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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아나운서, 연예인이 한글 훼손의 주범




한글날을 맞아 TV에서는 한글을 올바르게 쓰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을 방송했지만 정작 한글을 훼손하고 있는 주범은 TV에 출연하는 아나운서와 연예인들이다. 청소년들이 한글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데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이 도리어 청소년들의 잘못된 한글 사용 실태를 분석하고 바른 말 고운 말을 써야 한다며 한글날에만 홍보성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낯뜨거워해야 할 일이다.

오늘날 TV에 출연하는 연예인이나 방송인들 중에 한국말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출연자는 거의 없다. 심지어는 자칭 한국말 지킴이라는 아나운서들조차도 틀린 말을 버젓이 사용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표현해도 결코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나운서의 역할이 사실 전달자보다는 쇼, 오락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앞으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근래에는 아나운서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연예인이라 칭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아나운서보다는 '딴따라패'에 속하길 원하는 아나운서들이 우리말 지킴이 역할을 제대로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나운서들이 경박한 언어 사용을 마치 재치라도 되는 양 포장해내려고 애쓰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 갖는 최후의 자존심인지는 몰라도 시청자의 눈에는 대단히 아둔해 보인다.

TV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청소년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연예인들의 경박한 말과 행동은 청소년들에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청소년들은 그대로 따라한다. 연예인들이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언행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연예인들은 욕설에 가까울 정도의 천박한 말과 행동을 하고 그러한 장면이 가감없이 방송 전파를 타는 것이 현실이다. 연예인들 각각의 개성적인 측면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공중파 방송에서 폭력에 가까울 정도의 상스러운 언행이 다양성이라는 말로 허용되어서는 곤란하다고 판단된다.

온라인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언어나 은어 등이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들에 의해 그대로 전파를 타는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한국말이 훼손되는 정도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틀린 말이나 의미가 변경된 채 사용되고 있는 말임에도 아나운서들까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다보니 TV를 보고 있자면 어느 게 맞는 말인지 헷갈릴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미 공해 수준에 이른 방송 자막은 더 말할 것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TV야말로 한국말을 훼손하는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TV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한국말은 워낙 다양하고 광범위해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서는 몇가지 유형만 언급해보려고 한다. TV가 수십만명이 보는 프로그램에서는 잘못된 말을 여과없이 그대로 방송하면서 고작 한두명 볼까말까한 '바른 말 고운 말'류의 프로그램을 통해 맞는 말과 틀린 말을 구분해서 방송하는 것으로는 한국말의 훼손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가르치다'와 '가르키다' 또는 '잃다'와 '잊다'

이처럼 서로 의미가 다른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가르키다'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로서 '가리키다'와도 잘못 사용되는 말이다.

'주구장창'과 '엄한' 그리고 '개발새발'

이 말들은 주로 드라마 작가들이 대사로 사용하고 있는데 여러차례 잘못된 말이라고 지적되어 왔던 이 말들을 드라마 작가들이 애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막장 드라마의 대가라 불리는 임성한의 경우는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에서 '노파심'이라는 말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도 '주구장창'이라는 잘못된 말 대신에 '주야장창'이라는 말로서 그의 차별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주구장창'은 '주야장천'으로 써야 맞고 '엄한'은 '애먼'으로 써야 맞으며 '개발새발'은 '괴발개발'로 써야 맞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개발새발'은 얼마 전에 국립국어원이 표준어로 채택했다. 어감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일반적으로 얼마나 구분해서 사용할지는 알 수 없고 '괴발개발'이라는 말은 '개발새발'로 바뀐 채 결국은 사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

'회손녀'라는 말이 생겨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구장창'은 한자의 의미를 잘 몰라서 틀리게 사용되는 경우라면 '엄한'과 '개발새발'은 한국 고유어를 잘 몰라서 틀리게 사용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개발새발이 일반화될 조건을 충족해 버렸으니 '괴'라는 고유어도 자연히 사라지게 될 것 같다.

존댓말과 호칭의 잘못된 사용

"비행기 좌석이 안 계세요"와 같이 사람이 아닌 다른 것에 두고 높여서 말을 한다. '할머니가 너 오시래'처럼 높여야 할 사람을 잘못 선택함으로써 틀리게 말하는 경우도 많다.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강박증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공비례의 대표적인 경우라 할 것이다.

호칭이 잘못 사용되는 경우 중에서 가장 꼴불견은 남편을 아빠라 칭하는 경우다. 자기 아빠랑 결혼 생활을 하는 여자라니 이보다 더 꼴불견은 없을 것이다. 또한 아저씨, 아주머니라는 호칭이 사라지고 너도 나도 아버님, 어머님을 사용하고 있는데 TV를 통해서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됨으로써 이 부적절한 호칭을 바로잡을 길은 없어 보인다.

잘못된 발음

대표적인 예로 '꽃은', '꽂은', '꼿은'의 발음을 제대로 구분해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외에도 개별적인 단어의 발음이 틀린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가지 예를 들자면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솜이불'을 '소미불'로 잘못 발음했던 적이 있었는데 '솜니불'로 정확히 발음한 박명수와 대조를 이루었다.

'복불복'과 '꼼수'

이 경우는 방송이 올바른 말을 정착시킨 가장 바람직한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복불복'의 경우는 '상상플러스'에 소개되었던 단어였으나 일반화되지 못하다가 '1박2일'의 게임 이름으로 사용됨으로써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말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일수록 올바른 말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겠다.

한턱 쏠게, 뽀록나다, 삐까번쩍하다, 멍 때리다, 땡깡 등

이처럼 잘못되었거나 비속어는 TV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땡깡'이라는 말은 어감 자체도 좋지 않음에도 드라마 작가들이 대사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언어의 사용이 주수입원인 사람들의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일전에 모 프로그램에서 한 리포터가 외국 남자 배우에게 '최고'라는 말을 가르쳐 준다면서 '짱'이라는 말을 알려주는 것을 보면서 씁쓸했던 적이 있다.

이 중에서도 한턱 '쏘다'는 아나운서들도 무심결에 버젓이 사용하는 말로서 바른 표현인 '쓰다'란 말의 임계점을 넘은 듯하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한국말로 쓴다면?

한국사람들은 한국말을 비속어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자연스럽게 언급하지만 여기서 이 말을 한국어로 바꾸어 놓는다면 아마도 난리가 날 것이다. 이러다 보니 한국말보다는 외래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면서 지방자치단체 등에서조차도 구호를 외래어로 사용하고 있고 외래어 간판이 길거리를 점령해버린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가장 심각한 '다르다'와 '틀리다'

TV에서 잘못 사용하는 말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경우라고 생각된다.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에서조차 용케도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만 골라서 방송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 말이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보는 이유는 '맞다'와 '틀리다'의 문제와 '같다'와 '다르다'의 문제를 혼동하는 대중들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문제와 관련되면 이 말의 혼용으로 인한 폐해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여기에 있는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두 단어를 그나마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은 한국말을 갓 배운 외국인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 그 심각성의 정도를 상징적으로 설명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외국인이 한국말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이 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다만 형식적으로만 구분되고 있을 뿐인 이 말은 언급하는 것조차도 무의미할 정도로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지가 오래되었다.

방송 3사는 한글날이나 몇명 보지도 않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바른 말 고운 말을 구분하려고 할 게 아니라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이나 '딴따라패'에 속하기를 원하는 아나운서들의 부적절한 언어 습관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