삼기 위해 노무현의 재협상론을 인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노무현의 재협상론을 언급하려면 한미FTA 반대가 아니라 현재의 한미FTA 안이 노무현의 한미FTA 안에서 변화된 국제정세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을 반영했는지 노무현 정부에서의 협상에서 한국의 입장을 관철하지 못해서 아쉬운 부분들을 찾아내서 반영했는지 등에 대해서 따져야 한다.


부산카툰클럽이 다음달 5일부터 부산시청에서 여는 APEC정상 캐리커처전에 전시될 노무현 대통령의 캐리커처. 만화가 전경숙씨의 작품이다./지방/사회/문화/부산카툰클럽 제공. 2005.8.30 (부산=연합뉴스)
 
한데 지금 주요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대체적으로 ISD나 이행법안 102조 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노무현의 한미FTA 재협상론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이런 부분들은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 토론을 끝낸 것들로서 노무현의 재협상을 거론하면서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은 오류다.

노무현은 한미FTA의 타당성에 대한 소신에는 변화가 없으며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으니 이 문제에 관해서 또다시 토론하는 부질없는 노력은 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노무현은 "저는 '너 신자유주의지?' 이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때마다 옛날에 '너 빨갱이지?' 이런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왜곡되고 교조화되고, 그리고 남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언급하며 글을 끝맺었다. 이 구절은 노무현이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가졌던 외로움이 배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무현의 저서인 '진보의 미래'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저는 'FTA가 한국에서 정책으로 적절하냐 아니냐'는 문제하고 'FTA를 하면 진보가 아니고, 안 하면 진보냐' 이거하고는 별개라고 봅니다. 이번 책에서는 개방 문제를 크게 다룰 생각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진보의 본질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진보주의 시대라는 것이 개방 반대의 시대가 아니고, 진보 국가가 개방을 반대하는 국가는 아니잖아요?"

최근에 한미FTA를 찬성하면 수꼴이고 반대하면 좌빨이라는 해괴한 논리가 난무하는 것을 보노라면 노무현의 이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교조적인 이분법으로 사사건건 노무현을 끌고 들어가며 반대하는 측에서는 최소한 '진보'라고 자처하는 일만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한쪽에서는 '너 좌파지?'하고 한쪽에서는 '너 신자유주의지?' 이렇게 말한단 말이예요. 근데 이게 기준이 뭐냐 이겁니다. 뭐가 기준이예요? 그 기준에 관한 얘기, 결국 '진보가 뭐고 보수가 뭐냐?'라는 얘기를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의 교리라는 것이 뭐냐, 거기에는 보수주의의 핵심 논리도 있고 진보, 보수와 관계없이 진보도 보수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을 모두 합쳐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공격을 하다 보니까 너무 전선이 넓어지고 불필요하게 우리 편을 적으로 돌리는 이런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요."

이는 같은 책에 나오는 건데 인용 부분 중에서 '너 신자유주의지?'에 '너 수꼴이지?'를 첨가한다면 이 구절은 요즘의 나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의 심경을 대변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니편 아니면 내편밖에 모르는 모 아니면 도식의 극단적인 편가르기에만 몰두하는 자들이 진보의 탈을 쓴 채 진보의 가치를 훼손하면서 자기네 편을 줄이지 못해 안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재협상론이 갑자기 나오는 원인을 추적하다가 황당한 트윗이 눈에 띄었다. 애써 보려고 한 것도 아니고 제일 위에 올라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것이다. 일반인의 트윗이라면 애써 무시할 수도 있었겠으나 김태희라는 서울시 의원이 트윗한 것이어서 묵과할 수 없기에 언급한다.

김태희는 한미FTA가 미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는 해괴한 소리를 하고 있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나 그 가당찮은 말을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믿으며 무한 반복적으로 리트윗하는 사람들을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서울시 의원의 트윗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파급력을 지닌다. 이렇게 순식간에 퍼져나간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김태희는 도대체 어떻게 쓸어담을 생각인지 정말로 궁금하다.

이것은 이미 한나라당 의원인 정옥임이 11월 1일 트윗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당시에도 이런 유언비어가 돌아다녔고 그를 바로잡으려고 했을 것이다. 한데 일반인도 아니고 서울시 의원이라는 자가 이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진실로 알고 있다가 노무현의 재협상론의 불씨를 다시 살리려는 데에 편승해서 퍼뜨리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젠 이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 정도나 될 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한미FTA 비준안이 미 상원 본회의와 하원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한국시각으로 지난 10월 13일이었다.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자면 "미 하원은 이날 한미FTA 비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278, 반대 151로 가결시켰다. '여당'인 민주당 의원 130명이 무더기로 반대표를 던졌지만 공화당 의원 219명이 찬성해 한미FTA 비준안은 무난히 하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원 표결 2시간 뒤 상원 본회의도 한미FTA 비준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83, 반대 15로 통과시켰다."

미국에서 한미FTA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논거는 "한국은 3대 환율조작국 가운데 하나"라며 "FTA가 이행되도 환율조작을 통해 미국산 제품을 수입을 막을 것"이라고 밝힌 뒤 "오히려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진출만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또 "한국에서는 외제차를 사면 세무조사가 들어오고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외국산 자동차를 살 수 없게 돼 있다" 등이다. 이것만 봐도 한국의 한미FTA 반대론자들의 논거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반인도 아닌 서울시 의원인 김태희도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니까 미국이 한미FTA를 통과시켰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데 재밌는 사실 하나를 더 보자. 미 하원은 한미FTA와 함께 미-콜롬비아 FTA와 미-파나마 FTA도 가결했는데 찬반 숫자는 한미FTA와 비슷했다.

반대를 할 때는 하더라도 사실관계는 좀 제대로 알아본 후에 하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사실이 왜곡될 개연성이 높은 상태를 조성하거나 거짓말이 무한 반복되는 상황을 방치하는 짓도 멈춰야 한다.
 

첨(添) ; 2011. 11.22. 17 : 51

글을 등록하고 보니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한미FTA 비준안을 처리했다는 뉴스가 올라 있다. 한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한나라당은 왜 매사를 이처럼 뜬금없이 졸속적으로 서두르기만 하는지 답답하다. 협상파들의 입지를 더 넓힌 후에 처리해도 충분했었다. 한나라당 단독 강행처리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