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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희 우승만들기 프로젝트로 전락한 '불명2'




지난 주 방송된 '불후의 명곡2'는 프로그램이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듯한 현상이 많이 노정되었다. 어느덧 이 프로그램의 유통 기한이 만료되어가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제작진이 시청률 향상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의 방향을 틀어보려는 건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지난 주와 유사한 포맷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에 전자라면 유종의 미를 생각해야 할 것이고 후자라면 오히려 프로그램의 폐지를 재촉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현식 특집은 기대치를 훨씬 밑도는 방송이었다. 출연자들 중에서 그런대로 봐줄 만했던 것은 홍경민과 강민경 정도였다. 나머지 출연자들은 수시로 채널을 돌려야 했을 정도로서 출연자들이 들고 나온 무대의 퀄리티는 전체적으로 기대 이하였다. 출연자들이 매주 명곡 하나씩을 소화해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므로 피로도가 높아졌던 탓도 있을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가수들이 무성의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의 무대를 가지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이 부르는 곡을 출연자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무대를 가지고 방송에 출연하고 그렇게만 하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은 자만심인지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아니면 시청자는 무시해도 된다는 오만함인지 방송을 보기가 왠지 떨떠름하기만 했다.

임정희 우승만들기 프로젝트로 전락했던 김현식 특집

알리 → 홍경민 → 신용재 → 허각 → 남우현 → 강민경 → '?'
제일 뒤에 '?'에 들어갈 사람에게 우승을 몰아주기에 이보다 더 환상적인 순서가 있을까 싶다. 이런 기막힌 경우의 수가 나오려면 그 확률은 얼마나 될까? 각자 계산해 보면 되겠지만 만약에 이게 우연의 일치라면 신동엽의 손은 가히 신의 손이라 불릴 만하다.



허각이 나왔을 때 사실은 '?'에 들어갈 사람은 임정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방청석에 앉은 허각의 가족들까지 소개되었을 때는 임정희가 마지막에 뽑힐 거라는 확신마저 생겼다. 그렇다고 내가 점쟁이라서가 아니고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제작진들이 몇주 전부터 노골적으로 임정희를 띄우려는 편집을 한 방송을 내보내서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 전에 어떻게든 우승을 하게 만들든가 여의치 않더라도 좋은 이미지라도 심어주고 싶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불후의 명곡2'에서 우승 트로피가 갖는 의미가 대체 뭐기에 임정희는 그토록 우승이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의아하다. 가수가 무대의 퀄리티로 시청자들에게 평가받는 것보다 단지 우승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듯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은 맨 마지막 출연자가 우승할 확률이 50%나 되어서 의미도 없다. 자연히 우승이 무대의 퀄리티와 비례한다고 보기에도 상당히 무리가 있다. 방송 초기에는 우승자의 경우 기사 송출량에서 차이가 조금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지금은 그 차이도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봐도 이 프로그램에서 우승 트로피는 영예라기보다는 단지 겉치레에 불과하다.

'불후의 명곡2'에서 본 임정희는 지오와 듀엣으로 출연했을 때에만 간신히 선방했을 뿐이고 단독으로 출연했을 때는 한번도 기대했던 무대를 보여준 적이 없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임정희는 '노래는 잘하네' 정도의 가수였다. 한데 가수가 가창력을 내세우고 뽐내려는 것은 모양새가 우습다. 가창력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정의하기도 어렵지만 가수라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전제하고 본다.

가창력이라는 것도 듣는 사람들의 주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지 가창력만으로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해서 나는 요즘 MR을 제거해서 가창력을 비교 평가하는 것을 일종의 테러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런데 임정희는 노래를 부르면서 반복해서 '나 노래 잘 하지? 그런데 왜 우승 안 시켜줘?'라고 묻는 듯해서 듣는 사람에게 부담을 준다. 또한 자기가 부르는 노래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감정의 강약을 절제하는 능력도 떨어지니까 노래 가사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는데 이건 가수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래를 들으면서 수시로 채널에 손이 가는데 우승은 한 가수와 우승은 못했으나 노래에 빠져들었던 가수 중에서 시청자는 누구를 더 기억할까? 다른 시청자들은 도대체 방송을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해서 시청자 게시판을 들여다봤더니 썰렁한 가운데 꽤 흥미로운 글이 있어서 캡쳐해 두었었다. '이름모름ㅋ'는 작성자의 주관적인 감정이 다분히 포함된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랬음에도 임정희를 더 하위에 랭크해놨다. 이게 나를 포함한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우승한 임정희에게 내린 평가였을 것이다.

하여튼 '불후의 명곡2'는 여러 면에서 임정희에게는 맞지 않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고 임정희 개인적으로도 꽤나 불유쾌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이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언제 어디서든 다시 돌아와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갖게 된 임정희는 노래만 잘하는 가수라는 내 편견을 깨 주기를 기대한다.

"뭘 원하는 거야? 전설로 나오든가." 임정희에게 던진 김구라의 이 말은 시청자마저 통쾌하게 만들 정도로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김구라의 독설이 이처럼 절묘하게 와닿기도 처음이다. 임정희가 향후 이와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에 또 출연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만약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 시청자가 김구라의 이 말을 다시 떠올리는 일은 없게 되기를 아울러 바래 본다.

사라져버린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

'불후의 명곡2'는 불후의 명곡을 아이돌 가수들이 부르고 아이돌들의 대결이라는 취지로 기획했던 프로그램이었다. 한데 지금은 이러한 기획 의도에서 명백히 벗어나 있다. 중간에 출연자들의 피로도를 덜어주기 위해 보컬리스트 특집을 기획했던 것은 좋았으나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이 거의 배제된 듯한 지금의 분위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물론 아이돌을 폭넓은 개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프로그램 최초에 출연자들이 틴돌(Teen Idol)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본다면 현재의 출연자들은 기획 의도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의 출연자들의 문제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아이돌을 배제하는 듯한 분위기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까지의 출연자들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출연자는 홍경민이다. 홍경민이 비록 우승 횟수는 적지만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늘 최선의 무대를 준비해서 방송에 출연하며 후배 가수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그의 자세를 보면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났던 가수였다. 그게 아마도 일류였던 가수로서의 자부심일 것이다.



'불후의 명곡2'는 아이돌 가수들이 명곡을 현대에 다시 불러냄으로써 세대간의 소통을 이루겠다는 기획 의도를 다시 살려야 한다. 홍경민이 하차했으니까 대체 가수를 섭외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뒤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러도 카메라는 다른 멤버를 잡더라'는 레이나와 같은 가수들이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주겠다던 이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취지로 되돌려야 한다. 홍경민이나 알리를 포함시키는 것도 충분히 의미는 있지만 그래도 아이돌 위주로 출연자를 섭외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알리처럼 인지도가 낮은 가수에게 이 프로그램은 쌓아놨던 밑천을 드러내는 과정이라면 그룹활동을 하는 아이돌 가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속된 그룹 칼라에 맞춰 트레이닝을 받아왔던 아이돌 가수가 다년간 실력과 무대경험을 쌓았던 선배가수의 노래를 다시 불러보며 개인적으로도 성장할 기회를 갖는다면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한데 자꾸 벽을 만들어 아이돌을 배제시킨다면 그순간 이 프로그램은 아류로 전락하게 된다.

불쾌한 편집

요즘은 대부분의 TV 프로그램이 편집을 대단히 무례하게 하고 있다. 시청자들을 다 제작진들보다 수준을 낮게 보고 무시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왜 제작진의 일방적인 편협한 생각을 수시로 시청자에게 강요하는지 불편함을 넘어 불쾌할 때도 많다. '불후의 명곡2'도 마찬가지인데 가수의 무대를 감상하게 해주지 않고 중간중간 잘라서 제작진의 독단적인 관점을 시청자에게 강요하거나 시덥잖은 우스갯소리를 끼워 넣어서 흐름을 끊어놓는지 짜증스러울 때가 많다. 예능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가수가 어렵게 준비한 무대를 시청자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게 좀 바꿔라. 시청자들의 수준이 제작진들보다는 높으니까 쓸데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하려고 들지 마라.

제작진의 이러한 오만한 편집이 결국은 프로그램을 임정희 우승 만들기 프로젝트 정도로 전락하게 만든 주요인일 것이다. 설혹 프로그램 유통 기한이 끝나가더라도 동정표를 유발하는 편집을 통해 프로그램을 출연자들간에 우승 트로피 돌려받기 정도의 우스갯거리로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가수의 명예를 찾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모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